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Apr 18. 2022

100일 아기 어린이집

0세 전용 어린이집 다니는 아기

2022년 2월

출산하고 12월에 연구원 계약 만료로 인해 1월 초에 면접을 보러 갔다. 계획된 건 아니고 어쩌다 보게 된 사람인 채용공고에 친정과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비슷한 직무(업계는 다름)로 사람을 뽑고 있어서 지원했는데 바로 다음 주 면접이 잡혀서 보게 된 곳이었다.


공고 상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한 것으로 보여 별 기대 안 하고 갔다. 오히려 같은 동네에서 출퇴근이 더 짧은 곳을 원했기에 플랜 B로 생각하고 갔다.


면접을 보자마자 풍겨오는 합격의 냄새.

회사 분위기나 급여 조건이나 꽤 만족스러웠으나 문제는 내 입장이었다.

나는 당장 돈이 급하거나 복직이 어려운 직종도 아니었다.

계약직 만료로 인한 퇴사이기에 6개월간 실업급여가 나올 예정이었고(출산 후 급여가 1개월치 남은 상태였음), 육아로 인해 1년을 쉬든, 3년을 쉬든, 몸만 성하다면 언제든 조건을 골라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급여까지 많이 받는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육아는 시간이 지나면 놓치는 게 많지만 일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육아에 집중하며 다른 외적인 것들을 놓아두는 것이 아니던가.


무엇보다도 아기는 의사표현을 말로 표현 못하는 100일 전후의 아기인 게 절대적으로 부모 중 주양육자가 필요한 이유였다.


우리 가정의 재정상, 두 명이 일하고 아기를 맡아줄 시터를 구하여 한 명의 월급을 고스란히 시터님께 드릴 순 없었다. 그럴 거였으면 한 명이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게 재정적으로 이득인 셈이다.


무급으로 부모님의 손길을 빌리기도 어려웠다. 돈은 둘째 치고, 각자의 스케줄과 일이 있어 매일같이 시터로서 아기를 봐주실 수 없었다.


선택은 하나였다.

내가 집에서 육아를 하여 아이가 두발로 걸어 다니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정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 시기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엄마인 나는 집에, 아빠인 남편은 회사에, 모두가 하하호호 행복한 결말, 이면 이 세상에 고민과 선택이 왜 있겠는가.

너무 뻔한 결말 앞에 남편과 나는 자의식을 가진 현대사회 인간이었다.

그것도 2022년을 살아가는 30대 부부 말이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넘어선 육아빠를 꿈꾸고, 나는 워킹맘을 꿈꿨다. 꿈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참을까, 말까 고민하다 어차피 이룰 꿈이라면 그게 꼭 아기가 만 3세가 지나서야 할까?, 아빠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걸까?


정답은 각자 다르다.


우리는 우리만의 정답을 만들기로 했다.

엄마는 회사로 가기로 했고, 아빠는 집에 남기로 했다.


단, 엄마가 회사에 갔다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아빠 육아휴직은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아빠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어린이집은 보내기로 했다.


입사일도 확정되어 3월에 복직 아닌 복직을 하게 됐고, 그 사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중 한 곳은 0세 전용이었고, 한 곳은 단지 내 어린이집이었다.

어린이집 선정은 단순했다. 집에서 최단거리. 동네  카페에서 특별히  좋은 평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외에도 객관적인 자료로는, 아이사랑 보육시스템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분이고, 근속연수가 얼마나 되고, 급식관리 부실이나 체벌 등의 이유로 벌점을 맞은 적이 있는지, 매스컴에 보도되었는지 등을 확인했다.


0세 전용 어린이집은 출산 전 회사 게시판에 홍보글을 보고 알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예전 글이긴 해도 평판이 좋았다. 출산휴가가 끝나자마자 일터로 가야 하는 부모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대신 0세 전용이라 만 3세가 되면 큰 어린이집으로 가야만 해서 초등학교 갈 때까지 다닐 수는 없었다.


70일 즈음 아기띠를 하고 어린이집 투어를 갔다.

0세 전용은 다세대주택의 1층 집을 개조해 만든 곳이었다. 선생님들도 70-80%가 근속연수가 꽤 높았다. 연령대도 우리 엄마 세대보다 조금 더 동생이신 분들로 구성되어 베테랑의 향이 뿜어 나왔다. 0세 전용이라 1:2 보육도 눈에 띄었다. 아기들만 있고 원이 크지 않아서 어두운 분위기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밝으셔서 낮잠시간이었음에도 화기애애한 환경이 눈에 띄었다.


추가로 유아교육을 전공한 지인의 조언에 따르면, 양말 위생 확인법이 도움이 되었다. 맨 양말에 흰색이면 청결상태가 좋은 거고 선생님이나 원장님이 덧신이나 실내화를 신으면 매일 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까지나 경험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아기를 등록하기 위해 2번째 방문했을 때는 선생님들이 연차를 간다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원장님도 알겠어요, 하는 부분이 좋았다.


