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맘의 모유수유 후기
아기가 100일을 기점으로 모유수유는 종료됐다.
앞으로 또 있을지 없을지 모를 기회지만 소회를 남겨보도록 한다.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하자마자 당일 저녁부터 신생아실에서 수유콜이 왔다.
기름 같은 초초유가 하품하고 흘린 눈물처럼 나온다.
아기는 유두가 작은 엄마 젖을 빨지 못하고, 유두보호기를 빌려줘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먹는단 표현보단 노력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모유수유란 당연히 알아서 엄마가 물리고, 애기가 빠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전면허 주차 연습만큼이나 어렵다니 초보맘은 이때 1차 당황한다.
집에 와서 회음부도 아물지 않고, 아기도 안고 있어야 해서 직접 물리는 연습 더 안 하게 된다. 아기는 힘들어서 칭얼대고 나는 나대로 힘들고. 유두보호기도 때때마다 찾으려니 귀찮아진다.
그렇게 첫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자 젖몸살 나기 직전으로 가슴이 돌덩이가 됐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출근하자마자 바로 유방 마사지 선생님을 호출했고, 전문가의 손길에 돌덩이가 된 가슴은 한 풀 화가 누그러졌다.
마사지 선생님은 보건소 유축기 빌려오라 남편 시키고* 가슴마사지 받으며 직수 교육, 유축 교육받았다. 여전히 직수는 잘 안 됐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물리는 시도를 했다.
*코로나로 출산 직전까지 안됐다가 출산한 다음 주부터 대여를 해줬다. 그러나 1달밖에 대여가 되지 않아 추가 휴대용 유축기를 구입해야만 했다.
결국, 유축의 길로 들어섰고, 모유 수유하는데 시간텀도 들쭉날쭉 양도 들쭉날쭉하다보니 조리하면서 푹 자고 싶어 주말 밤에 한번, 두번 건너뛰며 분유와 혼합을 했더니 양이 줄었다 늘었다 고무줄이 됐다.
이 즈음부터 맘카페를 찾아보며 모유수유에 대한 온갖 귀동냥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대로 직수를 시도하며 개고생을 할지, 유축으로 개고생을 할지, 단유 하고 분유로 돌아설지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선택을 하자면 결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케이스들을 살펴보았다.
직수
직접 수유를 한다.
장점: 젖병을 닦을 필요가 없다. 분유값이 안 든다.
단점: 아기와 합을 맞추기까지 약 한 달에서 두 달 사이는 잠을 포기하고 몸의 안락함을 포기하며 오로지 모유수유에만 집중해야 한다.
유축
유축 기계를 이용해서 모유를 수유한다.
장점: 유축 시간만 맞춰서 유축하고 수유를 하면 되니 직수보다 수유텀이 길고, 수유텀 훈련이 가능하다. 분유값이 안 든다.
단점: 모유량이 적으면 분유와 혼합을 해야 한다. 젖병을 닦고, 유축을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수유 타이밍을 딱 맞춰서 수유하기가 어렵다. 유축 기계가 비싸다.
분유
분유를 사서 수유한다.
장점: 엄마의 몸이 편하다. 누구나 수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점: 젖병 설거지와 분유값. 때때로 젖몸살과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는 불명예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일단은 가능한 것부터 하기로 했다. 직수는 아기도 힘들고, 나도 힘드니 유축으로 가고, 유축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힘들면 분유로 때우기로 했다.
그럼 직수는 언제 되느냐? 50일 즈음이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 아기는 주수를 다 채우지 못해서 작고 힘이 달려서 힘이 좀 생길 때인 50일은 되어야 빠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그렇게 유축과 혼수의 시간이 흐르고 40일이 되어 다시 도전해보니 보호기 없이 헙!, 하고 물더니 20분을 쑥 먹으며 가슴을 비워줬다.
이제 직수의 길이 열리나, 했는데 문제는 또 다른 곳에 있었다.
직수로 잘 먹는데 유축으로 3시간씩 텀이 있다가 밤잠도 가끔씩 4시간 이상 잤는데
직수를 하려니 그것이 다시 2시간이 되어 버렸다.
(원래 직수가 텀이 짧다)
가끔은 1시간 미만..
차라리 젖병 닦는 게 낫지, 하루 종일 붙어서 젖을 주려니 유두가 피가 나고 아파졌다..
