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례
요즘 들어 직업 컨설팅 같은 게 앱 광고로 자꾸 뜬다.
아마 내가 진로, 직업선택에 관심 있어 검색하다 보니 광고가 자꾸 그쪽으로 떠서 그런 거겠지만 최근 들어 그쪽으로 눈 돌린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진로의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나 요즘 들어 이직과 퇴사가 잦으니 수요가 많아서 자연스레 공급이 늘게 된 것 같다.
왜 사람들은 천직을 찾으려고 애를 쓰게 됐을까.
천직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작년, 출산 직전부터 신생아 케어 시절까지 꾸준히 책을 빌려와 읽었다.
주로 '먹고사는 것' 즉, 직업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앞으로 유망할 직업을 가질 확률을 높이는 법이나 어떤 선택이 유리한지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고 싶어 빌려온 책들이었다.
딱 이거다, 싶은 열쇠는 없었으나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너의 실력과 흥미를 겸비하면 무엇이든 천직이 될 수 있다."
무슨 뜻인고 하니,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것을 고른다고 해도 탁월한 선택은 없다는 것이다.
아래의 사례들처럼 유망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좋아한다고 다 내 삶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망의 관점
사례 1.
70년대는 외식업이 발달하지 않음
산업구조와 맞벌이 가정 등 사회변화로 지금은 발달함
그럼 외식업이 유망해서 외식 관련 사업이나 일을 하면 돈을 잘 벌고 워라벨이 좋은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례 2.
산업혁명 시대에 손으로 하던 수공업이 대규모 기계로 변화했다. 그럼 모든 수공업은 몰락했으며 현대사회에서 당시 하던 수공업은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잡은 유리공예, 가죽공예뿐만 아니라 단순히 바느질을 하던 업무도 자기만의 길을 찾아 창직을 했다면 대대로 내려오는 장인으로 변모했다.
대다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100년 전 사람이 하던 일을 아직도 사람이 하는 산업군이 있다. 농업, 공예 등
좋아하는 것의 관점
사례 1.
옛날에는 연예인 인식이 좋지 않았다.
이제는 유망한 산업군이 되었다.
그럼 좋아하고, 유망하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한다면 평균 이상의 벌이와 직업만족도가 높을까?
현실적으로 99%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1%만이 들어가는 바늘구멍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례 2.
사회초년생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중에 하나인 카페 알바를 하면서 음료를 만드는 게 재밌다. 하지만 손님을 응대하는 것은 어렵다. 카페에서 음료만 만드는 일을 하면 될까?
위의 두 가지 외에 또다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희소성과 근무환경이다.
두 가지를 고려해서 90년대 유망할 거라는 컴퓨터 산업을 선택했다고 가정하자.
유망하고 컴퓨터를 좋아하고 비교적 근무환경이 편한 사무직이니 괜찮을 수 있다.
희소성의 측면에서도 기술직으로 파고들면 귀중해질 수 있다.
이제 완벽한가?
또 직면하는 문제가 있다.
능력이다.
아무리 해도 기본 수준 정도에 머무르는 실력이라면 좋아한다 해도 매일이 고난과 역경이며 결국 '실력이 안돼 그만둡니다.'라는 소리를 하며 떠나게 될 것이다.
천직을 찾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직업이 모두 의사, 변호사 같이 벽이 높으며 희소성이 있으며
돈을 잘 벌고 어디서나 전문가로 취급하는 그런 직업은 아니다.
일반 직장인도 있고, 다수가 기피하는 육체적 노동이 주된 일도 있다.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지속가능성과 매일 일을 하는 자체도 즐겁고, 발전도 있고, 가까운 미래에 산업이 탄탄하며 뭣보다 내가 이 일을 잘한다고 느끼고, 관련 업계 종사자나 인근 업계 종사자가 봐도 잘한다고 여기는 일.
우리는 그것을 천직이라고 한다.
그럼 천직이 무엇인지는 이제 감이 온다.
그럼 어떤 산업군에 어떤 직종을 선택해야 할까?
사회초년생 때 우리는 선택을 한다.
대학을 선택하든, 취업을 선택하든, 20년 가까이 내가 자라오면서 느낀 감정들을 정리하여 진로를 선택한다.
이때 하는 선택에서 중요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이며 학습 측면에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내가 뭘 하면 행복할지, 불행할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나의 메타인지는 10대 학창 시절에 완성됐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자기 주관이 생기고 호불호라는 것을 파악한다.
