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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Nov 19. 2024

[번외 편] 말 새끼들!

고수임 여사 이야기


말~ 새끼들!


고수 여사는 손자와 손녀들을 종종 이렇게 부른다. 욕은 결코 아니다. 애정이 범벅된 엄연한 애칭일 뿐이다. 고수 여사에게는 말 새끼들이 일곱 있다. 백설공주에게 일곱 난쟁이가 있다면 그녀에게는 일곱 말 새끼들이 있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말 새끼들이 몰려온다. 가방 하나씩 들고 나타나 보름쯤 머물다 간다. 돈을 가져오는 말 새끼는 없다. 고수 여사는 며느리들이 참 알뜰하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했다. 보름동안 말 새끼들이 먹어치우는 양은 상당했다.


말 새끼들은 주는 족족 먹어 치웠다. 방앗간에서 갓 뽑아온 가래떡을 숭덩숭덩 썰고 대파도 뚝뚝 잘라 넣고 고수임 여사 표 막장만 푹푹 퍼넣고 떡볶이를 한 냄비 해놓으면 말 새끼들은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며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김치랑 두부만 소로 채워 넣은 만두도 한솥 쪄놓으면 오며 가며  먹어 치웠다. 고수임 여사는 말 새끼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책임감을 느꼈다. 잘 먹어서 예쁜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고수임 여사는 병인년에 손 귀한 집,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나이 마흔 하나에 기적처럼 얻은 딸이었다. 부모는 산골 마을의 가난한 살림에도 수임을 읍내의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보냈다. 1944년, 임의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서둘러 시집을 갔다. 수임의 나이도 이미 열아홉이나 되었다. 일본인 교사는 임에게 일본에 가면 대학 공부도 할 수 있고 일자리도 많으니 이참에 본국으로 떠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수임은 늙은 부모를 남겨두고 타국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일본인 교사의 부추김은 날이 갈수록 집요해졌고 임은 시국의 불길함을 읽어냈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 시집을 가야겠어요. 이 동네서 멀지 않은 곳으로 혼처를 구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고향으로부터 20리 떨어진 향리골에 사는 스물일곱의 노총각 진수완을 만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모의 사랑을 양껏 받고 자란 임은 수완의 사랑 또한 아낌없이 받았다. 수완은 희대의 사랑꾼이었다. 수임이 밥상이라도 들라치면 부리나케 달려 나와 자신이 들었다. 허리 다치면 큰일 난다 무거운 것은 일체 들지 못하게 했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수임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수완은 양동이에 팔팔 끓인 물을 담아와 임의 대야로 연신 날랐다. 수임의 손이 얼기라도 할까 봐 자신의 손으로 감싸 따뜻한 김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빨래터의 아낙들은 그런 수완을 보며 임을 부러워했다.


  "수완아, 그러지 말고 빨래 네가 해라. 뜨신 물 힘들게 나를 시간에 네가 하는 게 더 빠르겠다."


나이 지긋한 동네 아낙이 말했다. 수완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수임 옆에 앉아 빨래를 거들고 나섰다. 수임은 수완의 사랑에 더없이 행복했으나 불안했다. 삶에 행복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시련과 불행이 닥치기에 이리도 큰 행복만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한편으로 두려웠다.


수임은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스물여덟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배가 불러 있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수완과 함께 산 10년이 수임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한 삶 뒤로 이어진 불행의 연속은 가혹했다. 여덟째 막내를 뱃속에 품은 지 아홉 달이 되던 해, 수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건강했던 수완은 가을의 끝자락에 밭은기침을 시작하더니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수완은 밭은기침 사이사이에 수임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혹 내가 먼저 가거든, 꼭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고 살아."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얼른 일어나야지요. 우리 아기 곧 태어날 텐데 얼굴 봐야지요."


