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2회를 맞이하는 청자축제가 강진에서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10일간 열린다는 소식에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 청자축제는 우리나라 청자 문화의 맥을 잇고,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축제이다. 청자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강진은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점토로 인하여 고려 시대 500년 동안 청자 문화를 꽃피운 본산지이다.
지역 축제로는 올 해 처음 개최되는 행사인데다, 휴일이라 그런지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도착한 시점이 점심 때라 간이로 만든 거대한 천막안에서 ‘매생이 떡국’을 주문했다. 곳곳에 주문 키오스크도 준비되어 있었고, 알림 전광판도 있어,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주문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따뜻한 물 속에 족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였다. 줄곳 걸어다니느라 피곤한 발을 생각해 일초의 망설임없이 양발을 벗고 들어갔다. 그런데 다들 어디서 났는지 수건을 다 들고 있었다. 입장료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 천원의 입장료로 수건을 얻을 수 있었다. 피곤한 발도 풀고 난 후, 본격적으로 청자 투어를 시작했다. 다양한 청자 전시와 체험이 준비되어 있었고, 청자로 만든 도자기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곳도 많았다. 몇개의 소소한 물건들을 샀는데, 그 중엔 청자로 만든 주걱도 있고, 일명 원샷잔이라 불리는 밑부분에 구멍이 뚫린 소주잔도 있다.
[화목 소원태우기 행사에서 사업대박을 기원하는 의식을 가졌다]
따로 마련된 간이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푸드트럭에서 갖가지 먹거리를 사 먹으며 여유를 부리는데, 한 쪽에서 장작에 소원을 써서 가마에 태우며 성취를 비는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단 돈 천원에 큰 장작을 받아 든 나는 ‘2024 사업대박’을 기원하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청자축제에서 이런 행운의 이벤트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월출산 자락에 있는 무위사는 정갈하고 고즈넉한 사찰이다]
강진의 무위사는 월출산 남서쪽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하여 절의 이름을 관음사라 했고, 명종 10년인 1555년에 지금의 무위사란 이름을 얻었다. 무위사에는 1430년 효령대군의 시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보전이 지어졌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란에도 화를 입지 않아서 웅장함과 화려함이 으뜸이며, 물과 육지에 떠도는 영혼을 달래 극락으로 안내하는 불교의식인 수륙재를 봉행하던 수륙사로 지정되어 그 중심건물이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이 되었다.
무위사의 배경이 되는 월출산은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운데, 그 경치가 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 웅장하고 화려하다. 또한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위사에 당도하는 순간 세상에는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더욱이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
무위사에서는 1박 2일 일정으로 템플스테이 행사도 진행 중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미리 예약을 해서 일상의 찌든 오염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 만 했다.
극락보전 앞 뜰에는 홍매화가 근사하게 피어 있었다. 남쪽 지역답게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걷고 쉬고 기도하고 절하고 명상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휴식과 멈춤을 통해 본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강진의 녹차밭은 대장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무위사 인근에 자리한 녹차밭은 불모지를 개간하여 약 10만평의 다원을 조성했다. 강진의 녹차 사랑은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영향으로 그 뿌리가 굳건했다. 월출산은 주야간 온도차가 크고 적당한 습도와 잦은 안개로 차의 풍미를 높여주는 환경을 만들었다.
1981년 5월 개간된 코스로 설록차를 만드는 태평양의 첫 지배지다. 개간 전에는 돌무더기 흙산에 드넓은 황무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속에 녹차밭을 만들고 가꿔 세계적인 명차를 만들어 가고 있는 기업의 의지와 지역문화의 노력이 함께한 작품으로 보성의 녹차밭보다 더 흘륭하다는 평이다.
울퉁불퉁한 강인함의 월출산을 배경으로 안정적이고 넓은 초록의 녹차밭이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으니 이 자체로 평화스럽다 말할 수 있다.
[백운동원림의 고풍스럽고, 풍요로운 정경은 흡싸 비밀정원의 모습이다]
강진여행에서 빠드리면 섭섭한 강진 가볼 만한 곳을 손꼽을 때 강진다원과 백운동정원을 빠드리지 않는다. 월출산을 병풍 삼아 넓디넓은 전남 강진다원은 보는 것 그 자체가 장관이며 하나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작품. 백운동 정원은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녹차밭에서 걸어 바로 옆 숲길로 들어서서 백운동 정원으로 향한다. 짙은 숲길과 대나무 숲을 지나 들어서는 것은 마치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입구에 들어서면, 묘가 하나 보이는데, 백운동 원림의 1대 동주인 처사 승지공 이담로의 부부 묘다. 별서 정원의 목적으로 백운동 원림(정원)을 조성한 인물로 조선 중기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서 은둔한 선비였기에 처라고 부른다. 2019년 3월 11일 명승으로 지정된 백운동 원림은 보길도의 다산 정약용정원,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측면의 협문이 마치 시크릿 가든으로 통하는 별세계의 문처럼 고풍스럽고, 연못가에 있는 정자에 세팅되어 있는 다기는 금방이라도 손님들과 함께 술 한잔할 기세이다.
조선 전기까지 백운암이라는 사찰의 터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터만 남은 곳에 이담로가 은거를 위해 별서 정원을 세우게 된 것이며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유상곡수를 만드는 등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어 가꾼 아름다운 정원이다.
[생태공원 갈대숲과 보리밭의 푸름은 최적의 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청자축제 장에서 몇 시간 보낸 다음에 찾은 곳은 근처에 있는 생태공원이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울창한 갈대밭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없었지만, 넓은 생태공원내를 산책하면서 많은 상념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넓은 지역에 조성된 갯벌과 갈대밭은 망둥어, 가게, 갯지렁이, 천퉁오리 등 다양한 생물들을 품고 있었다. 갈대가 한창인 가을에 오면 최고의 포토존을 보여줄 것으로 확신한다. 생태공원 주변으로는 보리밭으로 푸른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영랑 생가와 시문학파의 문학관은 반드시 관람해야 할 성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김영랑 생가다. 강진군청 바로 옆에 있는 영랑생가에는 마침 시문학파 문학관도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랑은 당시 부잣집 도령으로 집터도 넓고 집도 멋지다. 집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영랑이 평소에 쓰던 책상과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같이 글을 쓰는 사람 눈에는 그 모습이 정겹고, 친근하게 보여진다. 바로 옆에 있는 시문학파 시인들의 작품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영랑 김윤식, ‘떠나가는 배’의 용하 박용철, ‘향수’의 정지용, ‘자모사’의 위당 정인보, ‘물레방아’의 연포 이하윤, ‘논개’의 수주 변영로 등 그 시대를 풍미한 시인들의 시집과 유품이 너무 정겹게 맞이해 줬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영랑 김윤식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비용은 절반이지만, 만족은 두 배 이상인 강진여행은 유쾌하다. ‘2024년을 반값으로 여행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국적으로 사람들의 방문을 이끌고 있는 강진은 새롭게 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강진은 그 어느 곳보다 풍요롭고, 활기찬 고장으로 기억된다. 다시 시간을 내어 꼭 찾아오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