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작가의 책 출간일기
알고 계시는가.
우리는 글을 쓸 때 생각보다 구어체의 습관을 띈 상태로 작성한다.
특히,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한 단어들의 나열이 초기 원고에도 그대로 들어있다.
쉽게 말하면, 문장의 앞뒤가 연결되지 않은 말이 많다는 뜻이다.
기본 한국어 문법에서 요구하는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다.
'그것은 ~입니다.' - 설명하는 문장이 와야 한다.
'하지만 ~때문입니다.' - 앞 문장과 대비되는 내용을 설명한다.
'그래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앞 문장의 결과나 보조하는 설명이 와야 한다.
이런 식의 문장구조가 적절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할 땐, 머릿속에서 무장구조를 완결하고 내뱉기보다는 일단 첫 단을 끄집어내고 마무리를 하는 식이 된다.
'그래서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왜냐하면~'
결론에 이상한 동사가 나와도 이상함을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말의 90%는 일대일로 나누는 비특이적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이나 연설은 그렇지가 않다.
맺고 끊음이 확실해야 하며 앞에서 말한 것과 뒤에서 말한 것이 일치해야 한다.
이야기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앞에선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었다.'라고 했으면서,
뒤에선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먹었다.'라고 말할 순 없다.
이러한 사실들이 잘 나열되어 있는지 보는 작업이 교정/교열 단계이다.
출간(출판)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까지 '초고'라는 전체 원고를 넘기면 출판사에서 검토하는 시간을 가진다. 타임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곳도 있고, 편집자의 재량에 따라 기다리라고 하는 곳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땅이 가문 것처럼 속이 바싹바싹 건조해진다.
왜냐하면 계약서 작성 당시, 출판사에서 확인한 원고와 내가 보낸 원고의 형식과 맥락 등 여러 구성이 바뀌고 내용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수정했는데도 이 정도야?'
라는 말이 나올까 무섭기도 하고, 계약을 무르자고 할까 봐 떨리기도 한순간이다.
내가 실력에 비해 너무 빠르게 출간계약을 해서 벌 받는가 보다, 걱정하며 다른 작가님들의 속내도 궁금하여 찾아봤다.
다행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판매부수가 꽤 되는 작가님들도 원고를 발송하고 나면 출판되지 못할 거란 막연한 두려움에 두근댄다고 하신단다.
안되면 안 되는 거겠지.
마음을 내려놓고 있다가도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이틀이 지났을 무렵, 어떠시냐고 물으니 검토 중이며 나름 괜찮다는 후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며칠 후, 1교 편집본을 전달받는다.
같은 출판사의 다른 작가님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6개월-1년을 원고를 왔다 갔다 하며 쓴 작가님도 있다 하여 얼마나 많은 수정사항이 있을까 가슴을 붙잡으며 열어보았다.
똬란!
당장 인쇄를 해도 손색없을 디자인 편집본을 전달받았다.
수정사항들도 가벼운 띄어쓰기 위주로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캬, 잘 썼나?'
책을 만든다는 실감과 자뻑에 취해 원고를 찬찬히 읽어보니 이건 뭐,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챕터 1 첫 꼭지부터 빨간펜이 소나기처럼 그어지기 시작했다.
내용도 앞 꼭지와 뒤--에 꼭지가 어긋난다.
거예요, 거예요, 편이에요 등의 어미가 이상하다.
은,는,이,가 가 틀린 게 수두룩하다.
그랬기~ 때문이다, 자리에 그랬기~그랬다, 가 왜 나오는지 과거의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씩 체크를 하고 다시 쓰는 작업을 1차로 마치고 나면,
정리를 하면서 문법과 새로 쓴 단어의 뜻이 일치하는지 구글선생님께 무릎 꿇고 나아가 상세한 문의를 드린다. 다시 문을 두드린 국립국어원 게시판 선생님은 이 이상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문법을 뛰어넘어 알아서 잘 쓰는 건 작가 니 몫이지!!"
불호령을 받는 것 같았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교수님이 박사학위 논문심사에 디펜스가 불가능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흥미, 재미, 반복적으로 쓰인 이유가 뭐죠?, 둘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해 보세요."
"재밌다와 즐겁다의 차이를 3줄 이상으로 서술해 봐요."
"많은 많았던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까?!"
한 마디, 한 마디, 과거의 내가 쓴 문장들이 교수님이 되어 회초리를 들고 틀린 거 하나당 한 대씩 맞는 기분이었다.
하, 무를까.
고쳐도 고쳐도 애초에 엉망이었던 글을 얼기설기 뜯어고치는 형국으로 보였다.
이게 이래서 책이라 할 수 있나, 자괴감에 쭈욱 지하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을 지하실에서 기계처럼 비문을 뜯어고치다가 기름 범벅이 되어 1층에 나오게 된 건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먼지를 치우니까 햇살이 들어오는 예쁜 거실이 보였다.
수정을 거듭한 글을 다시 읽어보니 동화책같이 스토리가 술술 읽혔다.
기승전결이 있었고, 복선도 있고, 반전 아닌 반전드라마도 있었다.
교훈도 있지만 그보다 살았던 이야기 중 밖에 알릴만한 에피소드가 좀 더 정렬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책을 썼구나.
책을 수정했구나.
책이 나오는구나.
만질 때마다 '실감'이 났다.
이런 게 책이 된다고?
에서
이렇게 책이 된다고~
가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