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남편의 현명한 에너지분배
제목만 보면 이게 무슨 망나니 남편인가 할 테지만 이야기하려는 방향은 정반대다.
남편은 전업주부고, 나는 직장 다니는 워킹맘이다. 요리는 100% 남편몫, 빨래도 98%이다.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기 때문이다. 대신, 아기 아침밥 챙겨주기, 저녁을 집에서 보낼 땐 아기 저녁 챙기기와 씻기기를 한다.
낮동안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장을 보거나 요리, 빨래를 하는데 적응기간엔 1-2시간만 맡긴 뒤, 집으로 올 수 있어서 살림의 질이 현저히 낮아졌다.
그래서 우리 집 풍경은 장난감으로 어지럽혀진 거실이 일상이다. 남편과 나는 매번, 매일, 매주 아이가 죄 끄집어낸 크고 작은 장난감과 스티커들을 안 치운다. 약속도 아니고, 룰도 아니다. 그냥 남편이나 나나 꾸준하게 부지런히 정리하는 습관이 없어 두다 보니 이제는 아이의 걸음마가 익숙해져 많은 위험요소가 줄어들어 안 치우거나 덜 치운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이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냐?"
라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본인이 힘들지 않고 즐겁다는 전제하에.
대다수의 주부들이 살림이 힘든 이유는 쉴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돈도 안되고 티도 안 나지만 생각보다 집안일은 손이 많이 가고 해야 할 것이 많다.
세끼 밥을 한다 치면, 장 보고, 반찬 해 두고, 국 끓이고, 밥 정기적으로 하고, 설거지와 그릇정리도 해야 한다.
빨래를 한다 치면, 빨래거리를 색깔별로 정리하고, 돌리고, 말리고, 개고, 정리해야 한다.
청소를 한다 치면, 큰 물건들을 각자 자리에 맞게 두고,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하고, 걸레 빨고, 청소기 뒷정리하고, 잘 안 닦는 속 먼지나 창틀 등도 따로 닦아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 외에도 세탁기 청소, 현관 정리, 자동차 기름 넣고 점검, 아이 예방접종, 가족 병원진료 챙기기 등의 부수적인 일들이 쌓여있다.
하지만 벌어지는 수입이 없고,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부지런히 돈이 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살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러한 부분에서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먼저 쉬기보다 당장 할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물론, 나의 남편도 똑같다. 하지만 세세하게 쪼개서 살림에 온갖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에너지가 없기도 하다)
그는 쉴 수 있을 때 당장 쉰다. 눈앞에 보이는 거실의 어지러운 장난감을 바로 치우지 않는다. 당장 싱크대가 어지러이 그릇이 나뒹굴어도 씻은 것과 안 씻은 거의 구분만 있다면 세세한 그릇 정리를 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마다 생기는 아이가 흘린 밥풀은 큰 덩어리랑 바닥만 간단하게 치우고 의자에 묻은 잔챙이들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나중에 굳으면 한 번에 걸레가 달린 청소기로 끝낸다.
아이가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는 구강기가 끝물이기도 하고, 아이가 먹더라도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극물이나 상한 음식이 큰일이지, 그 외의 자잘한 먼지나 부스러기를 주워서 입에 댄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에서 빼주거나 삼켰으면 그냥 둔다.
대신 음식의 질과 양은 철저하게 관리한다. 나쁜 식습관을 들이지 않기 위해 단 간식을 멀리하고 정량을 제시간에 준다. 하루나 몇 시간 지난 상한 것 같은 음식은 어른만 먹거나 바로 버린다.
이러한 자신만의 철저한 바운더리 외엔 꼼꼼하게 자신을 혹사하면서 정리하거나 치우지 않는다.
처음엔 이러한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 내 성장배경도 먼지 하나 없는 집에서 자란 게 아니라 금방 남편의 살림 방식에 적응했다.
가끔 시엄마가 오면 남편의 살림에 한 소리 하며 본인이 걸레를 드셨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인지 '안 보련다' 하며 예전처럼 청소해 주시지 않는다.
장난감이야 드넓은 방과 거실에 늘 나뒹구는 것이고, 거슬리는 사람이 가끔씩 분류에 맞게 장난감 통에 정리하거나 한쪽으로 몰아둔다. 싱크대 정리도 남편이 시간이 나면 하는 것이고, 내가 집에 일찍 와서 정리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최소한의 쉬는 시간을 마련하는 우리 가족만의 최적의 방법인 것이다.
만약, 내가 남편이 쉬지 않고 청소하길 바라거나 남편이 그런 살림을 하면서 자신을 혹사했다면? 분명, 지금 시점에서 둘 중 한 명은 '내가 얼마나 힘든데!' 하며 터졌을 것이다.
단순히 조금 더 지저분하게 사는 방식을 택한 것이 서로의 행복을 지켜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이도 매 순간 장난감을 어지른 것에 대한 부모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같이 놀고 같이 치운다. 18개월 아기한테는 아마 두 종류 모두 다 '같이 논다.' 일 것이다.
혼자 놀고 혼자 치우지 않은 것은 나중에 또 같이 놀고 같이 치운다. 점차 말귀를 알아들으면 혼자 치우는 것을 가르칠 테지만 지금은 혼자 치우지 않은 것에 대해 혼나지 않는다.
늘 깔끔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도 남편과 아이가 좀 더 쉬고, 편하다면 깔끔히 정리된 집보다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