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해남 시간여행

남도한바퀴

by 이상옥
완도해남01.jpg [완도타워, 장보고기념관, 대흥사, 윤선도기념관]


남도한바퀴 넷째날은 ‘완도 해남 시간여행’을 선택했다. 코스는 광주 유스퀘어(08:10) -> 광주송정역(08:40) -> 완도 완도타워 -> 해변공원 -> 장보고유적지 -> 해남 대흥사 -> 고산윤선도유적지 -> 광주송정역(18:20) -> 유스퀘어(18:45) 이다


다른 목요일 일정으로는

‘여수 완전좋네’, ‘고흥 작은섬 여행’, ‘화순 보성 로맨틱 데이트’ 등이 있다. 여수 완전좋네는 해상크루즈가 포함된 특별여행으로 비용은 29,900원이다. 수산시장, 오동도, 만성리해변 등 여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패키지 같다. 고흥 작은섬 여행도 금세기정원, 녹동항, 소록도, 남포미술관 등이 포함된 특별 패키지로 24,900원이다. 화순 보성 로맨틱 데이트는 화순 만연사오감연결길, 고인돌전통시장, 보성 한국차박물관, 율포솔밭해변, 보림제다 등을 방문하는데 보성에서 차시음이 포함되어 14,900원이다.


완도는 동쪽으로는 바다 건너 고흥군·여천군, 서쪽은 해남군, 북쪽은 해남군·강진군·장흥군과 마주하며, 남쪽은 제주, 남해에 면한다. 한국 6대 도서 중의 하나로 해상교통의 중심지이다. 완도는 265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군도로 이루어져, 리아스식 해안(침식된 산지가 지반침하, 단층운동, 해면상승 등에 의해 해면 밑으로 침수하여 형성된 불규칙하고 복잡한 톱니형의 해안)으로 갯벌과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바다 밑에는 맥반석과 초석이 깔려 있어 자체 영양염류가 풍부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2,200여종의 바다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안선마다 갯벌(64.8㎢)이 형성되어 있고 연안해역에 바다숲(해조류)이 조성되어 이산화탄소 흡수, 산소배출로 자연바다 그대로 바다정화작용을 한다. 연안해안선에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맥반석으로 형성되어 대한민국 수산산업의 메카로 불리며, 전복은 전국 생산량의 81%이며, 다시마, 미역, 매생이 등 해조류는 60%의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다.(완도군 홈페이지 인용)


완도타워01.jpg [완도타워, 해변공원, 해조류센터]


완도는 나로서는 처음 찾는 도시다. 그래서 문화해설가를 졸졸 따라 다니며 배우는 것이 상책이다. 처음 안내하는 곳은 완도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완도타워’다. 아름다운 다도해와 완도시내를 한눈에!!! 완도타워는 첨탑까지 76미터이며 지상 2층과 전망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복을 양식하는 모습도,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는데, 입장료는 2000원인데, 마침 보수중이라 5월까지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외부에 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도 환상적인 야경과 레이저 쇼를 감상할 수도 있단다. 또한 완도타워에서 모노레일 하차장까지 짚라인으로 바람을 가르며 다도해 비경을 한 눈에 즐길 수도 있다. 완도항에서 다도해 일출공원까지 왕복으로 운영되고 있는 모노레일도 있다.


완도타워를 내려와 해변공원 근처에 있는 ‘개성순두부’에서 소고기 순두부로 점심을 하였다. 부담없는 백반집, 일박이일에 소개된 황가네 짬뽕집 등 문화해설가의 추천 메뉴가 몇 가지가 있었으나, 매번 갈 때마다 번호표를 받아 줄을 선다는 개성순두부로 향했다. 11시 30분, 비교적 이른 평일 낮인데도 벌써 10팀이 앞에 대기 중이다. 20분 기다려 먹게된 순두부는 맛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다만, 밥이 돌솥으로 나온다. 역시 특별한 한 가지가 전체의 판도를 바꾼다.


20분 기다린 바람에 점심을 빨리 먹고, 해변공원을 돌아볼 시간을 벌었다. 최고의 항구도시답게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제주도를 3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카페리오인 ‘실버 클라우드호’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를 배로 갈 경우, 목포(5시간)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완도해서 출발하는 것이 2시간 남짓 짧아지니 좀 더 빠르게 가고 싶은 사람들은 완도를 이용해도 되겠다.