이 시기에 나는 뭘 선택해야 할지, 극심한 고민을 한 편이었다.
사춘기이기도 했고, 남의 시선을 신경 써서 중하위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던 학생인지라 '있어 보이는' 일이면서 '되게 좋아 보이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문과계열 공부와 재미없는 이과계열 공부의 극명한 차이가 심해서 적어도 계속 공부할만한 소재라면 문과계열의 특성과 조금의 이과계열 특성이 섞여있어야 했다.
그러나 의사, 변호사 같이 진입장벽이 대단한 일 말고 적당히 넘볼 수 있으면서 견딜만한 일을 찾았다.
몇 가지 키워드를 꼽아 검색했다.
- 긴급구호(한비야 책이 베스트셀러이던 시절)
- NGO
- 병원
- 의료
- 전문가
- 국제기구
- 취업률
네이버와 워크넷을 통해 오를만한 나무라 여겨진 몇 개가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정도였다.
그 정도 키워드로 꾸준히 찾아보니 단점들이 부각됐다.
임상심리사는 석사 이상은 해야 했고(돈 빨리 벌어야 할 것 같은데 취업 잘 안된다네)
사회복지사는 급여가 너무 적고 원하는 기관에 취업도 힘들고
물리치료사는 급여가 너무 적고 공급이 과하다는 평이 있고
임상병리사는 들어가면 좋은데 면허 합격률이나 취업률이 너무 낮았다.
관련 검색어로 비슷한 성격의 다른 직업을 찾고 찾다가 마주한 것은 '간호사'였다.
간호사를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했는데(처음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성적이 중하위권) 입시가 다가와서 수시 등급컷을 받아보니 간호학과에 합격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길 들었다.
비슷한 분포의 내신등급의 전공 중 간호사는 급여 평균과 면허 합격률과 취업률이 높았다.
의대처럼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일하는 게 힘들지, 사회적인 지위나 먹고사는 일과 취업 걱정을 던다는 게 큰 메리트로 여겨졌다.
그리고 꽤 있어 보이는 일들을 할 때 접근성이 좋았다.
"영어만 잘하면"이라는 조건이 수식되어있지만
국제적으로도 진출하기 용이하고, 봉사라는 개념과도 가까웠다.
단점은 '힘들다' 였으나 뭐든 돈도 안 벌리고 취업이 안되면 그것만큼 힘든 게 어딨을까, 라는 생각에 간호사를 고등학생 때의 진로 정착지로 결정했다.
역시나 막상 간호학과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졸업해서 간호사를 하니 정말 힘들었다.
퇴근하면 잠자기 바쁘고 버는 족족 쓰는 게 더 많았다.
출근을 해서 숨쉴틈 없이 바쁜 일터를 나가는 게 고역이었고, 실수를 할까 봐 맘 졸이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컸다.
천직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럼 당장 그만두면 된다.
그만큼 돈 버는 알바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과 돈을 더 많이 버는 알바는 찾기가 쉽지 않았고,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보람'
봉사활동을 하거나 학과 생활을 하며 느낀, 단출하지만 명확한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아픈 사람들을 케어하고 보살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약물을 외우고 어려운 병원 시스템을 익혀서 사용하는 전문적인 일까지 내가 직접 실행하며 돈을 버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의사만큼 추앙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나 정도 되는 별 볼 일 없는 애가' 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기대한 것보다 사회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직업이었다.
간호사 직업은 탈피하고 싶었으나 간호사라는 직업이 주는 느낌은 탈피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느낌의 직업이 간호사 말고 있지 않을까?
없으면? 다시 돌아와서 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20대 동안 여러 직무를 경험하게 됐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커리어의 여정 속에서 천직을 찾았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하지만 천직을 결정할 자신감이 생겼다.
메타인지와 여러 경험을 통해 직업선택의 호불호를 파악했다면 마지막으로 중요한 재능을 분석해야 한다.
재능은 타인이 인정하는 능력과 소질이다.
흔히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젊은 나이에 많은 걸 이뤄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천재 피아니스트들을 두고 재능을 일찍 발견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운동이나 예술 쪽 방면이 아닌 이상, 10대 때 재능으로 천직을 찾아서 성공하기란 어렵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재능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재능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 절대적인 어떤 무언가가 있을 때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일반적인 개인의 재능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이 "개인의 재능"을 찾아야 한다.
