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우이웃이나 돕지, 왜 남의 나라 먼저 도와?
간호사를 하고, 아프리카에 봉사를 다녀왔지만 의롭고 선함을 숫자로 따지면 마이너스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저 이러한 '결'을 가졌을 뿐이다.
돈을 안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돈을 많이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내 소원인데 이번 생엔 안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이윤을 남기는 성격의 직업들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럼 왜 하고 싶은가? 그것도 순전히 겉멋이 들어서였다. 고등학교 때는 의료보건에 종사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고, 노후 은퇴의 위기에서도 다른 사무직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것도 한 몫했다. 졸업을 하고 병원을 다니고 나서 선택한 직업들도 몸이 임상 간호사 근무보다 편하게 앉아서 하면서 보건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연구원을 시작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내 의지만 가지고 모든 일이 결정되진 않았으나 대개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 빼고.
공익을 위한다는 일을 하면 없이 사는 인생에 폼이 나 보일까 선택했으나, 따지고 보면 공익이 사익이 된다고 믿는 순간이 생기면서 나를 위해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왜 하는가, 하는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아래의 몇 가지 일화로 설득된다.
[조선족 자치구 아이들의 일상에 관련된 독서]
고등학생 때 읽은 책 중에 조선족 자치구에서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이들을 위한 복지의 필요성과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한중 수교를 맺고 나서 조선족들에게 동포비자를 내주면서 잃었던 선조들의 고국으로 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준 뒤의 이야기였다.
연변에선 한국에 다녀오면 점포 하나를 차릴 수 있다는 말에 너도나도 동포비자를 받았다. 한국에서의 초봉으로 온 가족의 살림을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과 조부모만 남기고 한국행을 택한 어른들이 많았다. 한 마을엔 조부모와 같이 사는, 아니면 이웃들 손에 고아처럼 남겨진 아이들이 있었다.
몇 년만 있다가 올게, 하던 부모는 한국에서의 벌이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게 되어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기 힘들었고, 바람이 나서 배우자와 아이를 버리거나 하는 식의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아이들의 복지는 중국 내에서도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라 차별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동포비자까지 내어주며 받아준 사람들의 중국 본토 가족까지 보살펴 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책에선 그런 사람들과 동거 동락하며 쓴 일기 형식의 글이었다.
학급마다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의 눈망울마다 맺혀 있는 사연들을 풀어쓴 에세이였다. 그땐 단순히 불쌍한 친구들, 그러나 한국에선 도와줄 이유도 마땅치 않고, 도와주면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히기에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쩌면 나와 같은 세대를 지나왔을 당시의 초중고 학생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미디어에서 중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이면을 부각하는 것만큼 조선족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졌다.
그 많은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조선 족자 치구에서 대규모 보이스피싱 사업을 시작하기라도 한 건가. 어쩌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그 책에서 봤던 많은 결손 가정 아동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가려져 있을 때 돈에 눈이 먼 검은손들이 끌고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무리, 두 무리가 검거되고 뉴스에 나오면서 현재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조선족'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을 준 것은 아닐까.
그분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잘 살고 계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 중국에서 임대하고 살았던 집의 주인도 조선족분이셨고 성실하게 일하시고 성과를 이루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보이스 피싱뿐만 아니라 현재 미디어에 노출된 곳에서 '조선족'과 관련된 범죄현장은 어쩌면 부모의 부재와 국가의 시스템이 닿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파생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를 비롯해 몇몇 어른들이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해 꽤 많은 액수를 손해 보았다. 나와 아무 상관없다 생각한 누군가의 불우함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제개발협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프리카의 기아보다 한국에서 불우한 애들을 먼저 도와야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그건 미국(강대국)에서 가난이 다 해결되면 남미에서 일어나는 경제 불황을 해결할 기회가 생길 거야, 라는 논리와 같다. 그사이 생겨나는 약소국의 피해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회에 살면서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는 시간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혈연, 지연, 학연 중 어느 것 하나 관련 없을 것 같은 중동에서의 전쟁과 아프리카의 가뭄이 난민 문제, 유가 급등, 참전 용사 문제 등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가장 핫한 이슈인 코로나-19가 그렇지 않은가. 다들 남의 집 불구경하다가 불이 옮겨 붙어서 난리 난 격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토대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인프라는 '남의 일'이 '내 일'이 되는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 지역만 코로나가 없어지면, 우리나라만 잘 통제하면, 아시아 확진자 수가 감소하면, 끝나는 일이 아닐 거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연이어 증가하고 있다.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국가에서 감염병은 지진, 쓰나미에 비할 바가 못될 정도로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광경을 우리의 여력이 아직 정비되어 있지 않으니 지켜보다가 여유 생기면 도와주자는 이야기를 할 때면 이미 너무 늦은 것일 수도 있다. 숨 돌릴 틈이 있다면 한국에서 방어하던 힘은 유지하고 보수하되 남은 여력을 좀 보태어 줄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파견을 갈 방글라데시 병원에서도 여유자금이 없으니 직원들의 몇 달치 월급을 구호물품과 의료자원에 사용하고 있다. 지금이 시작인데 앞으로 남은 날들은 어디서 끌어모은 자금으로 직원들의 생계와 병원의 재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누구나 심각한 일인 건 알지만 남의 집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을 꼭 돈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한 명씩 관심을 모아주면 여론이 될 테고 그렇다면 뭔가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