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단 말이지?!
11월 4일.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다.
2022년 11월 4일은 태어나 처음 맞는 생일이다.
올해는 인생 처음으로 내가 낳은 아이와 함께한 한 해였다.
그중 2개월은 육아맘이었고, 1개월은 맞벌이였고, 나머지 시간은 외벌이 워킹스터딩맘이었다.
작년 오늘은 으쌰 으쌰 아이랑 둘이 합을 맞춰 하나의 자궁 근육을 열심히 써서 세상 밖에 한 아기를 내놓은 날이었다.
돌이 오나, 시간이 어떻게 갈까, 했던 1년이 지나가고 그저 귀엽고 장난꾸러기 딸내미가 한 명의 사람이 되어 세상에 발자국을 열심히 찍어대는 시간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보통 엄마들은 지금 이맘때 아기들 집에서 오롯이 보고 케어한다는 거지, 심지어 밤에도 계속 깨는 애들은 24시간 케어를 하며 본단 말이지.
대단하다
요즘 딸이 나랑 있으면 엄마엄마 하면서 아빠를 찾거나 다른 곳을 쳐다본다.
현재 시점에서 아이에게 '엄마'는 관습적인 엄마 같은 존재들에 붙이는 호칭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빠를 엄마라고 한다.
이모와 할머니, 고모 등은 조금 구별한다.
엄마 임미 음머 암미 이런 식으로 뚜렷한 엄마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와 엄미, 엉니 그 사이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다.
내가 그만큼 아이에게 시간을 온전히 투자하지 않았으니 후회도 서러움도 전혀 없다.
다만, 아이가 크면서 자신의 엄마가 다른 친구들처럼 늘 곁에 있는 엄마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생기는 것을 어떻게 해소해 줘야 할지가 향후 큰 고민일 것이다.
'아빠'는 즐겁거나 뭔가를 지칭할 때 붙이는 것 같다.
아빠는 가볍게 부른다.
간절한 느낌의, '엄마-'를 부를 때의 느낌이 전혀 없다.
즐거울 때, 장난감을 가리킬 때 명랑하게 '아. 빠.' 하고 부른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부르는 엄마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엄마라고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빠를 보면서 엄마 하는 건 정말 진심으로
엄마가~ 그리울 때~ 감정으로 부른다.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인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지금까지 이어온 그 느낌을 간직한, 엄마, 그 엄마이다.
남편이 정말 아이의 진정한 주 양육자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아는 양육과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은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이 최신판이다.
실제로 이유식을 만드는 법, 이유식 보관법, 아이의 위생을 위해 현재 월령에서 해야 할 것 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턱없이 모자라다.
어린이집에서 무언가를 준비해 달라거나 이제 슬슬 다음 단계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림장을 읽어주는 남편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한다.
남편이 알려주는 어른의 언어를 통해 아이의 세상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여느 집의 평균 미달인 '가정에는 조금 무관심한' 회사 다니는 배우자가 되어가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배우자가 무심하다고 비난하거나 내가 스스로 너무 가정에 소홀한다고 반성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만큼 집안일 같이 하는데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지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회사가 업무적으로 힘들거나 업무 외적으로 힘든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보통 직장인이랑 비슷하고, 집에서 육아만 하는 육아맘/대디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서 너무 힘들어서 죽겠다는 소리는 안 나온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읊어보면, '이야, 이거 내가 다하고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씩 있다.
여유롭다가 일이 갑자기 들어올 때, 과제가 여러 개 있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일 때, 그렇다.
퇴근하고 학교를 다녀와서 귀가해 샤워를 하고 아이가 어지른 거실의 장난감을 한 개씩 정리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치울 때, '이런 건 집에서 육아하는 사람한테 하라고 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아 나도 아내들이 그리도 욕하지 마지않던, 지만 아는 남편 놈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아이가 사춘기가 오고, 남편이 내게 덜 신경 쓰면 여느 곤대 아저씨들처럼 니들을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을 했는데, 하는 소리를 내뱉는 미래가 오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도가 그려졌다.
그깟 직장 다닌다고,
지가 하고 싶은 공부 한다고,
되지도 않는 콧대가 서서는 집에서 고생했다고 으스대는 꼴을 참으면서
많은 전업맘/대디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을 하니 역시 대단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다수는 엄마가 되는 길을 필사적으로 쟁취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일단 내가 엄마이니 엄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육아를 선택한 경우도 많으리라.
남편은, '육아'를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좀 그래. 자기가 낳은 아이를 돌보는 건데 노동까지 붙이는 건 좀 그렇지 않나,라고 말할 정도로 집안일과 육아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양육하기로 한 부모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 사람인지라 육체적으로 힘들지라도 아이가 이쁘고 가정을 돌보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육아'는 철저히 노동 계산법에 의해 보수가 있는 엄연한 강도 높은 근로이지만 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과 후려치기 당하는 종목이라 생각하여 집에서 오롯이 아이만 보는 엄마들의 삶이 꽤 힘든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택할 '처지'가 돼서 자기의 롤을 선택했지만 많은 육아전담 부모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에 의해, 현실적인 벌이를 위해, 지금의 자리에서 아이를 24시간 케어하는 역할을 다하는 부모들에게 같은 부모 직함을 달고 있는 양아치 엄마가 경의를 표한다.
이미 여러 날이 지났지만 이태원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의 맘에 잊히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직접 겪은 사람들, 간접 경험한 사람들, 개인적으로는 전혀 관계되지 않았으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슬픔을 공유한 나 같은 사람들까지, 묵념하고 기도하지만 쉬이 잊을 수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11월 4일 오후 2시 22분, 한 명의 아이가 세상에 데뷔해서 직접적으로 혈연으로 연결된 8명의 사람에게 생애 맞볼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155명이 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서 은퇴했다면 적어도 1240명 이상의 가족들은 생애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을 겪은 것일 것이다.
그냥 내가 오늘 겪은 기쁨을 반대로 생각하면 그 절망감과 상실감을 헤아릴 수가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존자들이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없이 완치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