남도여행
이번 나의 남도여행의 목적은 힐링이다. 오감을 충분히 활용하여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가급적 말은 적게 하고, 사람은 적게 만나며, 내가 맞이하는 장소, 역사, 분위기를 오감으로 체감하고자하는 것이 목적인 여행이다. 그러다보니, 자주 걷는다. 가급적 대중교통도 적게 활용한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목포로 향했다. 나에게는 일주일도 호사로운 휴가가 된 듯하다. 급하게 상경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다음 기회에 또 오겠다는 미련을 남기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터미널에서 평화광장까지는 3키로 남짓된다. 난 그 길을 걸어갔다. 걸어가면 46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목포시내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비교적 한산했다. 가는 길목마다 큰 길에서는 신호를 지켰고, 작은 골목길에서는 신호를 무시했다. 한적한 시골에서만 허용되는 특권마냥 난 일부러 그렇게 했다. 아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눈치 것 잽싸게 건너고 있었다. 큰 길 사거리에는 지금이 선거철이란 것을 알려주는 큰 걸개 그림이 양쪽으로 걸려있다. 그 크기와 양쪽 진영모두 같은 위치에 있는 걸로 보아 가장 큰 번화가 중에 하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터미널에서 평화광장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고, 난 곧바로 걸어서 항구에 다달았다. 평화광장은 항구와 맞닿아 있다.
탁 틔인 항구가 분수쑈를 위한 시설물과 함께 나를 반겼다. 여느 항구처럼 갈매기와 청둥오리가 있었고, 간간히 산책하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사람들로 평일 낮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항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홍콩의 ‘침사추이’를 연상케 하였다. 중간 중간에 이소룡 같은 동상 대신, 운치있는 조망과 볼거리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평화광장에 도착한 시점이 점심때라 간단한 요기가 필요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건너편 건물에 커다란 광고 문구가 들어왔다. 전주 콩나물 국밥 단돈 5,500원, 헉, 순간적으로 눈을 의심했다. 설마하니 내가 아는 전주 콩나물 국밥이 맞다 싶었다. 의심어린 시선으로 가게앞을 서성여 봤지만, 내가 알고 있던 전문 국밥집이 맞았다. 심지어, 밥과 반찬은 무한으로 셀프 리플이 가능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가성비 높은 점심을 맛있고, 배불리 먹었다.
배를 불리니, 나의 발걸음도 가뿐해졌다. 항구와 연결되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바다내음을 맘껏 온 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목포가 자랑하는 갓바위가 나왔다. 바닷가 절벽에 오랜 세월 바닷물과 풍광으로 만들어졌을 희귀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다. 나 또한 한 동안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었다. 갓바위에 대한 탄생 유래는 이렇다.
갓바위 명칭은 ‘삿갓’을 쓰고 있는 암석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암석은 긴 세월동안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과 소금에 의한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하여 형성되었겠지만, 사람들은 그 생김의 유래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를 덧붙였다.
한쌍으로 이루어진 갓바위에 대한 전설이다.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들이 돌아가신 후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 속에 빠드리고 만다. 불효를 저질러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던 아들도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훗날 이 곳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큰 바위는 ‘아버지 바위’, 작은 바위는 ‘아들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영산강을 건너던 부처님과 그 일행이 잠시 쉬던 자리에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설이다.
지금은 해상보행교가 설치되어 있어 걸어서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으나, 과거에는 가까이 보려면 배를 타고 가야만 했다고 한다. 밤에도 관람할 수 있도록 전등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4월부터 11월말까지 매일 밤 근처의 평화광장을 중심으로 ‘춤추는 바다분수쇼’를 통해 음악에 맞춰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연출도 한다고 하니, 한 여름밤에 놀러오면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갓바위를 지나 해안으로 설치된 산책로를 계속 걷다 보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눈에 들어온다. 해양 문화재 발굴과 연구를 목적으로 1994년에 설림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문화재 연구기관이다. 마침 ‘청룡의 해’을 기념하여 1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특별 전시를 한다고 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찾았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임을 몰랐다. 아뿔싸, 해상교류를 하며 주고받았을 각종 해상 도자기 등을 포함한 수중 문화재와 다양한 배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밖에 전시되어 있는 멍텅구리 배에 시선이 꽂혔다.
멍터구리 배는 서해안에서 가장 유명한 새우잡이 어선으로 해선방어선이라 명명한다.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무동력선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배는 동력선이 끌어주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멍텅구리배는 주로 새우를 잡는 배를 말하는 데 공식 명칭은 ‘해선망어업(醢船網漁業)’이라 한다.
멍텅구리배는 조류가 빠른 곳에 닻을 내리고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 머물며 새우를 잡는다. 거센 물살과 높은 파도에서 배를 고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큰 닻을 내린다. 배의 길이가 15미터 정도인데 닻의 크기는 절반에 해당하는 8미터에 육박한다. 암도 세상에서 가장 큰 닻일 것이다. 새우는 스스로 물길을 헤쳐 나가며 이동하지 못하고 조류에 따라 이동한다. 이때 새우가 지나가는 길목에 이 거대한 닻을 내리고 모기장처럼 촘촘한 그물을 바다에 내린 다음 하루 네 번 들어올려서 새우를 잡는 고된 노동이다.
멍텅구리 배를 보고 있으니, 통상 말하는 새우잡이 배에 대한 애환과 어부들의 고단한 삶이 투영되며, 삶에 대한 깊은 고뇌가 바다의 깊이만큼이나 스며들어왔다.
햇살은 근래 보기 드물게 화사하고 명료했다.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도 그쳤고,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살펴보니, 옆으로는 목포예술회관이 있고, 건너편으로는 목포문예역사관과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이 나란히 있다.
반가운 마음에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항구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매우 넓고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그 넓은 도로를 무서울 정도로 속도를 내는 차들이 겁이 날 정도다. 도보로 걸어가는 주변에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곳은 드물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문예역사와 자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최고의 관광지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모든 관람지들이 월요일에는 휴관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또 다시 허탕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자연사박물관 앞 뜰에 설치되어 있는 사자, 고릴라, 공룡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지만, 아쉬운 내 마음을 채워 줄 수 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오랜만의 나의 목포 여행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다만, 내가 예당초 오감으로 느끼려는 목포의 향기는 맘껏 향유할 수 있었다. 항구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 해양보행교 등이 편하고, 여유롭게 항구의 도시 목포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였고,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봄의 날씨는 내 마음을 녹이고, 행복한 기운으로 채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