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May 03. 2023

완벽한 외벌이 3인가족

줄어드는 외벌이, 늘어나는 여성 외벌이

남편의 육아휴직이 5월부로 끝난다.

남편 회사에서 육아휴직 종료를 알리는 전화가 왔으며 이후의 복직 불가에 대해서 '통보'했다. 법적으론 문제 될 일이지만 현실적인 한국의 소기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렇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남편의 퇴직도 계획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전화가 온 날, 1년이 지나갔다고 아이를 재워놓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앉았다.


별 다른 거창한 얘기는 없었다. 늘 그렇듯 "원래도 주부였는데 이제 공식적인 주부인거지." 하는 싱거운 유머로 시작한다. 그래서 앞으로 인생 계획은 어떤데, 하니 내 인생은 다 가족거지,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논의하고 싶은 건 앞으로 뭐 하면서 살면 남편이 큰 스트레스 없이 적당히 즐기며 살 수 있을지, 그동안 고생했으니 잠깐 리프레쉬를 하지 않을래, 하는 의미였는데 역시 주부다운 발언이다.


소일거리로 육아와 살림 외에 하는 일은 있다. 열대 희귀 식물을 기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무언가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재밌어하고 보람 있으며 거래로 돈도 되니 콧노래를 부르며 온실장을 들여오고, 식물을 더 키우면서 신나게 '식집사'의 삶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덕분에 그냥 놀러 가는 거라면 집돌이라 집에서 놀자, 하던 양반이 수도권 여기저기서 하는 식물마켓을 주말마다 같이 다니면서 나들이도 부쩍 늘었다. 마켓을 가면 아는 사람들도 많고, 같은 취미활동인 식물 기르기로 할 이야기도 많아서 그의 유일한 사생활을 응원하고자 같이 가서 아이를 보며 나들이를 즐긴다.


 


올해 연봉협상도 해서 급여가 오르고, 전세는 6월이면 만기에 이미 전셋집이 매매가 되어 보증금 중 일부를 돌려받았다. 굳이 맞벌이를 안 해도 세 식구가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다고 하니 우리 부부는 조급함을 덜었다.


외벌이의 삶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한 요즘이다.


이런 얘길 하면 요즘 같은 때에 외벌이라니?!, 하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물가는 오르고 억대 연봉자도 집이 없고, 대출이 있으면 힘들다던데 무슨 소리냐고 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테지만 아이가 어리고 돌봄 양육자가 필요한 경우, 양가 부모님이 일하시고 돌보미를 구하는 비용 대비 소득이 비슷하거나 적은 경우 외벌이를 선택한다.


그리고 대개 외벌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하거나 소득이 조금 더 낮더라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이 하게 된다. 보통의 경우, 사회생활의 욕구보다 소득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 감사하게도 소득과 직장생활의 욕구가 둘 다 높은 내(엄마)가 외벌이를 한다. 더불어 남편은 사회생활의 욕구가 낮았고, 동반되는 연봉 상승을 위한 이직의 욕심 등이 없어서 현실적으로도 엄마의 외벌이가 가능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1년간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대학원 공부를 하는 나의 행복도는 점점 올라갔다. 비슷한 수준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하원하며 살림을 하는 남편의 행복도도 같이 올라가서 우리는 계속 이 삶을 유지하고 싶었다.


현실적인 제약도 다소 해소가 되었다. 집이 가장 큰 문제였기에 올해 전세가 만기되면 더 저렴한 전세를 구하거나 월세로 갈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LH 매입임대에 당첨되어 1월에 이사를 했다. 같은 경기도 북부의 신도시 아파트로 옮겼는데 오른 이자의 1/3을 월세로 납부하게 되었고, 보증금이 저렴해서 대출이 필요 없었다.


평수는 넓어지고 기존에 살던 동네보다 新신도시여서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였기에 훨씬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집주인이 LH고, 장기거주가 가능한 데다가 통근도 차이 없이 가까워서 윤택한 외벌이 환경이 갖춰지게 되었다.


게다가 잠깐이나마 둘 다 풀타임으로 맞벌이 생활을 아이가 100일경에 해봤어서 강하게 외벌이를 할 수 있으면 해야지, 하고 원하니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완벽한' 외벌이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남편이 육아휴직자로 근로자의 신분을 유지했다면 5월부터 퇴직한 '자유인'이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완벽한 외벌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에 가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4년 만에 3인가족의 경제적 가장이 되었다. 2인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은 부담이 있었는데 오히려 3인 가정의 가장이 되니 자연스럽고 좋다. 우리 가족의 산 입에 거미줄 안 쳐주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뿌듯함, 대견함이 있다.


타인의 시선을 평균보다 낮게 신경 쓰긴 하지만 그래도 왜 이리 편하고 좋을까, 하니 비단 우리 가정의 일 뿐만은 아니더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거 봐, 외벌이는 줄어들지만 외벌이 가구의 여성 비율은 늘어나잖아. 우린 트렌드에 맞게 살고 있는 거야.'


자녀유무는 알 수 없지만 7년 이내 신혼부부에게서 나타나는 꾸준히 증가하는 '여성 외벌이' 현상은 그저 내일만이 아니었다. 맞벌이가 트렌드임은 확실했지만 외벌이 중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또 다른 트렌드였다.

출처: 중앙일보, ["주변서 이상하게 안 봐요" 외벌이 6쌍 중 1쌍은 아내가 돈 번다]

기사의 제목처럼 정말 "주변에서 이상하게 안 봐요.",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누가 나한테 왜?, 나 어째서?,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구나~~"

하는 대답이 먼저 나온다. 이런저런 사정 얘기를 부연하지 않아도 아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는 건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탓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평범해진 3인 가족의 엄마 외벌이 가장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