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Mar 07. 2023

난생처음 연봉협상

공공의 회사만 다니다가 사기업에 와서 처음 한 연봉협상

월급, 연봉, 이런 것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만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테이블이 있고 규정에 따라 너의 자격증명을 측정해서 이렇게 줄 것이다, 는 조직에만 있어와서 '협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병원, 해외봉사, NGO, 보건소, 공공기관 등 나의 급여가 모두 오픈된 상태에서 들어가고 연차가 지나도 정해진대로 받아가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그만큼 오래 다니진 못했지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1년에 한 번 연봉협상이 있다고만 들어봤지, 해본 적은 없는 협상 레벨 1이었다.


첫 협상은 입사 전 면접에서,

[너의 연봉을 서로 정해보자]라는 주제로 토의한 것이다.


내가 받는 돈을 나의 가치로 설명하라니, 나의 가치는 무엇이고, 회사에서 생각하는 가치는 얼마일 것이며, 그걸 기준 삼는 건 누구이고 무엇인가.


참으로 난해한 주제이자 협상이었다. 


물건이나 화폐를 살 때 우리는 이전의 가격을 기준으로 비싸다, 싸다를 결정한다. 첫 협상에선 기관에서 정해준 나의 이전 가격으로 '비싸지 않은 수준'의 가격으로 협상을 했다.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시장에서의 가치는 양질의 업무보다 시장이 책정한 가격으로 인정받는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고, 그 지배적인 생각을 알고 있는 '구매자'의 입장도 지배적이었기에 별 다른 반박을 못하고 통보와 비슷한 그 가격을 인정했다.


이전의 회사들은 시장의 가치를 쫓거나 따질 이유가 없었다. 물론,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경력이 인정되는 한에서, 상식적으로 따라가 줄 필요는 있지만 기관이 속한 '시장'이 공공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탐닉하는 '시장'의 원리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공에서의 나의 가격은 아주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그랬기도 했다. 상향평준화된 요즘의 가격은 절대로 아니었으나 공공에서 박사 아니고, 경력 짧은 거치곤, 받을 만큼 받아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일 년을 보내고 보니 지난 일 년간의 너의 '시장'가치를 매겨 새로 책정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흥미로웠다.


공공에서는 계약직으로 일한 경우가 많아서 연봉이 오르지 않거나 기존 계약직 연봉 인상에 맞춰 자동 상승이 되었다. 그 경우, 한 달 액수는 많게는 10만 원선, 적게는 몇 만 원 정도였다. (동결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내가 있던 근접 부서의 팀원들이 때가 되어 하나 둘 퇴사를 했고, 원래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했지만 손이 없어진 부서의 근접한 업무들까지 가져오면서 가격 상승의 기대감을 가진 상태로 협상에 들어갔다.


상황을 이미 파악한지라 '구매자'는 협상의 테이블이 두려웠노라 실토했다. 올리고 싶은 만큼 올려줘도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올려줘도 맘에 안 들까,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협상을 해야 하는 상대에게 이런 솔직한 마음을 내비치니 나 또한 솔직하게 응수할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부차적인 일이다, 나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확보되면 마음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하고 확실하게 최대한의 가격을 지켜줬음 하는 맘을 드러냈다.


결과는 예상한 수준의 최대치로 얻어냈다. 

남편이 바랬던 10%의 두 배를 넘는 인상률이었다. 


줄만한 사람이 받을만한 사람하고 이야기하니 크게 걸리는 것 없이 말만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대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방이라고 예측했다. 


너무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회사를 까내리면서 나의 가치를 빌드업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를 낮추지도 않고 순전히 나만의 존재만으로 설명이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잘 안되면, 이라고 생각하고 만지작하던 최악의 카드들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상승효과를 낳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찾아보니 보통의 회사들(월급 안 밀리고, 법정공휴일을 준수하고, 연차를 자유롭게 보내줌)이 매출을 먹고 살만큼 냈을 때의 인상률은 직전연봉의 5~10%라고 한다. 


협상이 잘 끝나고 나서 내 연봉을 잘 알고, 오픈해도 아무렇지 않은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실은 자랑이라기보단 여전히 우리 입에 풀칠은 잘하게 되었노라고, 곧 남편의 육아휴직이 종료되어 외벌이가 되어도 당장 몇 개월은 재취업에 시달리지는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는 위로의 소식이었다. 


부모님에겐 쟤들 생활비 모자랄까, 얼마를 보태줘야 하나,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 인사이기도 했다. 


처음 맞이해 본 사기업에서의 연봉협상은 신기한 경험이 됐다. 체계적인 숫자보단 심리적인 안정감을 서로가 얻기 위해 갖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금액보다 '돈'으로 사람을 붙잡을 수 있고, '돈'으로 생계가 잘 유지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시간이었다. 


아마 처음 기뻐한 것만큼 삶의 큰 변화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씩 두근대는 이런 퍼포먼스는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민이 사라진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