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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Jul 23. 2023

왜 외벌이 가장이 좋으세요?

엄마가 외벌이인 사람의 소회

최근 브런치 글을 읽어주신 한 분이 나와 같은 엄마 외벌이 가장이라는 공통점으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서로의 상황이나 히스토리, 관념과 가치의 공통분모들을 발견했다.


그중 한 가지는 일을 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워킹 스터딩맘의 포지션에서 남편이 전업대디를 하는 삶에 큰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의 삶이 마치 전생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삶인 것처럼 행복하다, 는 심정이다.


개인적으로 돌아보니 나에겐 '중국에서의 신혼생활'이 전생이고, 지금이 현생인 것 같다. 당시엔 달콤한 비극이었으나 현생에선 삶의 감사와 만족을 느끼게 한 자양분이 된 셈이다.  


남편하고 결혼하고 신혼을 보내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회고하는 브런치 글을 쓴 적이 있다. 중국에서 신혼생활 하면서 왜 결혼을 하게 됐고, 결정하게 된 개인적인 마음을 적었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


그럴듯한 배경보단 이 사람의 '단점'이 내가 겪어내면서 살기에 치명적이지 않았고 장점이 이를 커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가올 11월이면 결혼 5주년이 되는 시점에 남편과의 결혼 지속이유와 신혼초기에 겪은 내 어려움이 어떻게 지금의 삶까지 이어졌는지 소회를 적어본다.



일단 대부분의 이유가 결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단점은 치명적이지 않고, 장점은 눈에 띄게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큰 영양분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연애 말미와 신혼 초기에 '단점'이라고 여겼던 부분이 세월과 그간 달라진 우리의 상황 때문에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남편의 동굴로 파고드는 단점이 신혼을 거치고 나서 내가 한국에 취업을 하며 다시 귀국한 이후로 개미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다.


첫 번째 이유는 동굴로 파고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서고, 두 번째 이유는 부부가 서로 닮는 것을 나아가 아예 교환이 돼서 그렇다.


첫 번째 이유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발생할 확률이 70% 이상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경력자만 필요로 하는 시장에서 급여와 조건이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지금은 실업급여를 채울 만큼의 6개월을 다 채우지도 못할 만큼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고, 심지어 집에서 일하고 싶거나 지역을 바꾸거나 나라를 바꾸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해서, 미래가 두려우려면 부부 둘 다 먹고사는 일이 걱정되어야 하는데 사채를 쓰거나 다단계를 통해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나머지 30%는 천재지변과 전쟁, 사고, 질병 등의 상황인데 일어나야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 지금 상황에서 매일 걱정하고 산다면 병원에 가봐야 하니 그런 두려움이 0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며 호르몬 변화로 인해 예전의 남편처럼 동굴을 파고 하루종일 울며 걱정을 싸매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잦은 이직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되는 이사와 과도한 지출, 계획하지 않은 임신 등 여러 상황이 나를 곰으로 만들면서 동굴에 기어 들어가게 했다. 이때 오히려 남편이, "그건 너무 과한 상상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스트레스야. 넌 뭘 해도 네가 하고 싶은 걸 다시 할 수 있을 거고, 대학원? 입학이랑 공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아기가 태어나서 취업이 안 될 직종도 아니고, 내가 돈을 못 버는 백수도 아닌데 걱정하지 마."라고 다독였다는 것이다.


연애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나 사람이 살다 보면 놀랄 일들은 왕왕 벌어진다.


그렇게 호르몬의 시기를 잘 이겨내니 정말 남편의 말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시간으로도, 돈으로도 여유가 있는 삶을 살게 됐다.


지금의 고민이라면 훨씬 더 건설적인 것들 뿐이다. 어떻게 하면 연구를 잘할까,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등이다.



