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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Nov 26. 2024

[번외 편] 사람이 되어라

<고수임 여사+진혜원이야기>


  "이노무 말 새끼, 이번엔 대추나무집이냐? 하루가 멀다 하고 남의 집 항아리를 냐? 발을 땅에 붙이고 다니라고 할미가 몇 번을 말허냐. 네가 새여?"


고수임 여사는 부지깽이를 들고 말 새끼 4호 진혜원에게 으름장을 놓는 중이다. 진혜원은 황금색 보자기를 두르고 담벼락을 타고 다녔다. 그러다 땅에 불시착하여 남의 집 항아리를 깨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할머니, 난 말 새끼가 아니고 독수리 오 형제라고. 독수리는 원래 날아다녀."


  "이노무 가시나! 너 계속 천방지축 날뛰다간 시집도 못 가. 이 근방에 소문 다 났어."


  "할머니, 걱정하지 마. 나한테 장가 온다는 남자 줄 섰어. 양계장 집 미노미노, 대추나무집 정후 오빠, 동막골 창수 다 나랑 결혼하겠대. 지금 큰일이라고. 할머니는 누가 제일 나아?"


고수임 여사는 따박따박 야무지게 말대꾸하는 혜원을 보며 혈압이 올랐다. 저 날뛰는 말 새끼를 어찌 사람을 만드나 걱정이었다. 마구간에 붙들어 매어 놓을 수도 없고 부지깽이도 소용이 없었다.  


  "나, 할미 말 새겨 들어라. 넌 말 새끼도 독수리도 아니여. 넌 사람이다. 사람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말 새끼 4호 진혜원은 고수임 여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황금색 보자기를 휘날리며 또다시 담벼락을 타고 달아났다. 진혜원의 우렁찬 노래만이 메아리로 남았다.


  쳐부수자 알렉터 우주의 악마를 불새가 되어서 싸우는 우리 형제        

            
             

불새가 되어 우주의 악마들을 물리치고 싶었던 진혜원

  



고수임 여사의 더 아픈 손가락이 말 새끼 4호 진혜원이다. 자신이 키워서 그런지 더 정이 갔다. 말 새끼 4호의 어미는 처음 인사 왔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핏기 없이 하얀 얼굴에 빼빼 마른 몸이 얼핏 봐도 허약해 보였고 병치레 깨나할 것 같았다. 애는 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이미 배 속에 있단다. 애를 밴 지 넉 달이 넘었다는 배는 홀쭉하기만 했다. 둘째 아들은 얼마 전까지 통통하니 복스러운 아이를 만나고 있더니만 어디서 갑자기 이런 걸 데려오는지, 그것도 애를 배고 나타났으니 반대할 수도 없었다.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식부터 올려야 했다. 입덧은 어찌나 심하던지 결혼식도 겨우 마치고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 급히 얻느라고 고수임 여사의 집 옆집이 신혼집이었다. 며느리는 임신 기간 내내 꼼짝을 하지 않았다. 방안에 드러누워 걸핏하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둘째 아들을 괴롭혔다. 순해 빠진 둘째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 몇 시간이고 옆에 앉아 배를 쓸어주었다.


고수임 여사는 며느리가 먹을 수 있는 걸 찾아 이것저것 방문 앞에 가져다 놓았지만 며느리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미가 뭐라도 먹어야 애가 크지. 그렇게 안 먹어서야 되겄냐. 애 생각해서라도 조금씩이라도 먹어라.”


며느리는 임신 내내 먹지 못했는데 아기는 그 산부인과에 제일 컸다. 방에만 누워 있어서 애가 커진 것 같았다. 여자아기였고 몸무게가 4kg이 넘는 우량아였다. 며느리는 피부가 하얬는데 아기는 황색이었다. 팔다리가 가는 제 어미와 달리 팔다리도 아주 튼실했다. 고수임 여사는 말 새끼 4호를 처음 본 날 ‘고 녀석, 참 복스럽다’고 생각했다.


말 새끼 4호는 쥐띠에 오후 3시 출생이었다. 낮 쥐, 그것도 대낮에 태어난 쥐는 평생 편하게 먹고산다고 예부터 그랬다. 대낮에 쥐는 자는 시간이 아니던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재물이 떨어질 걱정이 없고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팔자다.


또 엄지가 자신과 똑 닮았다. 일명 개구리 엄지로 세로보다 가로길이가 더 긴 납작한 엄지였다. 제 부모의 예쁜 손가락은 닮지 않고 할머니의 손가락을 닮다니 신기했다. 일곱의 손자, 손녀 중에 유일하게 고수임 여사의 손가락이 유전되었다. 예부터 손재주가 많은 손이라 했다. 고수임 여사는 손녀의 손재주 많은 손이 고된 일을 하는 손은 되지 않길 바랐다. 손녀의 작은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가, 펜 잡는 손이 되려무나.”


말 새끼 4호는 아주 순했다. 집에 아기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도통 울지를 않았다. 배가 고파도 누운 자리가 불편해도 울지를 않았다. 고수임 여사는 혹시 아기가 어디가 모자란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원체 몸이 허약해 보였던 며느리는 출산 이후에는 더 거동을 하지 못했다. 그런 어미의 옆에서 아이는 천장만 바라보고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고수임 여사는 며느리보다 아기가 더 가엾게 보였다.


그녀는 말 새끼 4호가 목을 가누자마자 자신의 등에 업었다. 며느리 옆에만 두면 바보가 될 것만 같았다. 포대기에 아기를 꼭 싸매고 밭에도 데려가고 이웃집에 마실 갈 때도 데리고 다녔다. 아기가 혹여 벙어리라도 될까 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 어미는 젖도 돌지 않았기에 고수임 여사는 미음을 끓여 아기에게 먹였다. 아기는 주는 족족 쩝쩝거리며 잘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예뻤다. 펜 잡는 손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게 되었다.


