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학기를 보내며
전생에 업보가 많은 대학원생이자 워킹맘의 2023년 상반기는 휘몰아치는 태풍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룻배를 타고 있는 처지였다. 그나마 나룻배(가족)가 튼튼해서 익사하지 않아서 감사할 뿐이었다.
개강하고 3-5월 내내 엄청 바쁜 건 전혀 아니었으나 졸업시험과 교수님의 제안서 작업 요청이 맞물리면서 굉장한 6월 초를 보냈다.
시작은 1월부터였다.
2022년 12월에 2학기 종강을 하며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다 9월에 연구비를 받은 공모전의 연구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게 두 달 앞으로 다가옴을 확인했다. 연구데이터는 방글라데시 프로젝트 기관에서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종 정리된 데이터 받은 뒤, 추가 문의사항을 질의하면서 1월의 문을 열었다.
연말 휴가를 다녀온 클라이언트(고객 제약사)들의 연락이 오면서 일도 들어왔다. 그러다 2월이 되니 브런치를 통해 논문과 관련된 외주 업무를 맡기고 싶다고 제안이 왔다. 늘 하던 일이라 단건으로 일을 하게 됐다.
논문작성, 본업(회사일-메디컬라이팅), 외주(알바)
이 세 가지 일을 하면서도 조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정도였지, 피곤하진 않았다.
남편도 방학이라고 2주 내내 누워있더니 이제야 집에서도 뭔가 인텔리스러운 일을 하는구나, 하며 모니터 앞의 와이프를 응원했다.
2월 말일이 되기 직전에 논문작성과 외주는 내 손에서 떠나보냈고, 3월 개강이 되었다. 이번 학기도 4개 과목-12학점-을 꽉 채우며 풀 코스웍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했다.
*다음 학기부턴 3개 과목으로 코스웍을 하며 3개 학기를 보낼 예정이다.
그렇게 시작한 대면 개강의 날이 밝고, 퇴근 후 대면 수업 3개와 금요일 비대면 수업 1개를 수행했다. 그래도 3-4월은 아이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제법 낼 수 있었고, 덕분에 걷기와 말하기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 귀엽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남겼다.
회사일은 신규 직원이 동시에 우르르 들어오고, 하다 보니 바쁘게 이런저런 업무들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일하면서 남는 시간은 논문 볼 시간도 있고, 작년부터 밀려있던 아이티 연구논문 투고작업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고 남는 시간에 수영을 다녀오기도, 주말엔 호캉스나 남편의 식집사 생활(반려식물 키우기)을 위한 주말 플리마켓을 가며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시누이가 연말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경사도 있어 5월엔 상견례도 다녀오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과 함께 일상에서도 작은 변화가 있었는데 아이가 회사 근처 직장 어린이집으로 기관을 변경했다. 덕분에 아침마다 회사에 같이 출근하고 등원하는 훈훈한 일상도 있었지만 2주 정도하고 나니 등원시키고 학교까지 밤늦게 다녀오는 일정이 고단해져 잠정 중단한 상태다. 고로, 남편이 4월부터 아침 등원시키고 하원시키고 하원후 하는 모든 일과를 '독박'으로 하고 있다.
(폼이 미친 상반기는 나뿐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수족구가 발생하고, 다행히 우리 애는 수족구까지는 안 왔으나 감기를 앓았다. 아이의 경미한 감기가 파도타기로 나와 남편, 친정식구들과 시엄마까지 옮겨가서 엄마는 일주일 폐렴으로 병원 입원, 우리 모두는 두 번 이상의 외래를 가야만 했다.
대학원생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인 '아프기'에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굴러가고, 내가 해야 하는 의무들은 없어지지 않았으니 콜록대는 기침과 함께 과제와 일을 헤쳐나가며 겨우겨우 살아내었다.
6월이 다가오자 기말과제, 졸업시험(석사수료 기준), 지도교수님의 새로운 제안 등이 닥쳐왔다.
기말과제야 늘 있는 것이니 하기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이겨내 가고 있었는데 이번학기에 석사수료 기준 학점을 다 받게 되어 졸업시험을 쳐야 했다. 기존에 알던 3과목이 아닌, 5과목으로 이 또한 쉬운 허들이 아니었다. 역시나 한 번에 통과 못하고 재시까지 한 과목 치며 겨우 넘겼다.
