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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Oct 05. 2022

두 번째 국제보건 연구 시작

방글라데시 프로젝트 연구 이야기 1

2020년 몸담았던 NGO단체에서 시작한 아이티 라고나브섬의 연구를 한동안 참여하지 못하다가 작년 중순과 올해 초에 다시 참여하여 최종 수정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전 글 참고: 연구 윤리 심의 승인


두 번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자면, 올 초에 내가 다시 대학원에 입학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박통합과정인지라 박사학위 논문을 받기 위해서 저널에 논문을 게재해야 하고, 학위논문을 발표해야 하는 졸업요건이 있다.


어차피 연구는 하게 될 테지만 졸업논문이라면, 내 일생에 큰 점 중 하나가 아닌가.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느냐가 향후 나의 진로와 취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사실에 고민을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도 계속 언급했지만 보건학을 함에 있어서 나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가정했다.


하나는, 나를 처음 보건학으로 이끌어준 에티오피아에서의 첫 경험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국제보건 환경에서 시행한 보건연구에 집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건경제나 정책을 다루면서 공공기관에 취업하기 좋은 백그라운드를 마련하는 것이다.  분야는 나부터 열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의사소통 강도가 높은 국제보건보다 기존의 국가 데이터나 정책 자료를 활용한 문헌 위주의 연구가 많기에   쉬워 보인다.


이도 저도 안되면 지금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학위만 뱃지처럼 달고나서 더 더 더 규모 있고 월급 많은 제약광고대행사나 제약사 메디컬팀으로 들어가는 기타 옵션도 있다.


위의 가정을 지도교수님께도 학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고민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수님, 유망성이냐, 재미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꼭 한 개만 선택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국제보건 연구를 한다고 해서 한정된 국가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보건교육이나 연구방법론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보건에 대한 중재 프로그램 개발과 연구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더 커질 예정이라 진로를 생각해도 유망하고요. 제 생각엔 어떤 걸 해도 유망하지 않는 건 없으니 선생님이 좋아하는 걸 하세요. 학위논문이든, 저널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더라고요.”


그때 교수님께서 내려주신 명쾌한 답변 덕분에 지금 고민 없이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지만, 재능이 전혀 없으면? 내가 스스로 유망성을 발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최대한 학생 시절에 나의 흥미와 적성이 일치하는 연구분야를 찾아서 졸업논문을 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정하고 싶다.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공모전'을 테스트의 무대로 써 보기로 했다. 이때까지 크고 작은 공모전에 공모해 본 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다. 개인이 하는 공모전이 아닌, 사업비를 따내는 연구계획서나 기획서는 기관의 배경이 있었기에 다 통과되었지만 말이다.


대부분 공모전의 주제에 맞춰서 나의 이전 연구/사업 이력을 끄집어내어 억지로 맞춘 결과물들이었다.

한 번은 환경과 관련된 ODA(공적개발원조; 무상원조) 공모전이 있었는데 내가 하던 환경 역학의 '환경'만 생각하고 지원했다가 당연히 탈락!

다른 한 번은 상반기에 소규모의 연구기관 간의 협업 아이디어 제안이었는데 당연히 탈락!


수상작들을 보면 주최 기관의 원하는 주제로 심혈을 기울인 제안서와 보고서였다. 내가 번번이 탈락한 이유도 공모전을 위한 공모로, 실은 그 주제를 생각하는 깊이가 얕은 것이 명명백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러라.


아니면, 공모전 자체가 치열해서 나같이 당첨운이 낮은 사람은 오르지 못할 나무인가,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준비하고 지원하는데 돈이 드는 게 아니고, 지원을 할수록 나의 문서작성 능력이 업그레이드되는 연습도 되어서 매번 안 될 걸 알지만, 한 번씩 공고가 보이면 부지런히 던져봤다.


이제는 진짜 내 힘으로 따 낸 연구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내 길을 찾으리, 생각하던 찰나 방학이 되었고,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여러 논문/연구 공모전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 ODA 관련 연구제안서를 제출하는 공모전도 생겼다.

'ODA', '연구제안서', 두 가지 키워드가 나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연구는 개발협력 분야의 보건지표를 확인하여 비교도 하고, 현황도 파악하고, 앞으로의 보건 중재(intervention)를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제안서 공모전인 것도 오를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다. 당장 한 달안에 논문을 완성하는 연구 공모전이 아니라 '제안서'인 것이다. 제안서, 그것은 반년에 한 번씩 써 재끼던 일기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채택이 안되면 누가 겁박하는 것도 아니라서 부담 없이 쓰고 제출할 수 있는 그것, 바로 제안서였다.


