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결혼한 이유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이 있었고, 석사 과정생이 시작될 찰나였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이 갑자기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나는 현실적인 조건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살핀다. 하지만 감정적인 조건이 조건 순위에 뜨는 순간, 아주 난처해진다.
나의 조건을 보자면, 한국에서 나의 스펙으로 얻기 힘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과 동료와 상사를 두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곧 석사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실패로 점철된 인생의 끝에 로또 같은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시간을 또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 어쩌면 영영 다시 안 올 수도 있다.
남편의 조건을 보자면, 혼자 벌어서 먹고사는데 어려움 없는 벌이가 된다. 예비 시부모님도 배려 깊고 필요 이상의 간섭이 없으신 분들이다. 그는 나보다 요리를 엄청 잘한다. 맛있는 걸 잘해주고 항상 나의 건강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공부와 일을 당장은 그만두지만 집에만 있는 걸 싫어하는 나의 성격을 알기에 해외에서라도 공부를 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준다고 한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조건이지만 정말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에 상응하는(오히려 과한) 애정이 있다.
내 생각엔 막상막하였다.
이 기회도 저 기회도 어느 하나 선택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일단 하나는 버려야 했다. 이런 고민은 깊이는 해도 오래 하는 건 아니다 싶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아와 대화하고 남자 친구와 대화하고 가족들과 대화했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려 했으나 나 같아도 내입장에서만 대답했을 것 같아 보류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의 조건이 하나 더 생각났다. 남편은 마이너스는 아니었으나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본인 입장에서 자신은 결혼 상대로 낙제점이라고 평가했다)
정말 그랬다. 재산 수준이야 사귀면서 익히 알고 있었고,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줄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대인관계가 넓지 않았고 나서서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하루 동안 많게는 3-4번, 적게는 2번가량 휴대폰을 들고 연락을 하는 상대는 나뿐이었다. 본가에도 1년에 한두 번 연락하고(시엄마도 연락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둘 다 그렇다), 방문은 명절 중 한 번만 갈 정도였다. 친구들과는 가까이 있으면 보고, 멀리 있으면 연락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일생이 외로울 수밖에 없던 이유도 19살부터 원 가정을 떠나서 혼자 살던 자신밖에 없었고,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라 우울한 기질이 스며든 것이었다.
1년 넘게 사귀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갖고 있는 개인생활이라는 게 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나는 그가 가진 것 중 제일 맘에 들었던 건 '나'였다. 그가 가진 전부를 보여줬는데 그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평소 '나' 스스로 나 자신인 게 싫은 사람인데 한 사람에게 내가 전부라니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나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이 되기에 완벽한 조건이라 봤다.
본인이 살아야 해서 돈을 버는 건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 외의 모든 건 나에게 맞춰져 있었다.
굳이 중국까지 돈을 벌러 나간 것도, 힘든 롱디를 견디는 것도, 나와 같이 살려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주머니가 채워져야 하고 그래야 내가 힘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미 힘들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에 반박하긴 어려운 것 같다)
결국 그가 가진 조건 중, '나 자신'이 제일 맘에 들었고, 그의 청혼을 승낙했다.
그 외: 책임감은 있는 남자이나 장래희망은 가정주부이다. 반대로 나는 정년없이 일하는 게 소원이다. 이러한 부분도 동일한 목표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