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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천재작가로 유명한 김승옥은 1941년 생이다. 태어난 곳은 일본의 도쿄이지만, 1945년 해방이후 강원도 춘천에서 대부분의 청춘을 보내고, 대학은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를 나왔다.
무진기행은 불문과 4학년에 재직 중인 1964년 23살의 나이에 사상계에 발표한 그의 두번째 단편소설이다.
한국 소설사에 혁명을 일으킬 만큼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을 제공하는
신선한 언어는 물론 낯선 이미지를 사용한
상징적 배경막, 인식적인 깨달음을 전달하는 놀라운 전개과정,
그리고 속물적인 것의 유혹 및 그것과 대결하는
지적 분노 등과 같은 여러 가닥의 소설적 질료가
완벽한 질서 속에 홈스펀처럼 유기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 이태동 교수 / 무진기행 평론 중 / 지식더미 -
김승옥은 대학 재학 중인 62년도에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64년 대표작인 '무진기행'을 사상계에 발표했다.
첫 번째 단편소설인 ‘생명연습’은 한국전쟁을 겪은 직 후의 사회상에 대해 대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일부를 토대로 만들어낸 것으로, 여수를 배경으로 하였다. 전쟁이 휩쓸고 간 대한민국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학교수, 만화가, 선교사, 학생, 어머니, 형, 누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급급하다. 그 군상들의 자기 주체적인 삶의 통상적인 기준이나 도덕적 관습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이 저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연습’으로 보인 것이다.
김승옥은 일제시대, 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5.16 쿠데타 등 겼으며, 60대를 맞이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군대에 끌려가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피할 목적으로 다락방에서 숨어 사는 삶을 살았다. 이런 치욕적인 경험은 훗날 '무진기행'에 미친 여자로 투영되기도 했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단편소설로 유명한 피츠제럴드와 마찬가지로 김승옥은 단편소설가이다. 천재적 역량으로 당시 최고의 찬사를 받은 작품을 만들어 냈지만, 단편은 돈이 되지 않던 시대에 살았다. 작가가 제대로 된 수입을 얻으려면 신문 지면에 장편소설을 연재해야 했다. 궁핍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김승옥은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많이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980년에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이란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으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군부독재가 강제 진압했다는 소식을 듣자 절필하고 종교생활에 심취하였다. 그 이후 1999년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2003년 중품으로 쓸어진 후 사임한 후 회복되었으나, 온전치 못한 상태로 현재에 이르렀다.
이처럼 김승옥은 ‘무진기행’이후 이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서울, 1964년 겨울’, 1977년 첫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서울의 달빛 0장’ 등 뛰어난 소설을 발표했지만, 70년대 영화작업→1980년 절필→1981년 종교적 체험 후 종교에 귀의→2003년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등 굴곡있는 삶속에서 그를 작가로서 충분히 분석할 만한 기회와 질료가 적었다.
무진은 작가가 고향 순천 일대를 배경으로 창조한 가상의 공간이다. 무진은 바닷가에서 나오는 안개 허무이다. 전쟁 후 1960년대 시대적 혼돈과 방황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허무라는 안개 이미지를 차용하여 표현하려 했다.
무진기행은 단편소설이지만 크게 4개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
각박한 현실세계에서 허무와 이상적인 세계인 샹그릴라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이정비이다,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버스 안에서 만난 농사관련 공무원들의 대화 속에서 무진은 아무런 특색이 없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주인공 '윤희중'은 무진의 특산물은 '안개'임을 이야기 한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에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 광주 기차역에서 빠져나올 때 미친 여자를 보다
"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을 나는 그 미친 여자를 통하여 그리고 방금 지나친, 먼지를 둘러쓰고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이정비를 통하여 실감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순천은 작가에게는 치욕적인 젊은날의 과거가 있다.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 어머니의 권유로 다락방에서 숨여지냈던 시절, 작가는 번민으로 미칠것같은 삶을 살았다. 그 때의 심정을 소설 속 '미친여자'에 투영하였다.
밤에 만난 사람들
- 신문사 지국
짧은 머무름이지만, 출세한 엘리트이란 것을 자랑이라도 할량, 무진에 있는 신문사지국을 찾아 자신이 묵는 이모집으로 배달을 주문한다.
- 박군
젊은 시절 자신을 따랐던, 중학교 후배 박군이 찾아온다. 그는 중학교 국어선생이며, 같은 학교 음악선생인 하인숙을 짝사랑한다.
- 조
주인공 윤의 중학교 동창이며, 고등고시를 합격하여 무진에서 세무서장을 하고 있는 유지다. 서울로 올라가 돈많은 과부와 결혼하여 벼락출세한 주인공 '윤'을 질투하고 부러워 한다,
- 하인숙
밤에 후배인 박과 같이 방문한 조의 집에서 만난 음악선생. 대학 졸업연주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을 노래 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조의 집에서는 유행가만 부른다. 그 날도 '목포의 눈물'을 트롯도 아니고, 성악도 아닌 어중간하게 부른다.