게다가 제안서는 말 그대로 제안서라서 상황 변동성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와도 일단 기존에 의도한 주제가 들어가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여성건강에 대한 모자보건 지표를 조사하기로 했다면 제안서 상, 2022년까지의 자료를 보고하기로 했다지만 현지 조사국에서 연구 발표일까지 22년 자료를 오픈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21년 자료까지만 보고하면 된다. 계획대로 안 되는 부분을 타당하게 설명하면서 말이다.

단, 원래의 의도인 모자보건 지표를 사용하여 의도한 내용들이 담겨있으면 된다. 아무리 바뀌어도 된다지만 모자보건 지표를 조사한다는 제안서를 내놓고, 노인 장애를 발표하는 건 안된다.


그래서 제안서 공모전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제출도 쉽고, 결과 발표도 큰 틀 안에서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 당선된 이후에도 부담이 덜하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를 했고, 주제는 이전 NGO단체에서 프로젝트로 하던 성생식보건사업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사업의 초기 대상자들이 가진 지식과 건강신념이 사업이 완료된 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중재연구를 할 때 대개는 Control군을 따로 조사를 하여 '진짜' 성과가 있는지 비교 확인한다. 하지만 연구를 목적으로 계획된 사업이 아니었으므로 아쉽지만 우리가 사업을 이룬 지역에서의 대상자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그저 이전에는 한국에서 온 펀딩으로 성과를 조사하는 '과학적인' 논문이 없었는데 이제 우리도 영국이나 미국 연구진이 했던 것처럼 논문을 통해 더 넓은 세상에 한국의 무상원조 사업을 알리고, 그 성과를 보여주게 되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방향 또한, 그런 방식으로 잡았고 현실적으로 데이터를 가져오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다행히 모든 시스템이 첫 번째 연구 국가인 아이티보다 체계적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따로 IRB를 위해 발로 뛰지 않아도 원하는 가이드라인대로 제출하고, 수정하고, 기다리면 된다. 연구 대상자의 기관과 연구자의 기관에서 이미 IRB 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간 싸움이 문제가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수원국(원조를 받는 나라)의 상황은 굉장히 유연하다. 특히, 시간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매우 여유롭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 만일 당선이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조율이 얼마나 될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해당 공모전이 처음 떴을 땐 시험기간이라 포기했다가 비슷한 사정의 학생들 때문에 공모가 원하는 만큼 모이지 않았는지, 제출기간이 연장됐다.


'어라? 운이 좋으면 될 수도 있겠는데?'

하는 김칫국과 함께 초안을 써 봤다.


쓰는 도중, 졸업요건인 영어성적이 있어 방학이니 미리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토익시험도 치렀다. 당연히 한 번에 안될 거란 생각으로 휴가철 회사에서 일도 안 들어오겠다, 토익 문제집을 들고 가서 풀고 있던 찰나에 당당히 패스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바로 풀던 문제집을 접어서 가방에 넣고, 쓰다 만 초안의 공모전 연구제안서를 마무리했다.

기초 자료는 기존의 사업제안서를 가져왔고, 그중 시간이 지나 업데이트된 자료와 근거로 덧붙일 추가 참고문헌을 찾아서 작성했다.


결국, 내가 하려던 말인,

"한국이 쓴 돈으로 한 ODA 사업, 우리 손으로 결과도 내고 발표도 하자."

핵심이 그들의 니즈와 어느 정도 맞았는지 선정해 주었고, 그렇게 나의 진로도 점차 가던 길로 가려는 눈치다.



당선 후, 관계 기관과 지도 교수님께 소식을 알렸고, 모두들 기뻐해 주셨다. 기관에는 간접적으로나마 데이터 사용료라는 명목으로 해당 현지 기관에 연구비를 지불할 것이고, 교수님은 지도 학생이 빠르게 자신의 길을 찾아 연구를 하는 것을 기특해하셨다.


본 연구의 결과물은 1차적으론 공모의 주최자인 KDI에 발간해야 하지만 서약서에 언급한 대로 전체 내용을 그대로 타 저널에 게재하는 것에 문제가 없으니 출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마 출판을 하게 되면 생애 처음으로 내가 기획하고, 연구비를 벌어서 출판하는 PI 겸 1 저자가 되는 연구 결과물이 된다.


이번 기회로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며 용두사미 ENFP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기사 참조

KDI국제정책대학원, ‘제3회 개발협력 실증연구 대학원생 연구제안서 공모전’ 결과 발표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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