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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Sep 19. 2023

출간일기 - 초고 작성

초보작가의 책 출간일기

기획서를 만들어 투고 후 출판사와 계약을 했으면 원고 마감일을 지정한다. 

원고는 '초고' 형태일 수도 있고, 기존의 글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책' 형태로 만드는 '퇴고한 초고'의 형태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두 번째로 기존의 브런치 글들 중 책의 주제에 맞게 글을 다시 작성했다. 출판사에서 해 준 일은 글의 방향성과 교정에 대한 사항을 알려줬다. 제목 짓기, 목차 제목과 꼭지의 흐름을 에피소드별로 다루는 등 요즘엔 책 쓰기 수업에서 몇십 혹은 몇백만 원을 내고 듣는 자문을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담당 편집자의 역할이 공동저자는 아니므로 숲을 이루기 위한 나무 심는 방향만 알려준다. 그 숲의 나무를 촘촘히 심을지 S자로 심을지는 순전히 작가의 몫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파일의 양식을 다운로드한 것이다.

출판사에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작가가 투고한 원고의 형식으로 그대로 초고를 작성하여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브런치에서 운영하는 POD(원하는만큼 소량인쇄) 출판을 지원하는 [부크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양식을 다운받았다. 그러나 수정작업을 하면서 워드나 한글의 문서양식은 내가 원하는대로 바뀌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논문을 쓰는 방식과 같았다. 내가 따라 쓰고 싶은 책을 한 권 정해서 그 책의 작가소개, 일러두기, 목차, 프롤로그 등을 문서에 똑같이 타이핑 복사한다. 


그리고나서 내용들을 내 것으로 바꾼다. 내 소개, 내가 말하고 싶은 이 책의 참고문헌이나 주요한 표기들, 목차, 프롤로그로 바꾸면 된다. 


1단계. 

목차를 만든다. 은유와 정보를 적절히 섞어서 에피소드별로 주제 순서 혹은 시간순서로 만든다. 처음엔 아이디어를 발휘한 은유의 제목보단 정보성 제목으로 나열했다. 


간호학과 입학 이유
부산에서의 학과생활
간호사 생활 후 해외봉사 지원
해외봉사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학교보건 활동과 단원 협력활동
귀국 후 일상
.
.
.


내 맘대로 작성했던 브런치 글들을 토대로 목차 제목을 짓고 보면 균형을 맞춰야 함을 깨닫는다. 이게 나의 조각경력 모음을 보여주는 건지, 해외봉사에서 겪은 희한한 일들을 보여주는지, 남편하고 연애담을 늘어놓는지,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한 건 아니었고, 목차를 쓰고 나서 한참을 골몰하다 SNS 하다가, 다른 작가님 책 보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정리하고,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계약을 하고 쓰기 시작하면 아무리 중간 수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 틀에서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종일 목차와 챕터와 꼭지 제목이 머리에 맴돈다. 

*물론 출판사나 편집자마다 다를 순 있다.


집에선 육아를 하고, 회사에선 일을 해야 하니 평소에 생각이 나는 것을 메모지에 마구잡이로 적어둔다. 


그 뒤에 육아 퇴근 하고 나서, 회사에 일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1시간 정도는 흰 바탕의 문서화면을 띄워놓은 후 마구잡이 메모를 풀어놓으며 정리를 한다. 


그렇게 완성된 챕터는 5개. 

처음 계획은 시간 순서보다 직업별로 시간에 상관없이 진행하려고 했지만 앞뒤 흐름이 안 맞았다. 순서가 안 맞으니 뒤에 가서 중복으로 이야기하는 게 생겨서 다시 갈아엎었다. 


간호사-해외봉사-연구간호사-중국(小)-국제보건-역학조사관-메디컬라이터


순서로 진행했다. 목차별 제목 또한 기존의 '정보' 중심의 제목에서 '은유' 중심의 제목으로 변경했다. 쓰다 보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내 이야기, 다른 하나는 정보 전달이었다. 


내가 해당 직업과 경험을 통해 느낀 바와 왜 그걸 하게 됐고, 그만뒀는지가 나오는데 결국 이 직업에 대한 세부사항을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란 생각에 이야기 부분과 정보 부분을 나누게 됐다. 


그다음 생각할 것은 이야기와 정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였다.

직업정보를 마지막 부록으로 둘지, 챕터별로 둘지, 이야기에 녹아들어 디자인만 다르게 할지, 등 고민이 되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을 출판사와 공유하여 물어볼 수도 있지만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나 성격 탓에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며 다른 작가님들의 경험담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바꾸어갔다.


일단은 다 만들어 두고 마지막에 편집자님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2단계. 

내게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 중 1.5주가 목차 만들기로 쓰였다.


그다음 과정은 그간 쓴 원고를 긁어모으는 일이었다. 다행히 브런치를 통해서 끄적인 것이 많아 글밥이 풍부했다. 밥이 많다고 반찬까지 풍성한 건 아니었기에 일단 짜깁기 한 글들을 목차에 맞게 재정렬했다.