학창 시절에 반에서 축구를 제일 잘했던 아이, 역사를 좋아하던 아이, 과학실험을 잘하던 아이 등등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야, 너 참 잘한다."라는 말을 어느 시점에 한 번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말 들어본 기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칭찬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내면의 소리를 잘 찾아봐야 한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역사과목이 너무 재밌었다. '역사'와 '가르치는 직업'에 꽂혀서 교사를 진로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임용을 통과한다거나 사범대를 가서도 경쟁하는 것이 싫었다. 역사교사라는 직업의 성격이 좋고, 나름의 재능도 있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힘든 과정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는 불안함이 싫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까지 '역사'를 잘 외우고 습득하는 능력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을 나름 잘하는 축에 속한 편인 것이다.
고등학생 때 진로를 찾기 위해 적성시험을 통해 수리력이 뛰어난지 추리력이 뛰어난지 테스트를 몇 번 했을 때, 뭔가를 알려주고 상담하고 하는 직업들이 결과로 나왔다.
반드시 기자를 해야 해, 교사를 해야 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 생각한 것이, '나는 꾸준히 공부해서 자리를 잡으면 어떤 일을 해도 잘하면서 살겠구나.'였다.
대학을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이직을 하면서 여전히 대상자들(고객, 환자 등)에게 모르는 사실을 내가 아는 경력과 지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그걸 무기 삼아서 보고서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개인적인 재능"임을 확정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문적이고, 전문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방향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다만, 이제는 학부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호와 보건이라는 개념 속에서 그 전문성을 개발했기 때문에 인간의 건강을 다루는 분야여야 한다는 울타리가 생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재능을 찾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 재능이 닿아있는 직업을 체험해 보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나는 간호사가 천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는 천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재미있고, 남들은 어렵다는 논문이 아직은 괴로울 정도로 어렵지 않다. 당연히 머리는 매번 싸매고 좋은 성과가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간호사를 안 하고 논문만 주야장천 읽으랬다면?
아프리카에서 기초보건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연구는 완전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처럼 의사나 변호사는 넘사벽(오르지 못할 나무)이며 도전할 엄두조차 못 내는 그런 직업이라고 판단한 것처럼 말이다.
의사를 해보지 않고서
고3 때 공부를 잘한 친구가 의사가 천직인 걸 경험할 수 있을까?
자기가 번 돈으로 음식사업을 열지 않고서 요식업이 천직인 걸 알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당신이 10대든, 50대든 천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면 여전히 노력해야 한다.
천직을 찾기 위한 내면의 소리와 개인적인 재능을 마인드맵처럼 정리해둬야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직무가 안 맞다면 위에서 열거한 사항을 적어도 A4용지 한 장에는 꽉 차도록 적어볼 수 있어야 한다.
유망
희소성
근무환경
메타인지
재능
내가 생각하는 유망한 직업과 희소성이 높은 직업/산업군을 빼곡히 적어본다.
그 직업/산업군의 근무환경을 적어본다.
그곳에 근무하면 내가 뭘 좋아할지, 싫어할지, 잘할 수 있고, 못하게 되는 것을 적어본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겪은 그 직업과 관련된 나의 재능을 적어본다.
한 번의 작업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적어둔 종이가 10장, 20장 100장이 되면 더 이상 작성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자연스레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지 선택을 잘하게 될 수 있다.
덧, 재능의 부러움에 관하여.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영상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의 깊은 사고는 더 화제가 되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지 알았고, 세계적으로 인정까지 받게 됐다. 이제는 혼자 산에 들어가고 싶어도 사람들이 산을 깎아서 데리고 올 정도이다.
한마디로 천재가 노력하는데 즐기면서 노력한다.
끝판왕이 나타난 것이다.
어렸을 땐 단순히 10대 후반에 자신의 재능을 알고 발휘하는 동년배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번 돈도 부러웠지만 명성과 적성을 찾아서 성취한 것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어느덧 사회생활을 10년 가까이하고, 30대가 되어보니 이제는 타고난 재능러들을 부러워하지 않게 됐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내 색깔과 어울리는 재능을 알았기 때문이다.
재능과 흥미가 어우러진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다른 이의 재능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간호학과 시절엔 실력도 안되면서 주변의 의대생을 부러워했다.
'좀 더 공부해볼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재수나 삼수를 꿈꿔보기도 했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재능이다.
나는 그만큼 공부에 재능이 있지 않다.
(연구와 공부는 다른 영역임을 향후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내가 잘하는 부분과 달성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제는 다른 사람의 통통 튀는 색깔을 사무치게 그리워하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