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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Feb 19. 2024

[직장탈출] 나는 오늘부터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어쩌다 직장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어, 아침운동은 생략했지만, 도서관 출근은 정시에 했다. 나의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다. 나의 임무는 책을 읽고, 사색하고, 가끔 커피를 마시며, 창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10년 전 이맘때가 생각난다. 그 때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료를 찾기 위해 매일 송파도서관으로 출근했었다. 매일 아침 문 열자마자 일착으로 들어갔고, 나의 고정 자리도 있었다. 핸드폰을 끄고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해 있을 때라, 나에게 급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도서관으로 연락했고, 가끔 사서가 나에게 직접 와서 "선생님, 전화 왔으니, 전화 해보라"는 알림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1년 내내 원 없이 책을 읽었고, 책을 두 권 써서 도서관에 기증도 했다, 그 공로로 나는 지역 향토 작가에 등극하였고, 그 해에 사서의 추천으로 도서관장님이 주신 ‘모범상’도 받았다. 


그래서, 나에게 송파도서관은 제2의 직장이다. 지난 금요일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작별을 알렸다. 어렵게 얻은 자유다. 퇴직을 하면서 이렇게 신경을 쓰고, 심려를 기울인 것은 처음이다. 우선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손편지를 썼다. 자그마한 선물도 준비했다. 편지는 그동안 나를 써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채웠다. 소소한 즐거움과 오해가 있었던 에로사항도 적었다. 이별 이후의 인연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미리 예약한 둘만의 점심시간을 만들어 전달하였고, 2시간 남짓의 설득과정과, 마지막 인사에서도 지속적인 회유가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것이 내가 자유를 얻기 위한 첫 번째 허들이었다. 


두 번째는 8년간 맺어온 인연을 끊는 것이다. 주변에 친하게 지낸 사람에게는 미리 알렸고, 그동안 축적한 자료는 후배들을 위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넘겨주었다. 업무 인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직접 후임에게 전달하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메일을 썼다.


이제 홀가분하다. 모든 걸 비우고 나니, 채울 것만 남았다. 빈 곳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을 생각으로 가슴은 뛰고, 희망은 부풀어 올랐다. 밖은 가랑비가 내리고, 날씨는 잔뜩 흐려 음산한 분위기마저 들지만, 나의 마음과 정신은 흐믓하게 미소짓고 있다. 이러한 결단은 철학적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강렬한 소망은 그 자체가 물리적인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암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철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법칙은 용기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법칙들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또 기꺼이 그것을 얻는다.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되려면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세상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는 사람을 위해 따로 공간을 만들어두는 습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시작되는 습관이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심지어 대학까지 거치면서 영구적인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도 모든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은 명확히 결정을 내리는 습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실한 결정에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며 때로는 죽을 각오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죽을 필요는 없다. 죽을 정도의 결단이 없어도, 내가 이미 소유하거나, 향유하고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들어온 날, 큰 아이가 한강으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한다. 평소 운동도 같이하고, 숯가마도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아,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날은 뭔가 특별하게 할 말이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요즘도 가끔 큰 애랑 올림픽공원에서 농구를 한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그만둔다는, 아니 이미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달에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할 때 잘 설득을 한 터라, 당분간은 잘 다닐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그만두고 새로운 목적을 향해 이미 나아가고 있었다.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즐겁고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목표와 이유도 명확했다. 내가 한 달 전에 설득할 때는, 명확한 목표와 이유가 약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격려하고 응원하는 말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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