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오후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노랫말이다. 응답하라 1988의 OST '걱정 말아요 그대'
베란다 화초 사이로 햇살이 빛 내림처럼 쏟아진다. 햇살을 받은 잎이 오묘한 색으로 인사하는 아침이다. 특별히 계획된 일은 없지만 핸드폰 달력의 일정을 보고 또 본다. 뭔가 일정을 만들 요량으로 궁리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퇴직 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부서 직원이다. 정부 훈장이 나왔다며 과장과 직원 몇 명이 전달하러 오후에 찾아오겠단다.
오후 3시경 집 앞 카페에서 만났다. 퇴직 후 처음 만나는 자리라 나름 깔끔한 옷에 얼마 전 아내가 선물한 색스런 머플러를 하고 나갔다. 커피숍엔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만석이다. 은퇴 전엔 카페의 이런 풍경이 낯설었다. 적응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젠 익숙하다. 먼저 온 직원들 덕에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전화를 했던 여직원은 가을에 결혼을 한단다. 그 상대는 함께 근무했던 김주무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수줍게 말을 꺼내는 표정이 귀엽다.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서로 근황을 주고받다 보니 아직 현직에 있는 듯 순간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들이 전하는 조직문화가 이젠 낯설다. 결혼한다는 직원보다 어린 나이에 시작했었는데 은퇴까지 참 긴 시간을 보냈다. 몸에 익숙한 문화가 낯설게 느껴지니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가 보다.
직원들이 '나중에 연락 주세요. 밥은 저희가 살 테니 가끔 식사하시죠?' 하며 인사를 건넨다. 인사치레라는 걸 알면서도 들으니 기분은 좋다. '아니 불러주면 감사하지만 바쁘신 분들은 일을 하셔야지. 업무도 바쁠 텐데 어서들 들어가셔요.'
후배들은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건강 잘 챙겨가며 일하세요'라고 끝인사를 했다.
현직에 있을 때 나도 퇴직한 선배님들께 그런 인사를 많이 했다. 그땐 그래도 선배와 인연을 이어갈 거라 생각했다. 식사도 가끔 하며 퇴직 후의 변화를 듣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공수표가 됐다. 우연히 거리에서 선배를 만날 때면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오늘 선배님들께 내가 했던 인사를 후배에게 들었다.
돌려받은 인사!
선배님들! 지난 시간 그때는 진심이었습니다. 후배님들! 앞으로 만나게 되더라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