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코로나 시작부터 핫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이여수스이다.
처음 한국 뉴스 기사에 이름이 실릴 때는 거브러이여수스 혹은 발음 그대로 게브레예수스 라고 실렸다.
우리 식대로 마지막 이름을 본인의 이름이라고 불린 것이다.
예전 히딩크 감독처럼 사실은 히딩크는 성씨이고 앞에 있는 '거스'가 본인의 이름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에티오피아는 이름 짓는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미국 이름이나 한국 이름이나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있고, 가족 간에 같이 쓰는 성씨가 따로 있다. 서구권에서는 중간 이름을 만들어 가문의 대표 이름이나 상징성 있는 명칭을 붙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족이 공용으로, 자신이 고유한 것으로 쓰는 이름들의 합이다.
에티식대로 짓는 이름은, [자기고유이름-아버지이름-할아버지이름]이다.
그의 이름 중 아드하놈은 아버지 이름이고, 게브레예수스는 할아버지 이름이다.
한국 뉴스에는 한동안 사무총장의 할아버지 이름으로 그를 명칭하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성씨가 따로 없는 에티식 작명 방법은 그 문화를 잘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실수이다.
한 가족이 동일 성씨를 갖고 있는 우리와는 다른, 3대에 걸친 이름으로 자신을 고유 명사화한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을 듣고는 네가 어느 집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어 따로 성씨가 생겨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가문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자신의 혈족을 나타내고 자신의 이름도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에티만의 작명 방식은 2016년 에티오피아에서 특별한 경험을 남겨주었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USIM칩을 등록하는 일이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선 유심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첫 두 달간 수도에 머물렀으므로 수도에 있는 큰 통신사 사무실에서 개통을 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수도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인 지방으로 파견을 갔고, 정신없는 활동 속에서 드디어 휴대폰을 분실하게 되었다.
동네 통신사 사무실을 방문하여 새 유심칩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이름을 새로 작성해서 줬더니 담당 직원이 내 이름을 보더니 할아버지 이름이 어디 갔냐고 묻는 것이다.
열심히 firstname과 last name과 성씨에 관한 설명을 했지만 그건 너네 나라 식이고 우리 식대로 이름을 적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에서는 외국인이 많고, 전산 처리가 유연하니 여권 그대로 이름을 적어도 처리가 됐는데 지방 전산에는 입력 오류가 뜬 것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에티는 되는 것도 안되고 안 되는 것도 된다.
나는 혹여나 이 직원의 말대로 적어냈다가 나중에 여권 대조에 실패해서 갑자기 통신비가 날아가거나 통신이 안되거나 하는 불상사를 겪고 싶지 않았기에
열심히, 열심히, 잘 알아보라, 외국인 이름은 에티식 이름과 다르다. 내 여권을 보라, 외국인 등록증을 보라, 열심히 설명하고 1시간을 기다렸으나 결론은 그냥 우리 식대로 해라,였다.
아마 통일되지 않는 외국인 이름 기입 방식 때문에 지방 통신사에서 전산에 입력할 때 오류가 나서 이걸 고치고 승인을 받으려면 수도에 연락해야 하는 등 번거롭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반'만 받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적어주었다.
'반'이라 함은 수도에서 산다면 문제가 생길 시, 통신사에 가서 다시 유심을 발급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듣고 보니 고객의 입장이 아닌, 철저히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고객이 맞춰주는 시스템이다.
어쩔 수 없이 종이에 영어로 [내 이름-아빠 이름-할아버지 이름]으로 작성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 걸로 안다.
초등학교 때 가족 계보 숙제가 있어 그걸 만들 때에야 할아버지 성함이 ‘판호’ 임을 알았다.
할아버지 이름을 어릴 적 기억에서 어렵게 꺼내어 돌아가신 그분의 이름을 영어 표기로 작성했다.
아마도 한평생 영어로 이름을 써 본 적이 없으실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집에서 허혈성 심질환(지금 와서 추측)으로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이셨으니 말이다.
영어 표기법이 맞는지 상관없이 그대로 에티오 텔레콤에 접수됐고, 그 뒤로 통신사에서 문자가 올 때마다 내 이름 아빠 이름 할아버지 이름으로 날아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것 같다.
손녀딸의 기억엔 없는 할아버지는 아셨을까?
사후 20년뒤 손녀딸 덕에 자기 일생에 들어본 적도 없는 아프리카 지방 소도시에서 자기 이름을 남길 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