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부모와 보낸 인생 첫 한 달
2021. 11월
예정보다 2주 빠르게 태어난 아가는 신생아실에 입성한 지 이틀 만에 퇴원을 했다. 아빠는 긴장이 돼서 매일 하던 운전이 오늘 처음 하는 것처럼 떨려했다. 속도를 너무 낼까 봐, 끼어드는 차에 급정거할까 봐, 두근대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퇴원 전날, 남편이 복작복작 열심히 대청소를 했으나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우리에게 모든 동선은 생소하다. 어떤 물건을 어디에 두어야 가장 편한 것인지, 아이를 키우기에 최적의 포지셔닝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도착하자마자 안방 한편에 아기를 두고 바삐 짐 정리를 했다.
곤히 잠든 아기가 깰까 우리의 움직임은 매우 바빴다. 아기가 깨면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타 줘야 하는데 기저귀를 갈려면 기저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했고, 기저귀를 갈기 위해 가장 좋은 위치와 필요한 준비물을 파악해야 했다. 모유가 아직 충분히 나오기 전이라 분유를 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분유 뚜껑을 따고 분유를 타기 위한 방법을 숙지하고, 젖병을 끼우는 방법도 파악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은 순전히 부부 둘이 알아서 해야 하기에 서둘렀다. 우는 아기를 들고 한 명이 허둥대면 시간만 더 길어지기에 그 사이에 모든 걸 숙지해야만 한다.
생후 1개월이 안된 신생아는 비교적 잘 자는 편이다. 대개는 그렇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대체적으로 그런 편'에 속했다. 엄마 아빠가 허둥대고 멘붕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잤고, 출산한 엄마도 몸이 회복할 수 있도록 꽤 오랜 시간 잠을 자 주었다. 기본 4-5시간씩 잤는데, 생후 30일 이전에는 탈수가 생길 수 있으니 4시간 이내에 수유를 권장하여 일주일 동안은 알람을 맞춰 아기를 깨워 먹였다.
우리 집에 온 작은 천사와 함께한 몇 가지 기억나는 장면들.
#장면1
기저귀를 갈다가 똥을 누길래 똥꼬를 닦아주니 자극되어 줄줄이 꽈배기 기계처럼 똥이 나온 딸내미 부스터. 남편이랑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누구 딸내미 아니랄까 봐 엄마손 비데에 쾌변 하는 딸내미가 눈물 나게 웃겼다.
#장면2
잘 먹고 잘 자다가 밤에 잠투정을 하며 낑낑대길래 왜 그러지, 고민한 첫 주. 주말이 되자 의문이 해소되었다. 낑낑댈 때 기저귀 안을 보니 똥이 뾱하고 개미 눈물만큼 나오더라. 욘석. 장트러블이 생겼구나. 변비까진 아니지만 힘주는 만큼 대장 활동이 따라주지 않아서 괴로움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 속도 모르고 왜 그럴까, 먹지도 않을 분유, 모유 주며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했구나. 앞으로도 바로 알아챌 수 없는 네 맘과 상태를 어찌 바로 캐치할 수 있을까, 부모의 생각을 처음 한 순간이었다.
벌써 50일이 넘어 60일을 보는 지금, 내 옆엔 쌔근쌔근 잠을 자는 아기가 몇 달 전부터 늘 있었던 것처럼 함께 하고 있다. 고작 두 달만에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히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살면서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한 일로 바뀌었다.
그때 있던 안 좋은 일, 아쉬운 일들이 없었더라면, 하는 아찔한 가정법이 돼버렸다.
- 아프리카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프리카에서 철없이 내 성격대로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을 만나서 힘든 마음 위로하지 못했겠지.
- 한국 와서 남편이 이상한 회사에 취직이 안 됐더라면, 대기업에 한 번에 붙었더라면, 중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한국에서 기러기 부부를 안 했다면, 역학조사관을 안 했더라면,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 순간에 못 만났을 테지.
순간순간의 불운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 인연이 문득문득 '다행이다. 그때 안 좋은 일들이 있어줘서-'로 바뀌었다.
한 때의 불행도 필연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닌 똥쟁이 아가씨와 새해를 밝힌 2022년이 시작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