지도교수님의 새로운 제안에는 긴급 입찰로 뜬 과제의 제안서(RFP) 작성이었다. 통과되면 4년간의 사업인지라 당장 2주 안에 완료할 수 있는 인력들이 필요하여 연구실 인력을 풀로 끌어오고, 파트타임인 나한테까지 요청이 도달한 것이다.
정중하게 부탁하시고, 내가 해왔고, 해 갈 수도 있을 거란 국제보건 분야라 오케이 했으나 이렇게까지 잘 못할 줄은 몰랐다.
80쪽의 제안서 쓰기는 처음이기도 했고, 연구실에 있었던 게 벌써 2년 전 일이라 이런 보고서나 제안서 작성에 둔해졌으며 뭣보다 해당 분야(평가)에 대한 나의 지식이 석사 입학생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경험이 많은 박사과정생이 마지막 즈음에 리드를 해주어 요절복통 제안서 쓰기 과제는 완료를 했다. 귀한 경험을 통해 대학원 생활과 연구실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고,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풀타임 연구생으로 100만 원 이하의 연구 학생 인건비를 받으며 대학원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이 돈이 모자라고, 교수님의 급한 부탁에도 척척 해내는 석/박 과정생인 적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직장들은 대개 나의 경력을 바탕으로 정당한(?) 월급을 계약하며 입사한 것이기에 전문가로서 발언권도 있고, 결정에 대한 권한도 어느 정도 있는 상태였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인사이동을 하거나 이직을 하거나 업무분장을 통해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하는 등 합리적인 회사원의 방침들을 사용할 수 있는데 정반대의 입장에서 연구와 일을 병행하는 풀타임 대학원생들과의 협업은 쉽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여럿인 사업 제안서의 피드백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더 어려웠다.
가족의 양해를 구하긴 했으나 2주 연속 '독박육아'를 한 남편의 성화와 매일 새벽 4시에 잠든 내 몸은 '생존'을 부르짖었다.
알면서 했지만 회사나 가정에서 한 번씩, "돈 안 받고 한다고?!", 하는 괄시 아닌 괄시를 받을 때마다 피로함에 스트레스를 한 단계 더 쌓아주었다.
그나마 2주 안에 끝나는 것이라, 이 정도이길 다행이라는 소회를 남긴 6월 둘째 주까지의 나의 일상이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일', '돈 안 되는 일', 맞다.
그게 다 '연구'다.
당장에 가시화된 이익은 전혀 없지만 쌓이면 장기적으로 탑이든, 돌무덤이든, 뭐든 가시화될만한 그 무엇이 되고 그걸 통해 한 단계 나아갈 힘을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행위다.
*문제는 이 사업 만에 하나 통과되면 어찌 될지는 머리를 굴려보며 면담을 통해 업무분장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사다난 상반기를 보내면서 초등학교 때 읽었던 [탈무드]가 생각났다.
염려와 걱정에 찌들어 있는 농부가 랍비의 조언에 따라 염소와 닭, 소를 집안에 들였다가 다시 내보내고, 그 결과 자신의 집이 궁전 같다고 느끼며 가족과도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랍비의 근엄한 조언이던, 교수님의 권위 있는 부탁이던, 내 인생에 염소와 닭과 소를 들였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염소와 닭과 소가 사라진 집에서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한 번도 연구생으로 대학원에 없었다는 사실이 아킬레스 건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 단점에 집중하지 않게 되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과 아쉬움을 단기간에 경험하게 해 주셔서 감사함을 느낀다, 진심으로.
덕택에 원래도 감사한 배려에 잘 다니고 있지만 현재 회사에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알아서 일을 잘한다고 뻐기던 근거 없는 잘난 척이 사라지며 겸손해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일부러 자기 삶에 풍파를 갖고 오는 게 다시금 내 삶을 돌아보는데 좋은 전환점이 된다고 느끼게 된 상반기 3학기였다.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1순위로 챙기며 근근한 자아실현으로 살아가자고 다시금 마음먹었다. 대단한 사람은 진짜 성공하고 부자이고 대단한 사람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 나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지속적으로 이루도록 노력하는 데에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소중한 상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