수완이 떠나고 불과 나흘 뒤 여덟째 막내딸이 태어났다. 수임은 스물여덟에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여덟 아이가 있었고 수완에게 받은 사랑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이미 얻은 터였다. 수임은 아이들에게 늘 말했다. 사랑하고 살아라. 너희 아버지처럼 살아라. 다만 오래오래 살거라. 수임은 간절히 빌었다. 자신은 그립고 그리운 남편 곁으로 언제든 돌아가도 좋지만 자식들만은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다.   


고수여사는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도 아이들 입에 넉넉히 넣어주지 못했다. 늘 배고픔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보며 고수 여사는 이를 악물고 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한국 전쟁이 있던 3년간 무참히 무너졌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을 잃었다. 두 딸은 동생들에게 자신의 몫까지 양보하던 착한 아이들이었다. 전쟁 중의 피난길에서도 그랬다. 어린 동생들을 먼저 챙기던 두 딸은 차례로 굶어 죽었다. 수임은 눈이 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몇 날 며칠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수완을 원망했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못 할 것이 없었다. 어떻게든 남은 여섯 아이만은 지키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고수여사에게 손자, 손녀들도 자신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먹는 것만큼은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여든의 노구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고 악착같이 일했다. 그렇게 벌어 손자와 손녀들의 대학 첫 등록금을 내어주었다. 그녀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수 여사는 말 새끼들 일곱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었고 자식들에게 했다.


  “대학 첫 등록금은 내가 다 낼 테니 자식들 공부 단디 시키라.”


말 새끼 1호 진도준은 장남의 장남으로 사범대에 재학 중이며 장차 교사가 되겠다 한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임용고시를 보긴 할지 의문이다.


말 새끼 2호 진도희는 장남의 차녀로 의대에 재학 중이며 장차 사가 되겠다 한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의대에 어떻게 간 건지 의문이다.


말 새끼 3호 진영원은 차남의 장남으로 천문학과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이다. 반반한 얼굴로 여자 꽤나 울리더니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으로 얼마 전 비혼주의를 선언했다.


말 새끼 4호 진혜원은 차남의 차녀로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며 장차 소설가 되겠다 한다.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소설가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일곱 말 새끼 중에 가장 별꼴이다.  


말 새끼들은 고수 여사의 집에 오면 그날로 허물 벗듯이 자신의 옷은 홀라당 벗어 버렸다. 가방에 한 짐 싸서 짊어지고 온 옷은 꺼내지도 않았다. 모두가 고수 여사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렸을 때야 재미로 그러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크면 안 하겠거니 했건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고수 여사는 꽃을 매우 좋아한다. 그녀의 옷에는 각양각색의 꽃들 천지다. 말 새끼들은 고수 여사의 옷을 다 꺼내놓고는 패션쇼를 벌였다. 누가 더 화려한지, 누가 더 눈에 띄는지 경쟁하듯이  옷 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이럴 때 고수임 여사가 내뱉는 말이 있다.


말~ 새끼들!


뒤에 몇 마디 덧붙였다.


  "할미 옷 그만 헤집어라. 빨래도 안 하는 것들이 옷은 죄다 헤집어놓고. 너희 가방에 싸 온 옷이나 입어.


말 새끼들은 고수 여사가 소리를 지르면 “예~ 예~” 넉살 좋게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몰려 나갔다. 고수여사의 옷으로 요란하게 치장한 말 새끼 1호부터 4호는 온종일 시골 동네를 쏘다녔다. 동네 창피하니까 집에서 얌전히 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저 꼬락서니로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니 고수 여사는 속이 터졌다. 그래도 방학만 하면 몰려오는 말 새끼들이 사랑스럽다. 진씨 가에는 집안 대대로 사랑이 흐른다. 고수임 여사는 진수완의 핏줄들이 더없이 사랑스럽기만 다. 그러니 그녀의 "말 새끼들"은 엄연히 애칭이라 하겠다.



  

 

사랑스러운 망아지들!

사진: Unsplashred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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