그중에서 정보 전달 중 표나 그림이 필요한 것을 표시해 두고, ppt를 열어 텍스트를 복사+붙여 넣기 했다. 그리고 텍스트에서 말하는 대로 표와 그림을 만들었다. 


유려한 디자인은 전혀 아니며, 가독성이 있는 정도로만 표현을 했고 나중에 편집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다듬어 주셨다. 


그 뒤로는 하염없는 복사+붙여넣기+자르기의 연속이었다. 짜깁기가 끝나면 전체 챕터를 다시 보고 내용 분량이 적절한지 살펴봤다. 정보 전달이 챕터의 반 이상 분량을 차지한 것도 있었고, 개인사가 과하게 구구절절한 꼭지도 보였다. 


다시 한번 공사에 들어갔다.

처음엔 무조건 잘랐다. 필요 없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과감히 다 잘라냈다. 초반엔 잘라낸 걸 다시 찾으리란 생각을 못해서 뒤에 가서 필요한 내용을 다시 브런치 글이나 개인 소장 글에서 찾아 헤맸다. 그 뒤로는 일자별로 버전을 표시하여 문서를 다 따로 놔뒀다. 


그럼 오늘 내가 다 삭제한 내용이더라도 그다음 날 필요하면 다시 찾기가 쉬웠다. 



3단계. 

내가 살았던 인생이니까 기억 잘 나겠지, 는 절대 아니었다. 너무 힘들었던 때라던가, 느슨했던 순간은 디테일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카톡 대화창이나 내가 남긴 댓글이나 SNS기록을 더듬어 왜곡되지 않은 기억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문장은 들쑥날쑥했고, 꼭지별로 여전히 내용이 과대하거나 과소한 경우가 많았다. 계속해서 자르고 붙이고 작성하는 작업을 하면서 마침내 '초초초고' 작성을 마쳤다. 


이야, 매일 퇴근해서 새벽까지 열심히 썼다. 

자부한 글은 처음부터 거슬리는 게 참 많았다. 

문장이 제대로 된 게 30%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 이유는 ~ 때문입니다.' 하고 문장 구조가 되어야 한다면, '때문에 ~ 그 이유는 ~때문에 ~ 그렇다.' 이딴 식으로 괴랄 망측한 문장들의 향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독자님들껜 깊이 머리 숙여 죄송하지만 브런치 글이라는 게 내겐 낙서장 수준의 일기장으로 그날 그날 생각나는 것을 활자로 남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씩 다시 보면서 이상한 문장이나 단어를 고치긴 했지만 책을 만들 정도로 교정/교열이 까다로운 건 아니었다. 


앞 챕터에서 괴랄한 글들을 수정하다가 원인이 없는 결론도 있었고, 결론이 없는 기-승-전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작성하는 작업을 거치며 두 번째 '초초고' 상태를 완성했다. 



4단계. 

자, 이제 계약서에 명시된 원고 마감일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이제 나오는 건 자잘한 수정사항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때 사진 삽입을 어떤 식으로 드려야 하는지 문의드렸고, 본문에 위치 표시하고, 따로 파일로 묶어주면 된다는 답변을 받아서 사진 고르는 작업도 같이 병행했다. 


사진은 고화질이 필수였다. 초고화질까진 아니어도 너무 어둡지 않으면서 글의 내용과 어우러지며 설명이 가능한 사진이어야 했다. 적당히 넣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사진을 너무 안 찍어놓기도 했고, 초점이 흐리거나 내용과 관련 없는 개성 넘치는 사진들뿐이었다. 


딱 싸이월드에 박제된 그런 화소의 사진들뿐이라 고르고 골라 적절한 사진을 추리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다. 


사진을 넣을 자릴 생각하며 읽으려니 멀티 플레이가 어려워 [파파고]와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했다. 파파고에서 읽어주는 음성이 한국인 성우의 발음이나 흐름과 유사하여 듣기 작업을 할 때 유용하게 잘 쓰는 어플이다. 


듣다가 걸리는 비문은 바로 수정하거나 애매할 땐 옆에 틀어 놓은 맞춤법 검사기로 검사했다.

물론, 더 알쏭달쏭한 문법이나 표현은 구글과 국립국어원 Q&A 게시판을 애용했다. 


마지막 고민은 맞춤법과 순우리말을 표준대로 사용할 것인지, 현장에서 사용하는 어감을 사용하기 위해 표현방식대로 쓸 것인지, 였다. 


세종대왕님께 허리를 숙여 송구스럽단 인사를 드리고, 원래의 맛을 살리기 위한 단어들은 그대로 외래어 표기를 쓰기도 했다. 



'초고'라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며 송부했다.

메일 클릭은 단순한데 왜 이리도 묵직하게 느껴지는지. 

누군가 출판사에 송부 버튼을 누르면 우리가 갖고 있던 초고는 새로운 원고가 되어 다가온다고 했다.

새롭게 좋아진다는 게 아니라 검토한 원고보다 엉망진창인 초고라는 말이다. 


역시는 역시, 보내고 나니 나 또한 그런 부분들이 보였고, 포함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서술이 부족하다고 밤마다 이불을 걷어차며 언제쯤 답변을 주실까,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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