중국에서의 시간은 한국에서 나름의 커리어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된 상태로 다시 일과 관련 없는 해외 지역에서 처음부터 탑을 쌓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이 결혼생활을 통해 행복해야 하고, 남편이 매일 들어오지 않는 회사생활(기숙사에서 당직)을 하더라도, 언어가 안 되는 낯선 중국생활의 단점을 남편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열심히 살림하면 되지, 요리 배우면서 알뜰하게 꾸려가면 되지,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하면 되지, 남는 시간에 자기 계발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자주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던 것 같다.


그냥 살면 되고, 행복하던, 불행하던, 그렇다고 말하면 되는 건데 그걸 잘 못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는 소리나 해대는 전업주부가 되기 싫다는 발악은 결국, 그게 실패했다는 자조를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 행복해야 하는데 공허하고 적막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더디다는 것이 삶의 고문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야, 결국, 한국에서 그럴듯하게 못 살 것 같으니 해외로 간 거잖아. 중국의 20평대 아파트에선 살아도, 한국의 6평짜리 원룸에서 신혼생활 하기 싫어서 갔잖아. 아님 헤어졌든지. 헤어질 용기도 없고, 한국에서 작게 시작하자는 용기도 없으니까 남편 탓이나 하고 있겠지. 같잖은 내 자존심이 화를 부른 거다. 내가 다 책임져.'라고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신혼생활 하면서 별 거 아닌 일에 잘 울었고, 웃긴 상황에서도 웃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돌아이 같은 성격이라 너무 특이하게 재밌고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1년이 될 즈음, 한국에 한 달간 가 있을 일이 생겼는데 남편이 정신과도 가는 걸 권유했다. 뭐 하러,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가볼까?, 하며 동의한 걸 보면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당시 내가 정신과에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읭???, 하는 반응이었다. 엄마도 친구들도 네가 거길 왜가??, 반문했다.


그렇지, 나는 남편이 넉넉히 벌어다 주는 생활비와 격일로 방문하는 남편 덕에 집안일도 힘들게 안 해도 되고, 아이도 없으니 아침 늦게 일어나 식당이나 배달음식으로 먹고 싶은 거 먹고, 수영 갔다가 동네 산책하고, 가끔 지인들 만나 카페 가고, 수다 떨다 반찬가게나 한국마트에서 장 봐서 귀가하는 인생인데 웬 정신과?


그런데 왜 어딘가 불안하게 떠 있는 기분이 들고, 이러다 남편이 없어지면 인생이 나락으로 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매일매일 떠올랐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면서 슬픈 감정이 드는 걸 보니 그 당시 나는 꽤 아팠던 것 같다)


당시 [방구석 1열]이란 영화 감상 예능 프로에서 전도연이 출연했던「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리뷰하며 정신과 전문의의 말에서 내가 어쩌면 꾸준히 상담이 필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억울한 일로 생면부지의 이역만리타국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이때의 심리상황을 분석하는 리뷰를 남기는데 이 말이 나에게도 큰 위로와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주인공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남편 따라 해외에 거주하게 된 아내분들이 동일한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느낍니다."


'아, 의식주가 윤택하다고 행복한 게 아니구나. 극단적인 상황의 영화 주인공과 내가 같은 처지구나...'


병원에서도 경도 이상의 '불안장애'가 있다고 진단했다. 약물이나 상담 치료가 필요한 단계는 아니지만 점점 심해진다고 느낀다면 치료 시작을 권한다고 말씀하셨다.


진단을 받고 나서 한 가지 좋았던 건, 내가 우울하고 힘들었던 심리 상태가 단순히, '복에 겨운 미친년의 뻘 소리'가 아니라는 걸 검증받아서 안도했다고 해야 할까.


그 뒤로 중국으로 돌아와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건 부부 포지션 체인지뿐이라는 판단으로 취준을 시작했고, 해를 넘긴 코로나가 상륙한 2020년에 성공했다.


이후로도 쉽게 정착하진 못했지만 뭘 해도 무기력함을 느끼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그래서 수치상, 소득이나 주거지 평수로는 치환할 수 없는 큰 삶의 만족도가 중요하다는 걸 하루하루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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