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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Sep 20. 2022

안녕하세요, 간호사'였던' 사람입니다.

간호사 장롱면허가 주는 타이틀의 고마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간호사였다거나 간호사 출신이라는 맨 앞줄 소개를 먼저 한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보니 겨우 1년 경력의 임상간호사 경력으로 간호사라고 하기 민망해진다.

마치 제가 20살에 대학생이었는데요, 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간호학과 학생은 4년이라도 했지, 꼴랑 1년 가지고 간호사였다고 하기엔 이젠 너무 부끄러운 자기소개이다.


그럼에도 바로 바꿀 수 없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 나를 한 단어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에 대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지금 왜 공부를 하는지 등등을 설명할 때 어디서부터 설명할까, 뭐라 말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간호사'였습니다." 한마디로 앞뒤가 정리된다.


병원에서 일했을 것이고, 병원과 밀접한 사람이고, 제약이나 보건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간호사였으니까~, 하는 이해와 흐름을 깔고 알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간호사'라는 소개 없이 

지금은 제약광고대행사에서 메디컬 라이터를 하고 있어요,라고 한다면

"그게 뭐예요?"

아 그건 제약회사에서 광고하는 내용은 의료법에 따라 객관적 근거를 갖고 논문에서 발췌한 문구를 사용하는데 그런 부분을 제작하기도 하고, 검수하기도 하는 사람이에요.

"아, 그럼 약사세요?"

아니요. 지금은 보건학을 전공해서 대학원을 다녀요.

"대학원이요?! 와, 정말 대단하세요. 보건학은 뭘 배우나요?"

보건학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보건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발표하면서 보건 향상을 하는 공부이고, 질병청이나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처럼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럼 원래 보건..학? 그걸 하셨나요? 보건소에서 일하셨나요?"

아니에요. 원래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간호사를 1년 하다가 해외봉사 갔다 오면서 연구 쪽에 발을 담그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경력이 짧아서 보건 관련 여러 일을 하다가 지금은 회사 다니면서 학교 다니고 있어요.

"아! 간호사셨구나!"

아, 하하;; 간호사라고 하기엔 너무 잠깐 임상에 있었고, 장롱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장롱이라서요^^;;

"간호사라고 말씀하시지ㅎㅎㅎ 간호사를 해서 보건 그런 것도 하실 수 있구나. 신기해요."


대략 이런 흐름이 된다.

굉장한 미괄식 구조의 대화가 되고, 결국 내가 간호사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끝난다.


이런 일을 2번 정도 겪으면 저 위의 구구절절한 말들 대신에 염치없게도 '간호사' 였노라고 자기소개 두괄식을 시작한다. 


나는 간호사였어요. 
그래서 해외봉사도 가고, 갔다 와서 보건연구도 하고,
그런 쪽으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자기소개를 고치지 못한 채 7년이 되어간다. 


잘 모르는 사람들만큼이나 나 또한, 간호나 보건이나 어차피 간호사도 보건소에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보건'이라는 개념이 대학원에서 얼마나 차이가 날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 보건학을 하면서 붙어있는 간호대학의 전공과 교수님들의 연구 방향을 보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간호는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임을 미리 밝힌다. 개인적인 견해이며 다른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보건학은 대상이 '인구집단'이다. 한 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나 집단의 추세를 보는 학문이다. 단순 변화만 보는 것이 아닌 중재도 가하고, 의도적인 변화도 확인한다. 이럴 때 보건은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건강의 변화나 흐름이 어찌 되는지 살펴보는 게 주요 목적이다.


간호학은 대상이 '대상자'이다. 예전엔 환자로 명명했지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예방적 간호도 있기에 이젠 대상자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대상자는 개인이지만 개인이 모여 이루는 데이터를 다루기도 한다. 이 부분이 보건과 유사하지만 그럼에도 기존의 목표 대상인 '대상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것이 간호학의 본질이다. 같은 통계법을 배워서 적용하지만 실질적인 목표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간호학과 보건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나뉜다.



대학생 때만 해도 간호는 '취업률'이자 3D업종 정도로 설명이 되었고, 병원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사 외 다수 중 한 과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정도였다. 


메르스와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간호사는 환자의 곁에서 24시간 케어하는 의료인으로 박히기 시작하면서 어디서나 나를 소개할 때 서두에 붙이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의 간호사는 임상 업계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대중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인지도가 널리 알려진 시점에서야 나는 익숙한 타이틀에서 멀어지고 있다. 보건학자, 보건 연구자, 메디컬 라이터, 하면 그래서 얘가 뭘 하는 놈이라는겨, 하는 의문이 바로 날아온다.


직관적이지 않은 직업을 택하면서 이번 직업도 점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고난과 시련이 있어야만 인지도가 높아지는 직업들이라는 슬픈 공통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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