말 새끼 4호는 쑥쑥 자랐고 병치레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네 살이 되었을 때 국민학교 1학년처럼 보일 만큼 키가 컸다. 고수임 여사는 그때까지도 말 새끼 4호를 등에 업고 이웃집 마실을 갈 때 꼭 데리고 다녔다. 둘째 아들은 말했다.


  “다 큰 애를 왜 업고 다니세요? 제 발로 걸어 다니게 두세요. 어머니 허리 아프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아직 네 살이다. 아가구먼. 우리 워니 할미 등이 좋지?”


고수임 여사의 등에 업혀 있던 혜원이 방긋 웃었다. 고수임 여사는 자신의 고향 지명으로 불렸던 ‘소향댁’에서 ‘니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니 할머니로 불리는 게 더 좋았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니 할머니로 불렀다.


혜원은 고수임 여사의 등에 업혀 다니며 어린 나이에 각종 담금주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가가호호 담금주를 만들었다. 시중에 파는 술보다 도수가 높은 것도 많았다. 고수임 여사는 말술로 동네에서 그녀를 대적할 술꾼은 없었다. 둘째 아들도 말술이었다. 그녀의 손녀인 혜원도 서너 살부터 가가호호 돌며 담금주로 주도(酒道)를 배웠다. 어린아이였음에도 주도에 철저했다. 일절 잔을 꺾지 않았다. 자신보다 최소 60년 이상은 더 사신 분들 앞에서 그녀는 원샷만을 고수했다.


  “애 머리 나빠져. 그만 줘.”


고수임 여사가 말려도 그녀의 친구들은 혜원에게 술을 권했다.


  “아가, 요거 먹음 똑똑해져. 아주 똑똑해진다구.”


혜원은 자그마한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아 홀짝홀짝 핥아보고 입맛을 다시고는 원샷을 했다.


  “캬~”


혜원이 술잔을 비우면 할머니들은 그녀의 입에 쪽 찢은 부침개를 넣어주었다. 혜원은 술 한 잔과 부침개에 흥이 절로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 곡조를 뽑아 올려야 했다. 혜원의 아버지이자 고수임 여사의 둘째 아들이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항상 부르던 노래였다.


  “콩~ 밭 매는 아~ 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혜원의 노랫소리에 할머니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소매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고수임 여사도 어린것의 목소리가 어찌 저리도 설움이 가득한가 안쓰럽기만 했다. 저 작은 가슴 안에 무슨 설움이 가득하여 목소리가 처량한가 싶었다. 혜원은 커갈수록 전쟁 중에 굶어 죽은 첫째 딸을 닮아갔다. 고수임 여사는 혜원이 자신의 첫째 딸인 것만 같았다. 못다 한 생에 한이 사무쳐 다시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 살 아이의 목소리가 이토록 설움이 가득할 수는 없었다.


  “우리 니는 가수 시켜야 혀!”


충주댁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쳤다. 훌쩍이던 할머니들도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고수임 여사만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우리 니는 공부시킬 거여. 노래 가사를 어찌나 잘 외우는지 몰라. 한 번만 들어도 똑같이 따라 해. 똑똑한 애라고!”


고수임 여사는 다짐했다. 우리 니는 한이 없게끔 온 세상을 다 누리게 해 주겠다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하게 해 주겠다고. 생에 미련이 털끝만치도 남지 않을 만큼 이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다. 자신의 품에서 곱게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혜원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헤어지게 되었다.


천성이 여리고 남 사정 어려운 것 그냥 보지 못하던 둘째 아들이 친구에게 보증을 서준 일이 잘못되었다. 담보로 잡혀 있던 집이 하루아침에 남의 손에 넘어갔다.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그 해 여름 혜원의 여동생이 죽었고 원체 몸이 약했던 며느리는 바깥출입을 전혀 못하고 앓아누웠다. 혜원 또한 여름내 열병을 앓았다.


아들 내외는 며느리의 친정이 있는 읍내로 이사 나가겠다고 했다. 고수임 여사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 했으나 아들 내외는 거절했다. 며느리가 둘째 아들을 꼬드겨 낸 것만 같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줄줄 내뱉는 아들의 말에 반대할 틈조차 없었다. 아이들 교육하기에도 읍내가 낫고 애들 엄마도 친정이 가까우니 병치레를 하더라도 봐줄 사람이 많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들 내외는 급작스럽게 이사를 가버렸다. 고수임 여사는 그간 모았던 돈 500만 원을 봉투에 넣어 아들 내외에게 건넸다. 잘 가지고 있다가 살림이 어려울 때 보태라고 전하면서. 당시에 500만 원이면 읍내에서 방 두 칸짜리 전세를 얻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아들 내외는 급하게 단칸방 하나를 겨우 마련해서 나가는 형편이었다.


그 뒤로 고수임 여사는 읍내에 5일장이 열리면 푸성귀를 뜯어 나갔다. 푸성귀는 구실에 불과할 뿐이었기에 싼값에 팔아넘기고 부리나케 아들 내외의 단칸방으로 찾아갔다. 여름내 열병을 앓고 읍내로 이사한 뒤로 혜원이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나~ 내 새끼. 어찌 말을 안 한 더냐?"


고수임 여사는 송아지처럼 큰 눈을 끔벅이기만 하는 혜원을 보며 눈물지었다. 황금색 보자기를 두르고 담벼락을 타고 날아다니던 말 새끼 4호 혜원이 그리웠다. 자신이 뭐라 하건 따박따박 야무지게 말대꾸하던 혜원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 해 겨울방학, 혜원이 큰 가방 하나를 짊어지고 고수임 여사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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