해변공원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물, ‘해조류센터’. 2014년 개관한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주제관으로 1층엔 특산품 홍보관이, 2층엔 해조류 전시실이 있다. 관람은 무료이고, 해조류 서식의 최적지인 완도의 바다환경과 다양한 해조류의 가치에 대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전망대로 올라가면 아기자기하고 이쁜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어 사진찍기 편하게 되어 있다.


장보고01.jpg [완도 장보고기념관]


완도 다음 관광장소는 장보고기념관이다.

완도 장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 장보고의 도전정신과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최근 리모델링을 대대적으로 하여, 보고 듣고 만지는 최첨단, 체험형 입체 관람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해놓았다. 실제로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바닷물이 파도쳐 내려오는 입체감을 실감있게 연출할 뿐만아니라 장보고의 활약상을 영화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압권이다.


장보고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중국과 신라, 일본을 잇는 삼각 무역을 펼쳤던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전진기지이자 군사 요충지가 있는 장도가 있다. 중앙에 사당을 중심으로 목책가 맷돌, 토성 등이 남아있으며, 최근 발굴결과를 토대로 중문, 남문, 목교 등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코스에는 장도 관람은 빠져 있는데, 훗날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직접 들어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완도와의 만남을 아쉬워하며 해남 대흥사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으로 향했다.

해남은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전라남도 최대의 군으로서 동쪽으로 강진군, 북쪽으로 영암군·목포시와 접하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완도군, 남서쪽으로 진도군, 서쪽으로 신안군에 접한다. 해남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는 산이 있고 의미 있는 역사 유적지가 많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천년 고찰 대흥사 같은 사찰뿐 아니라 충무공을 기리는 우수영 관광지의 해상케이블카나 울돌목 스카이워크, 공룡 박물관 같은 현대적인 시설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족 단위로 즐길만한 여행지도 많았고 땅끝 순례박물관이나 윤선도 유적지처럼 문학 기행을 할 만한 곳도 다양하게 있다.


대흥사01.jpg [해남의 천년고찰 대흥사]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해남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흥사 창건에 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의발이 전해지고,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배출되면서 선과 교를 겸비한 팔도의 종원으로 유명하다. 또한 대흥사는 한국의 산지승원을 구성하는 6개 사찰인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와 함께, 산사(山寺)로 칭하며, 종합적인 불교 승원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 한국 불교의 개방성을 대표하면서 승가공동체의 신앙·수행·일상생활의 중심지이자 승원으로서 기능을 유지하여왔다.

구곡유수 옥구슬 굴리는 듯한 물소리가 일품인 대흥사에는 아홉구비 마다 9개의 다리가 있다. 일부문 지나 비전의 뜰을 돌아도 해탈의 경지에 들지 못했거든 곧바로 이곳을 찾아 맑은 물에 손이나 한번 담궈도 좋을 것이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 화엄경 -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은 신라 자장율사께서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1967년 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12cm 높이의 여래좌상 1구가 발견되었다.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석탑양식이 이 지역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불교에서는 연리(連理)라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이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連理根), 줄기가 만나면 연리목(連理木),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른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연리나무에 관한 기록이 전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겼다. 대흥사 연리근은 오백여년 된 느티나무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랜 세월 담아 왔다.


윤선도01.jpg [윤선도 유물전시관, 녹우당]


오늘 여행의 마지막으로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을 찾았다.

윤선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인으로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의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는 유명하다. 본관 해남(海南), 호 고산(孤山),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과 경상도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42세 때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에는 600년 이상 해남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해남 윤씨 집안에 대한 역사와 윤선도가 지은 시, 음악, 작품 및 붓, 직관, 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600년을 이어온 남도의 종가 해남 윤씨, 한 터에서 600년 이상 가문을 이어온 것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진귀한 기록이다. 전시관 뒤로는 '녹우당'으로 가는 길이 있다. 녹우당은 효종이 사부인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건립했던 것을 고산 윤선도가 82세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으로, ‘푸른 비로 사람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곳’이라는 의미로 선비의 곧은 절개와 기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고택, 그리고 긴 담장으로 이어진 모습은 옛스럼과 정감있는 운치로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은 한옥 전체가 아니고 사랑채 이름이다. 주변의 대나무 숲은 그 푸르름이 선비의 절개와 기상을 느끼게 하고, 고택 사이로 35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곰솔나무가 멋진 자태로 고산사당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녹우당 주변 고택 담장을 따라 한 바퀴를 도니, 편백나무 숲도 보이고, 500년이 넘은 비자나무 숲도 보인다. 녹우당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고, 여유롭고 한가로운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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