선생님들의 어투나 분위기로 봐선, 이곳에선 연차를 쓰는 것이 자유롭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해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곳 같았다.


연차 사용뿐만 아니라 원아가 입학하고 등/하원 시간을 협의할 때도 원장님이 무조건 고객의 니즈(?)만 우선하지 않았다.


"아기들이 2월에 졸업을 해서 선생님들이 1:2 보육이 안돼서 3월에 입소가 가능해요."

"등/하원 시간이 늦어져서 야간보육(19:30까지)을 원하시면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서 미리 알려주셔야 해요."


어떻게 보면 너무 어린이집 생각만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마음이 더 편했다.

다른 원에서는 아무리 봐도 엄마 입장에선 무리하게 원장님만 될 수 있다고 강행하는 것 같은데 과연, 일선에 있는 선생님들도 똑같이 생각하실까?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수가 모자라서 안돼도 OK, 아기가 혼자 어려도 OK, 입소비 안 내고 아이 적응훈련 위해 일주일 동안 그냥 맡겨도 OK, 뭐든 OK 어린이집은, '나한테 다 맞춰줘. 아 좋아라ㅎㅎㅎ' 느낌보다 '씁... 괜히 선생님들이 고생한다고 미워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엄마는 고객이자 다른 회사의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장려하는데 아이를 돌보는 회사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과연 선생님이 행복하지 않은 곳에서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3월 입소를 확정하고 기다리다가 2월 초에 연락이 왔다.

자리가 나서 정식으로 입소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아마 그 아이는 코로나 감염이 급증하여 가정보육을 시작하게 됐거나 졸업 전에 미리 입소가 가능해서 옮겨간 것 같았다.


90일이 막 지날 즈음 입소료를 내고 아이사랑에 보육료 결제를 신청했다. 2월 한 달은 아침에 가서 점심에 데려왔고 2월 졸업식이 끝나고 난 뒤, 4시까지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아빠 존재도 가물가물하게 인식하는 시기라 그런지 아기는 낮잠 잘 자고 분유 먹다가 집에 돌아왔다. 울지도 않고, 크게 보채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 많은 곳을 갔다 와선지 오후엔 푹 잘 자고 깨면 이전보다 발랄해진 느낌으로 놀았다.


잘 적응할 무렵, 코로나의 그물은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잔인한 엄마일 수도 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코로나 감염이 급증하다 보니 영아 사망자도 발생하던 시기라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팬데믹 시절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감수한 일이었다. 아무리 피해도 세 식구가 세상과 단절하지 않는 이상, 일가친척한테 옮을 수도, 엄마 아빠 직장에서 옮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등원한 지 얼마 안돼 코로나 감염이 원에 발생해 한 엄마가 화를 내며 입소를 취소했다며 담임선생님은 죄송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썼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서 너무 송구스럽다는 말을 한참 하시기에,
[나는 괜찮다. 우리 아이도 괜찮을 거다. 그리고 이 일은 선생님들 잘못이 절대 아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다. 역학조사관을 했었으니 누구보다 이 일에 대해 스트레스받고 계시고 노력하고 계신 걸 알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라고 말씀드렸다.


나 혼자서 집에서 애만 봐도 옮는 게 코로나 바이러스다. 당연히 단체생활을 시작했으니 크고 작은 병들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너무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 고생을 시작한 걸 수도 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냥 미안하기로 하고 내 길을 가기로 했다.


나중에 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때문에 내가 고생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 지금의 일을 갚아주자, 마음을 먹었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난 뒤부터 오히려 맘 카페를 잘 안 들어간 것 같다. 맘 카페에 들어간 이유 중 하나는 육아 경력단절녀인 엄마/시엄마 외에 조언을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최신 육아지식을 우리 아이와 접목해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 맘 카페에 들어가서 글들을 찾아봤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매일매일 아이에 대한 피드백과 이건 왜 이러지? 하는 궁금증이 바로 해결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 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생님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전문가의 상담을 요했고, 그 말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나면 모든 걱정과 고민이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심지어 보육료는 모두 무료이다. 0세 아기는 한 달에 50만 원이 안 되는 보육료가 책정되어 있고, 이 금액은 모두 정부에서 지불된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유치원을 가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보내고 싶은 기관을 선택할 수 있고, 전액 무상 보육이 가능한 건가 싶다.


아무튼 한 달에 50만 원을 지불해도 사실 아깝지 않은 금액인데, 무료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집에서 가까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 출근을 시작했다.


+정부지원 아이돌보미 사용이 어린 나이에 더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출산 직후 신청했는데도 4월이 된 지금까지도 내 순번은 돌아오지 않았고, 금액도 어린이집 보육료가 무료인 것에 비해 개인 시터를 고용하는 것과 금액적 차이가 크지 않아서 고려할 수 없는 방안이었다. 심지어 돌봐주시러 오는 분을 카메라로 감시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기와 둘만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어린이집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리원 안 가고 집에서 산후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