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Aug 30. 2023

미친 듯 심심하거나 괴로울 만큼 지루하면 생기는 일

요즘같이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심심할 일이 무어냐고 한다.

영상을 봐도 봐도 같은 게 계속 나오고 책도 비슷한 것만 읽게 된다. 좀 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날 만큼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 필요한 때가 있다.


나는 중국에서 아이가 없이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혼자 플스로 [저스트댄스]를 추거나 수영을 가거나 미술학원엘 다녔다. 중국어 공부는 기본이었고, 영어 공부도 했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만 심심하지 않았지, 그 한두 시간이 지나면 남은 시간들은 지루하고 적막했다. 돈을 안 쓰고 생산적인 걸 하려면 콘텐츠를 만드는 거라 생각해 유튜브도 만들어봤다. 카메라와 친하지 않은 인간이라 얼마 못 가 그만뒀다. 심심하던 차에 블로그를 할까, 뭘 할까, 기웃거렸는데 카카오에서 오픈한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생각났다.


결혼하려고 초초초스몰웨딩 후기 찾다 만난 플랫폼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동네는 단순히 글만으로 승부 본다는 당시엔 없던 콘셉트이었다.


'글? 한때 글발 날려서 문예창작반 해봤지, 에헴.'

하는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작가신청을 했다. 다들 삼수, 사수를 한다길래 뭐 얼마나 대단해야 하나, 공부하고 신청했다.


결과는 바로 통과!


재밌어 보이긴 했나 보다, 간호사가 아프리카 갔다 생뚱맞게 중국 가서 산다니까. 그래서 시작한 브런치 글쓰기로 어느덧 100편이 넘는 글을 썼다. 그리고 투고도 해보고, 출간계약도 했다.

(책이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


그리고 심심하다니까 논문 써보라고 전 직장 선생님이 던져주신 고기를 맛나게 구워 저널에도 내보고 그걸 발판 삼아 새로운 분야의 논문 또 쓰고, 또 썼다.


논문을 다 쓰고 나니 공허해져 취업이 하고 싶어 일하기 시작했다. 파견직 이랬더니 코로나로 파견 못 간대서 또 심심해졌다. 그래서 할 일없는 사람들 모아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그 연구로 작년에 논문을 썼고, 지금은 저널에서 리뷰어가 심사 중이다.


육아하면서 아이는 귀여웠으나 내 심심함과 하루종일 아이만 보는 시간은 별로 귀엽지 않았다. 그래서 취업했고, 대학원을 갔다.


취업했는데 회사가 비수기가 있었다. 회사에서 토익 공부하고, 종이책 가져다 읽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살았는데도 시간이 안 갔다. 그래서 연구제안서 공모전을 써봤다.


그 공모전에서 쓴 연구계획서로 논문 한편 써서 다음 달이면 간행물로 실린다고 한다.


사회 초년생 때 이룬 학업과 취업은 기를 쓰고 간절히 매달려서 했었는데 어쩐지 20대 후반부터의 내 삶은 '심심해서' 하면 되더라, 식이었다.


요컨대 나는 심심한 걸 병적으로 싫어라 하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보이는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싫어하는 인생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야 하는 걸로 귀결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