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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Dec 12. 2022

고민이 사라진 삶

2022년을 돌아보며

한 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뭘 하지 뭐 먹지 공부하기 싫다 어떡하지 일어나는 거 힘들다 왜 살지 등등

이젠 그런 고민할 겨를이 없다. 삼시세끼 선택 고민 없고, 다음 시간 뭘 할지, 다음 달 뭘 계획할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알아서 다 깔려있다. 

눈뜨고 감을 때까지 잠자는 순간 빼고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고,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딸을 키우기 위해 눈뜨면 이유식을 데우고 먹이고 정리하고 출근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학교 가고 집안일 분담하고 모든 일이 끝나면 잠을 잘 수 있다. 


중간중간 방전되지 않기 위한 휴식의 순간에도 유희를 위해 영상을 보거나 누군가와 메신저를 한다. 한 순간도 멍을 때리며 심심하고 지루할 틈이 없는 하루하루다. 


진로나 직장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회사가 크진 않지만 월급날이 밀릴 걱정, 쉬는 날에 못 쉴 걱정,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커리어 성장이나 개인의 성장을 위해 대학원을 다니고 있기에 진로 고민을 지금부터 할 필요가 없다. 당장 해야 할 코스웍을 하라는 대로 주시는 대로 맞춰서 하면 된다. 없던 일을 만들어 내지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일단 주어진 것을 이전에 해왔던 것과 대비하여 잘해나가면 된다.


그 와중에 연구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개인의 진로 고민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고민이 더더욱 줄어들었다. 


일단 해야 한다.

일단 하면 된다. 

주어진 과업을 칼로 치듯이 쳐내가며 하루하루를 완수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초등학생 기탄 수학 문제집처럼 빈칸을 채워서 풀기만 하면 동그라미를 쳐 주시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게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가끔씩 내가 푼 문제가 너무 많이 틀려서 혼날까 봐, 다음 문제집이 오지 않아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까 봐 조마조마한 정도는 있지만 크나큰 사고나 재해에 버금가는 떨림이 아니라서 쫄깃하게 인생을 즐길 수도 있다. 


부모님들은 나름 건강하게 본인의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을 영유하신다. 가족 중 주위에 심하게 아프거나 처지가 어려운 사람이 없다. 


부부 사이도 좋다. 이전엔 그냥 애틋한 동거인이라면 이젠 없으면 인생을 살 수 없는 존재, 절대적인 존재가 됐다. 보수적인 어른들이 애를 낳아야 부부 사이좋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여전히 애 낳아야 이혼 안 하고 산다는 말에는 완전 완전 비공감이다. 경험의 갈래 길이 다른 거지, 필수요건은 아니니까. 



내가 지금 사는 삶은 앞의 브런치를 읽어보신 독자분들이나 다른 지인들이 보면 그래, 젊을 때 여러 가지 일 해봤으니까, 저렇게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유망한 일을 찾았네, 할 수도 있다. 


분명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는 태도는 나에게 +가 된 적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 좋은 결과와 태도가 되진 않았다. 불명예스러운 실패도 겪었고, 여전히 나에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인 것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우연과 인연이 겹쳐져서 내가 계획하고 바라던 일들이 2회 차 인생인 것처럼 후회 없이 잘 되어가고 있는 것뿐이다.



2022년 하반기를 지나면서 15학점이라는 빡빡한 코스웍에 풀타임 직장인에 돌이 되는 아기를 가진 아줌마가 별 탈없이 지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속으로,

'지금처럼만 지내면 돼. 갑자기 누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면 주저앉을 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하고 일주일이 안되어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걸렸다. 그것도 증상이 심하게 온 상태로. 

다행히 아이가 가장 덜 아팠고, 내가 그다음으로 미미했고, 남편이 제일 아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남편은 가정 내 기둥이고, 전부이고, 의식주를 관장하는 사람이다.

낮잠 자는 것도 허리 아파서 잠이 안 온다는 사람이 24시간 내내 누워있었고, 아이는 기운이 넘쳐서 날아다니고, 나는 증상이 있어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격리하며 일은 일대로 하고, 수업과 과제도 비대면으로 헤쳐 나갔다. 


게다가 오랜만에 아이를 24시간 2일 이상 내내 보는 것은 100일 이후 처음인지라 모든 게 어설펐다. 고로, 힘을 덜 들이며 할 수 있는 일도 세네 번 손이 갔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격리기간이었지만 누군가는 이런 시간이 닥치면 직장도 관두고, 휴학을 하고 중단하게 된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인 것이다.

운이 좋았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 이맘때인 2021년 12월에 출산을 하고 신생아를 케어하며 내년 복직을 꿈꾸고 있을 무렵에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복직할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소식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원한 대학원 박사과정 장학금은 떨어졌고, 온라인 석사과정은 성적이 낮아서 지속할 수 없을 거란 통보를 들은 뒤였다.


모든 게 나를 육아로 떠밀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게 1순위라고 상황이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밀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꿀 수 있는 걸 시도해보고 밀려지자고 생각했다.


'취업을 시도하고, 입사한 직장이 거지발싸개 같으면 다시 그만둘 수 있어.'

'계약 만료로 실업급여받으니까 6개월 동안은 돈걱정 안 하고 육아만 할 수 있어.'

'쉬는 동안 대학원을 다니는 거야.' 


12월 말쯤에 지금 다니는 대학원 추가모집이 떴고, 지원했다. 구직 면접도 봤다. 한 곳만 가지 않고, 여러 군데를 다니며 비교도 했다. 


어린이집도 알아보고 방문해서 상담도 했다. 베이비시터 구하는 것도 알아보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 신청도 했다. 


대학원은 합격했고, 출근할 직장도 정해졌다.

어린이집도 자리가 일찍 나서 3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순탄하려나 싶은 순간에도 밀려지는 상황은 계속 발생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 아이들이 도미노처럼 확진이 되었다. 가정보육이 늘었고, 계속 맡겨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에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시국이라 생각하여 꾸준히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만 아프지 않고,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보냈다. 

집에서 쉬던 동생이 하원 돌보미를 한 달간 도와줬고, 그다음 달은 남편이 단축근무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엔 내가 밀리지 않고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들어갔고, 나는 다니던 회사와 대학원을 계속해서 다니기로 했다. 


나의 시도와 상황이 퍼즐처럼 맞았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늘 하던 대로 일은 적응이 쉽고 빨랐다. 사람이나 회사 분위기로 인한 퇴사 스트레스는 없었다. 

다만, 여전히 연구를 함에 있어서 어떤 주제를 내 연구로 해야 할지, 일반 영리 회사에 들어오니 연구비를 따내서 하는 연구는 할 수 없겠지, 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또다시 밀리지 않고 돈 주고 졸업장만 따지 말고, 이 기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봐야지, 밀어보다 얻어걸려 하고 싶던 연구를 하게 되었고, 논문을 쓰고 있다.



김상욱 물리학 박사가 말한 모두에게 평등한 시간의 감옥에 갇히지 않으려면 본인이 시간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고민하고 다투고 움직이면 운이 없을지라도 내 선택으로 인해 살아가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만일 내가 밀려지지 않기 위해 시도한 올 한 해의 노력들이 남편의 비협조, 아이의 잦은 감기, 나의 극도의 게으름과 체력 부진 등으로 또다시 중도포기로 끝났을지라도 시간 안에 갇혀있다는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 해봤는데 안됐네. 다음에 해야지."

하고 육아에 전념했을 것이다. 물론,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말이다.



올 한 해가 밀려지는 삶이었다면 다음 한 해는 밀어버리고 당겨버리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본 지나영 소아정신과 교수의 영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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