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W; 투머치 워커가 되는 길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내가 방글라데시 PM(프로젝트 매니저)인지 몽골 PO(프로젝트 오피서)인지 모르겠다.
이 모든 원흉의 근원은 나에게 있지만 점점 과부하가 걸리면서 내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게 됐다.
때는 6월 초, 코로나로 인해 원격으로 서울에서 일한 지 5개월 차에 기관의 대구 코로나19 지원사업이 일단락되면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매년 코이카 민관협력사업 신청을 8월경에 하는데 내년도 제안서를 내기 위해 수요가 있는 지부들 중에 하나로 몽골이 낙점되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 19로 인한 개발도상국 긴급지원 공모까지 나오면서 타 NGO기관에서 컨소시엄(협력사업) 요청이 왔고, 일주일 만에 3억짜리 제안서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 쓰나미 같은 재해 속에서 튜브 타고 둥둥 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기관에서 몽골 지부는 아주 오래된 지부장님이 개인적인 후원으로 의료사역을 하고 있는 곳이다.
* 선교사가 왜 NGO의 지부장이냐는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한 배경 설명은 아래와 같다.
국제개발협력의 근간은 선교사역이다. 선교사들이 본인의 고향에서 낙후된 국가나 지역에서 학교, 병원, 교회를 설립하고 지역민의 자립과 구제를 위해 활동하던 배경이 지금의 개발협력으로 넘어온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에 간다 하면 봉사나 선교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국제기구, 국가기관에서 공무 신분 자격으로 파견 가는 것이 아닌 이상, 대개는 사업과 선교로 해당 국가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단순 사업은 돈이 안되면 언제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현장과 깊은 유대감을 가진 연결고리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 최근까지 소록도나 선교병원에서 평생을 일하다 한국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선교사의 현지 유대감은 다른 그룹보다 강하다. 해서, 대부분의 NGO들이 이들을 뿌리로 두고 사단법인을 신청해서 정부 사업비나 후원금을 받아서 운영된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단체들이 한국에선 주류 NGO를 이루고 있어 이쪽으로 관심은 있으나 종교성이 싫다 하여 다른 길로 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결론적으로 자선사업과 개발협력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배경의 현장 연결고리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아직 한국에서 개발협력이나 사회복지를 논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와 ‘돈은 누가 줘?’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돈은 사업비에서 나오고, 좋은 일이지만 돈을 받으려면 “합리적이고 비용효과적”인 일이 되어야만 한다.
애석하게도 사업 지부(개도국)마다 계시는 분들이 대개 내 부모님 연배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으로서의 구성보단 ‘좋은 일’과 ‘돈 안 되는 일이니 일단 현지 사람들이 해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수요조사를 하시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리고 그런 수요조사를 독수리타법으로라도 문서를 작성해서 요청한 서류를 밤을 새워서라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며 몽골이 이에 속했다.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는 어르신들의 말씀 속엔 그 밑에서 수고하는 청년들이 있기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나도 잘못했다.
그냥 내 업무는 그게 아니니 안 하고 싶다, 더군다나 나도 인터넷이 잘 안 되는 현지 직원들과 서류업무 해치울라치면 시간이 배로 드는데 기본 문서 작업을 하기 어렵다며 토스하신 분의 원거리 수발은 못하겠다고 단호히 자르면 될 것을 괜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린 것이다.
인턴 모집에만 40명이 넘게 몰리고 그나마도 취업이 되어도 복사나 스캔 업무 같은 잡무만 하는 시국에 나 같은 경단녀가 짧은 기간에 이토록 다채로운 경험을 쌓는다면 향후 사업지에서 홀로 제안서를 쓸 때 덜 괴롭지 않을까. 동시에 다른 나라는 제안서를 쓰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기회라고 생각했다.
6월 초의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때론 내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키는데 지금이 딱 그 꼴이다. 정신을 좀 차리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항거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