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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파이어족이 하고 싶지 않은가

경제적 자유를 통한 조기 은퇴자를 추구하지 '않는' 삶

by 사노니

파이어족이란?

영어로 경제적 자립과 조기 은퇴가 합쳐진 신조어로 30대부터 50대 사이에 일정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잉여로운 일을 주로 하며 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젊은 시절에 노동을 몰아서 한다는 신인류라고 칭한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겐 결코 허락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있지만 언젠가는 미래 인류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마드족'처럼 노트북을 갖고 아무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특정 직종의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단어였으나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우리 모두가 노마드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파이어족'이 하고 싶지 않냐고?!!


'파이어족'의 일상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과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 일에 치여, "돈만 많으면 이깟 회사 때려치우지."

"로또만 되면 투자만 하고 회사 안 다니지."

가 일반적인 이상향이라면,


나는,

"불로소득이 끊임없이 나온다면 돈 쓰면서 하고 싶은 연구나 프로젝트 만들어서 해보고 싶다."

가 이상향이라서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에 '쉬면서 노는' 삶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라 불리는 30-40은 파이어족을 꿈꾸고, 파이어족이 되어갈까, 하고 묻는다면

"누가 회사 꼬박꼬박 출근하면서 쥐꼬리만 한 돈 벌고 싶겠냐! 같은 돈을 벌거면 집에서 편하게 쉬면서 벌리면 출근 안 하고 집에 있겠지!"

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속에 내가 파이어족을 안 꿈꾸는 이유가 있다.

1) 회사를 꼬박꼬박 출근한다.

2) 쥐꼬리만 한 돈

3) 편하게 쉬면서 버는 돈


지금 회사에 출근하기 전, 풀 재택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풀 재택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1시간 이내)의 교통이 지옥이지 않은 형편으로 고정된 사무실에 간다는 것은 하루를 시작할 때 내가 정기적으로 기거할 곳에 간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육아와 살림으로 찌들어진 육체에게 또 다른 환경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은 분명 안식처로 좋은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고, 자고, 웃으며 생활하는 쉼터.

그러나 아무리 집이 좋아도 집이 너무 좋아서 집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보통 그런 경우, 전염병이나 정신적/육체적 질환으로 인해 있는 경우이지, 365일 중 단 하루도 집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집에만 있는 사람은 없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집은 편하고 좋지만 집 밖에서 신나게 에너지를 소비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 발휘할 때 집은 비로소 '집' 본연의 가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다.


집이 없으면 쉴 수 없지만 쉬려고 사는 생이 아닌 것이다.

고로 정기적으로 외부에 나가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나한텐 직장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사람도 만나고, 때때로 외식도 하고, 일을 하면서 시간도 금방 가고, 등등이 가능한 곳이며 여기를 다님으로써 돈이 들어온다.


쥐꼬리만 한 돈이지만 한 달 동안 우리 세 가족이 먹고, 자고, 활동하게 도와주는 금액이다. 동 시간 대비 불로소득으로 같은 금액을 벌 수 있는 일이 지금으로선 없다. 그래서 회사를 간다. 콩알만큼이라도 더 받는 쥐꼬리만 한 돈을 위해서.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쓰는 전기세, 물세 등등을 생각하면 동시간 대비 돈을 더 받는 느낌이다.


편하게 쉬면서 버는 돈에 속하기도 하다.

간호사를 하면서 병원에 근무할 때는 내 자리나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확보되지 않았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환경이 극한인 직무다. 진정한 사무직을 하고 싶어서 기웃거려본 다른 직장들도 앉아서 전화상담 위주의 대민업무나 출장이 잦은 업무들이라 앉아서 나의 일을 제작하거나 골몰하는 진정한 사무직을 하길 원했다.


진정한 사무직이 되기까지 돌고 돌아 지금, 사무실에 앉아서 정해진 기한만 잘 지킨다면 그 시간 안에 잠을 자던, 휴가를 가던, 상관이 없는 업무를 하고 있어 나름 '편하게 쉬면서' 돈을 번다고 할 수 있다.


쌓아온 지식과 경험으로 원하는 걸 창조해 주는 일로 돈을 벌게 돼서 출근 후 삶이 이전 직업들보다는 평온한 편이다.

*단 지금 직장의 단점은, 7일간 할 일을 2-3일에 바짝 당겨서 해야 하므로 쪼는 맛이 있다. 장점이라면 그렇게 3일을 일하면 남은 3일은 할 일이 없다. 타이밍을 내 맘대로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게 단점이겠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나름 회사'복'이 있는 팔자란 것이다.

분위기, 동료/상사들, 업무의 중요도 등은 급여와 근로시간을 제외한 외적인 부분들이다.


돈을 많이 주고, 적게 일하면 당연히 좋은 회사지만 한 명의 사람이 한 업계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비슷한 직무에서 큰 편차는 없는 것 같다. 대기업에서 일한다면 대기업 수준에서 비슷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면 그 수준에서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 내 처지에서 비슷한 업장의 돈과 근로강도가 동일하다면 결국, 저 외적인 부분들에서 판가름이 나는 걸 것이다. 맨 처음 일을 극악으로 못했던 신규 간호사 시절을 제외하면 모든 회사들의 외적인 부분이 우수했다.


미운 사람, 모난 사람이 내 기준에서 없었고,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상사나 회사 내 분위기도 없었다. 업무의 중요도도 상위에 랭크하는 일들이었다. 세세하게 보면 과중한 업무는 아니었으나 회사 내에서 나의 일은 중요하고 어려워 '보이는' 일들이었기에 그랬다.


내 앞에 닥친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라 여겨 그냥 그냥 쳐내면서 해결했는데,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고 해결한다는 추앙을 받아서 하찮은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구나, 하는 자존감을 들게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결론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집이란 공간을 나와서 환기가 되고, 생활을 영위할 돈을 주고, 개인적으로 즐겁고 삶에 보탬이 되며 공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일을 해낸다는 느낌이 좋아서 불로소득을 꿈꾸는 파이어족이 되고 싶지 않다.



운이 좋아서 30대 초반에 원하는 성격의 직무와 잘하는 적성을 얼추 맞게 찾아서 외적인 부분도 만족스러운 회사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행복한 점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 원한다면 언제든지 바라는 업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영리적 회사에 있지만 교육계나 외국계에 옮겨 갈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국가가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자리에 지원해서 갈 수도 있다.


결국 업무를 하면서 나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기본적인 보수 수준이 따라온다면(최저 이상), 은퇴라는 단어 없이 눈을 감기 전까지 '근로'를 하며 살고 싶다.


살아 숨 쉬는 동안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게 결과적으로 내 꿈이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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