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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Jul 12. 2020

[출간전 연재]문서작성&영수증 처리가 팔 할인 국제보건

국제개발 보건사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수증 처리가 한창인 요즘이다. 현장에 없이 스카이프로 이거 틀렸다, 다시 줘라, 이건 뭐냐, 어디 쓴 거냐, 증빙 있냐 등 가본 적도 없는데 매니저랍시고 매니징 하는 게 우스운 형국이다.


이상과 현실

직업을 선택할 때 되는 대로 이력서 넣고 합격해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이 원하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보이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시도한다. 여행과 서비스업을 좋아하면 여행사나 항공사 등에 지원하고, 책을 좋아하면 출판이나 도서관 쪽 일을 찾아본다. 


국제개발을 하는 사람들도 개개인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국제보건'을 선택하는 의료보건 계열 전공 출신자들이 사진과 영상 속에서 현지 직원과 하하호호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보며 현장을 직접 뛰며 청진기와 주사기를 들고 내가 배운 실전 의료를 전파하며 현지인 혹은 얼굴이 하얀 외국인들과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특히, 한국이나 타국에서 의료인이었다가 국제 보건 일에 뛰어든 사람들은 초창기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병원이란 곳이 좋게 말하면 활기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사건이 많다. 최근 인기 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 한 회 에피소드에 어떻게 저런 많은 일이 있지, 드라마니까 그렇겠지, 하시는데 사실 하루가 아니라 몇 시간 만에 벌어지기도 한다. 


내 경우엔 저녁 먹기 전에 임종하시는 분이 생기고, 그와 동시에 5분 차이로 옆 방 산모는 자궁문이 열려서 출산이 임박해 분만실로 내려보냈다. 그리하여 2시간 안에 한 사람을 보내고, 다른 한 사람을 맞이하는 저승사자와 삼신할머니가 함께 인계를 주는 일이 제법 있었다. 


이렇게 활력이 넘치고 파이팅 가득하던 곳에서 해외봉사를 통해 개발협력 쪽으로 진로를 틀어볼까,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확인한 실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의료기기를 들고 종횡무진 아프리카, 남미에서 외딴 지역을 누비며 한국에서 배운 의료기술을 전파하는 동화책은 다큐 영상이 만들어 낸 기억의 악마 편집이었다.


<울지마 톤즈>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분명 존재하긴 한다. 근데 그건 정말 의사 출신 선교사님들이 하는 많은 일 중 하나이고, 그분들도 현장에서 조율하고 협력하는 '대화'와 '연락'이 주 업무일 때가 많다. 


의사 출신을 제외한 나머지 병원 출신 직무를 가진 사람들의 국제보건 개발협력에서의 실상은 회계감사를 위한 영수 증빙처리를 잘 모으는지 눈알 빠지게 엑셀 보고 또 보고 지렁이 글씨 낭자한 영수증 보고 또 보고의 연속이다.


현장 모니터링도 있지만 사업의 이해도가 있는 현지 국가의 매니저와 디렉터가 현장 방문 및 직원 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파견된 외국인 매니저는 사무실에서 회의와 보고서 업무를 주관하며 그런 내용들을 확인하고 전달받고 한국어나 영어로 정리하는 일들을 한다. 결국, 한국 원조기구(돈 준 사람/기관)에 보고 해야 할 일들이니 말이다.


그나마 현장에 있으면서 활력 있게 움직이며 매니징 할 수 있는 업무를 코로나로 파견을 못해 한국 사무실에서 채팅으로, 때론 지지직거리는 인터넷 통화 연결로 하려니 ‘이러려고 이 일을 했나..’ 싶은 생각이 출퇴근길 혹은 근무 도중 문득문득 떠오른다.


또 다른 현실

그럼 왜 안 그만두고 하냐.

당장 돈 벌어야 한다는 변명과 함께 따라오는 것은 “묘하게 재밌다.”


좀 전까지 자괴감 든다며 이게 뭔 소리냐, 재밌다니 웬 앞 뒤 안 맞는 소린가.

모순된 말이지만 그렇다. 직업적 딜레마에 빠진 순간이 바로 저 지점이다. 상상만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일이 아닌데 예상한 것보다 재밌다.


영수증 처리나 자질구레한 행정 일은 봉사단 때나 연구 때나 다 했던 거라 '굳이 이런 걸해?' 하는 반감도 없고(회계일은 재정이 얼마나 나갔는지 봐야 사업이 얼마나 굴러가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주로 하는 페이퍼 작업들, 제안서 번역, 보고서 번역, 현지 직원들과의 소통 등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포함되는 일들이고 중요한 성과지표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어려움이 있지만 해내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추후 어떤 직무에 가더라도 연결되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 되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다. 한국적인 행정을 이해시키고 사업의 본질적 의미를 확인하면서 내가 모르는 현지의 관습과 체계를 배우고 절충안을 찾는 일은 현장에 없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위의 일들은 처음 바랐던 의료인으로서의 기술을 사용하고 한국식 행정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지만 기존에 바란 의미 있는 일과 다른 문화권과 소통하는 재미, 두 가지가 확보되니 할 만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최근, 해피빈을 통해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모인 기부액을 현지의 코로나 19 방역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기부자들의 응원 댓글을 전달하고 싶어 모자란 실력이지만 최대한 느낌을 살려 번역을 해서 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직원은 병원의 관계자들과 직원들에게 한국에서 온 모금 소식과 개인 기부자들의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힘든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길 들려주었다.

나에게는 그냥 출근해서 하던 일 중 하나였는데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곳에서는 하나의 힘이 되었다. 그냥 전달만 한 것이고, 기부를 한 것도 아니고, 현장에 파견되어 방역을 도운 것도 아닌데 도움이 되는 일을 했구나, 할 때면 마약같이 끊을 수 없는 국제개발이라는 일에 빠져든다. 


덧, "요즘 일이 많아서 힘든 것 같아."라고 남편에게 푸념을 하자, "네가 꽤 신나게 일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 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 보건연구원을 할 때도 복잡하고 어려운 통계와 논문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며 "이 길 내 길?" 하는 잡스런 고민은 늘 있어왔는데 지금 하는 일이 연구보다는 덜 어렵고, 서류작성 많은 건 매일 대학원 과제를 하다 보니 발로 쓰는 것에 죄책감이 덜해져 빠른 일처리를 하다 보니 능률이 올랐다고 착각하는 마음에, 일이 쉬운데 보람도 느껴져서 그렇게 보이나 보다.

NGO 비자가 나온 공문을 받았을 때 나의 직장이 어딘지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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