내 가슴이 견디질 못하니 다시 유축으로 전환했고, 가슴이 조금 나아질 즈음 밤중엔 누워서 직수를 했다.
낮에도 가슴이 안 아프고 괜찮으면 직수를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 엄마 몸에는 항상 '젖이 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가슴이 뭉쳐있는 느낌이 있다.
아마 이 느낌이 막 기분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가끔 단단해지고 아프기까지 할 정도로 콕콕 찌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유는 알다시피 그냥 물이 아니라서 끈적하고 냄새도 쿰쿰하다. 이런 액체가 항시 가슴에서 흘러나오고 매일매일 생리처럼 줄줄 흐른다고 생각해보시라.
굉장히 찝찝하고 무겁고 귀찮고 아프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한다는 건, 출산을 한 지 얼마 안 된 '산모'가 있는 힘껏 몸안의 기운을 쏟아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산하면서 온갖 에너지를 쏟고 장기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는데 모유수유는 출산 시 기운을 6개월-1년 동안 나눠서 쏟아내는 것과 동일하다.
직수도 하면서 유두가 피가 날 때를 대비해 간간히 유축도 하던 때였는데 유축을 하면서 가끔 샐 때가 있었고,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그거 좀 새는 게 뭐 대수라고 생각했는데 출산휴가 후 복직이냐, 이직이냐, 육아냐 고민하면서 설거지하고 있던 중에 유축기가 새면서 아기 줄 것도 사라지고, 이불, 옷, 아기 옷, 기저귀가 모조리 젖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모유 대잔치!!!
모유는 옷에 젖거나 피부에 묻으면 굉장히 쿰쿰한 우유 쉰내가 나면서 끈적거린다.
얼마나 불쾌하냐면 차라리 아기 오줌이 더 산뜻할 정도이다.
짜증이 나지만 그 모든 걸 자초한 건 내 손이고, 내가 산 유축기고, 유축을 하겠다는 나의 잘못이지, 아기는 잘못이 없다.
화낼 곳도 없다.
그 순간, 육아며, 수유는 당연히 출산 직후 여자가 일정기간 동안 담당하는 게 맞지만
왜 나만 이래야 하는가
왜 남편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똑같이 아기를 원하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엄마만 유축이 되고, 엄마만 24시간 전담마크를 해야하는가
임신처럼 말이다.
이런 말도 있더라.
"양심적으로 임신은 내가 했으면, 모유는 남편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남편과 가족들이 99%를 서포트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돕는 역할이지, 당사자와 절대 양분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연한 자연의 섭리지만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출산휴가는 왜 여자만 있는가,
출산을 여자만 했으니까
모유수유는 왜 엄마만 하는가,
모유수유로 인해 밤에 통잠을 못 자는가,
가슴이 왜 아파야 하는가,
출산은 여자만 하니까.
당연한 답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분할 수도 없지만 99명이 모유수유는 엄마가 결정하는 거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상황에 따라 달린 거지, 하는 소리가 있더라도 1명이 그래도 엄마가..라는 소릴 하게되면 99명이 그런 소리를 하며 죄책감과 더불어 손가락질하는 듯한 더러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그놈의 '완벽한' 애착이론과 모유수유 예찬론이 떠오르면서 '시벌탱!!' 하는 생각이 단전 깊은곳에서 끓어올랐다.
이런 상황을 얘기할 때마다 남편은 얘기했다.
힘들면 그만두자.
힘들면 분유하자.
문제는 그만두는 용기도 힘들었고, 지속하자는 끈기는 더 힘들었다.
그토록 많은 엄마들이 '모유수유'라는 이름 앞에 치를 떠는 이유에 대해 납득이 갔다.
더 이상 대상 없는 화를 내고 싶지 않았고, 가슴의 통증을 품고 싶지도 않았다.
아기 70일 전, 모유수유를 중단하기로 맘먹었고,
유축을 다시 시작했고,
직수를 끊기 시작했다.
완벽히 중단을 한 건 아니고 110일까지 하루 한 번 물리기도 하고, 유축을 저장하려고 더 짜내기도 하면서 오락가락한 마음을 붙잡았다.
아기는 다행히 분유를 먹은 기억이 있어선지 분유, 모유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고, 처음엔 많이 게워내서 미안했다가 시간이 지나자 게워냄도 줄어들어 마음을 놓았다.
아마도 모유수유는 엄마들이 직면할 아이의 성장 고개에서 자신과의 타협과 자식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첫 번째 고개이기에 더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