바다로 뻗은 긴 방죽
- 어머니 산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아프다. 가난으로 어렵게 살았고, 출세하기를 원했던 어머니에게, 막상 출세하고 나서는 부끄러워 했던 주인공의 처절한 이중적 태도로 괴로워 한다.
- 어느 술집여자의 죽음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 술집 여자의 자살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현장에 나와 있는 경찰은 무진에서는 이런 류의 자살은 흔한 일이라 말한다.
- 그리고 조
친구이자 세무서장인 조는 벼락출세한 윤이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자체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그 자리에서 하인숙에 대한 견해를 말하며, 자신을 통해 출세하려는 속물로 말한다.
- 하인숙과 조회
조의 집에서 만난 하인숙과는 그 날 밤, 집을 바래다 주는 길목에서 다음날 바닷가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약속을 하게 된다. 하인숙을 만나고 온 밤, 윤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낯선 만남에 따른 외도를 꿈꾸며, 잠을 설치는 것인지, 욕망에 주체하지 못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샌다.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고, 술집여자의 자살현장을 보고, 조를 통해 속물이란 소리를 들은 하인숙을 만나러 간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빼앗아 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짧은 만남에서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곳이 안개로 덥힌 무진에서는 가능하다. 서울로 가고 싶다는 하인숙의 육체를 탐한 주인공은 자기 번뇌에 빠지고, 하인숙은 윤을 위해해 “어떤 갠 날”을 바닷가에서 불러준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 전보
“27일회의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
그 날 밤, 서울로부터 급한 전보를 받는다. 무진을 벗어날 수 있는, 아니 도망칠 수 있는, 그렇지만 세속적인 또 다른 욕망의 장소로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 편지를 쓰고 찢다
한 순간의 욕망, 현실세계로 부터 도피, 숨겨놓은 이중적 태도의 발효, 치욕스런 과거를 안개와 함께 묻을 수 있는 곳이 무진이다. 그런 무진을 떠나는 순간, 잠시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 자체가 허무이고 거짓이란 것을 알기에 다시 찟어 버린다.
-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도망치듯 떠나는 버스 안에서 또 다시 이정비를 본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진정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이 또한 속물 근성을 속이기 위한 가식적 변명에 불과하다.
1964년에 발표한 '무진기행'은 당시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영화로, TV문학관 소재로, 여러번의 출판으로 50년 넘게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우연히 브런치를 통해 알게되어, 읽게 된 소설을 통해 나에게 '무진'은 어디일까? 라는 상념의 갈등 속에서 당시의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 보게 되었다.
첫 번째 영화는 1967년 김수용 감독의 '안개'로 탄생되었다.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였고, 당시의 최고 배우인 '신성일'이 주인공 역을 '윤정희'가 하인숙 역을 맡았다.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게 만들어 졌다. 하지만 신성일과 윤정희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우울하고 어두운 무진의 안개를 걷어차 버렸다. 영화 전반에 배경음악으로 깔린 '정훈희' 의 '안개'는 이 영화로 스타가 되었고, 배우 윤정희는 영화 속에서 '어느 갠날' 대신 '안개'를 불렀다. 영화는 67년 작품치고 구성과 영상미가 뛰어나다. 물론 흑백이다.
내가 조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1981년도에는 KBS TV문학관에서 작품으로 만들었다. 40대의 박근형과 선우용녀가 부부로, 김미숙이 하인숙 역으로 출연하였다. 박근형의 젊은 모습과 김미숙의 청순함이 또한 무진의 어두운 안개를 걷어 버렸다. 드라마로 만들다 보니, 부분적으로 각색이 많이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유튜브의 순기능 중에 최고다.
소설에서 이름만 등장하는 ‘희’는 1964년 숙명여대를 다니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작가 부친의 좌익전력 때문에 여자쪽 집안의 반대에 부닥쳐 헤어졌던 실제 여성이 모델이다. 이로인해 작가는 울며불며 휴학까지 하고 ‘안개’속을 방황했었다.
또 소설속에서 방죽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인의 자살시체는 줄거리가 전환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 작가는 1964년 6월 순천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이 소설을 창작하는데 기폭제가 됐다. 소설속 주요한 인물인, 속물적이면서 매력적인 하인숙 역시 당시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순천고의 신입 음악교사로 부임해 작가와 친분이 있던 실제 인물이었다.
작가는
무진의 안개는 순수를 지향하는 이상적인 마음과
일상성을 유지하고 싶은 현실의 마음이 혼재돼
방황하는 자아의 갈등상태를 나타내지만,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갈등속에 진실을 만나고 훼손된 자아를
보듬어 안으며 바람직한 자아상을 만들어 가는 것
이라고 창작취지를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