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에 떠난 수학여행
붉은 노을이 세상을 덮었다. 해를 마주하기엔 눈이 부셔 노을에 물든 바다를 본다. 물 위로 길게 드리운 해는 쳐다볼 수 없도록 밝았던 자신의 빛을 조금씩 낮추고 있다. 수면에 닿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간에 무심히 기대선, 노을빛에 붉게 물든 친구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노을을 닮은 친구 얼굴이 웃는다. 여드름 난 얼굴은 추억이고 희끗한 머리의 육십은 현재다.
사내 셋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퇴직한 둘은 시간이 있고 건설업 하는 친구는 겨울철이 비수기라 함께하는 여행은 이때가 적기다. 차를 마시다 '이참에 한 번 가볼까?' 툭 던진 한 마디에 여기 노을 지는 바다 보령까지 왔다.
퇴직으로 시간이 헐렁한 참에 좋은 명분이다 싶어 얼른 아내에게 고하니 모처럼 친구들과의 여행이니 잘 다녀오란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들러 공화춘 짜장면을 먹고 자유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 했으니 차 안에서 어디로 갈까 검색한다.
잠잘 곳을 보령쯤으로 정하고 인근 천북굴단지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동하는데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숙소를 정하고 다녔다.
셋이 함께하는 여행인데 욕심이 없다. '여기 가볼까?' 하면 '그래 가보자'한다.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닳아진 몽돌처럼 둥글둥글하다. 몽돌 사이를 오가는 파도처럼 유연하다. 하루만 지나면 잠자는 위치도, 씻는 순서도 정해진다. 물 흐르듯 여행에 필요한 룰이 만들어진다.
올해는 유난히 서해 쪽에 눈이 많이 왔다. 쌓인 눈 위로 보슬비가 가만히 내린다. 늦은 시간 담양에 도착해 입장 마감 직전인 죽녹원을 잰걸음으로 돌아봤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8시경. 호텔 내부 주차장이 만 차라 외부에 주차를 했다.
짐을 간단히 풀고, 간식을 사려고 인근 슈퍼를 찾는데 없다. 4백 미터 넘게 떨어진 곳의 마트까지 걸어갔는데 친구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호텔 사장님이다. '어디 계세요?' 황급히 묻는다. 마트라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이 마트로 들어왔다. '차 세워두신 곳은 고드름이 떨어지는 곳이라 차 망가져요. 키 주시면 제가 옮겨 놓을게요'한다. '아니 이렇게 비도 오는데 이 먼 데를 오셨어요? 전화만 주셔도 되는데' 했더니 키를 달란다. 키를 받고 얼른 달려간다.
간식을 사고 부지런히 호텔에 오니 차를 이동시켜 놨다. 주차했던 건물 벽을 보니 야구방망이 만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아찔했다. 여행을 더 기쁘게 하는 사장님의 친절에 감동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을 나서며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번 여행은 유명 관광지 말고 잘 들르지 않는 곳을 찾아가 보려 했다. 딱히 정한 곳도 없었지만 이왕이면 새롭고 의미 있는 장소를 찾으려 했다. 그중 모두가 동의한 곳이 광주다. 동시대를 살았으면서 아픔을 함께하지 못했던 그곳.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도 살포시 내려앉은 오후, 국립 518 민주묘지에 들렀다. 오전에 행사가 있어 남았는지 입구에 국화가 담겨있다. 한 송이씩 손에 들고 걸었다. 비에 젖은 신발이 걸음을 더디게 무겁게 한다. 시대의 빚진 자로 너무 늦게 찾은 송구함, 감사함, 미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헌화했다.
사내 셋 중 하나는 호기심 많은 친구다. 낯선 사람에게 묻는데 주저함이 없다. 가격 흥정도 잘한다. 중국어를 잘해 충칭 갔을 땐 이 친구 덕에 가이드 없이 다녔다. 타인을 더 배려하는 넉넉한 친구다. 다른 사내는 말은 적지만 세상을 보는 식견이 남다르다. 역사 이야기도 많이 알아 가끔 우리가 같은 시기에 공부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 여러 직업을 경험하며 변화에 잘 적응해 온 친구는 지금 건축 일을 하는 회사 사장이다.
직장 생활과 아이들 성장하는 동안 우린 각자의 생활에 집중했다. 소원한 듯 지냈지만 다시 만나면 이내 어린 시절 우리로 인식된다. 학창 시절, 군대, 연애... 함께 한 시간의 추억을 밤새 떠들어댄다. 사내 하나는 마흔 살 되던 해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단다. 이유는 주변을 보니 자신이 학력, 인맥, 돈에서도 자랑할 게 없더란다.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싶었고 그 무기가 중국어였다. 한참 중국어가 재미있을 때는 주말이나 연휴만 되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런 열정 덕에 중국여행 가이드가 되었고, 올 연말엔 중국으로 선교를 나간단다. 잘 알고 있는 듯해도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열심히 산 그의 이야기에 도전받는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의 유래가 된 안규홍 의병장 동상이 있는 벌교에서 먹은 꼬막, 여수 뒷골목 홍어집, 남해 나로우주센터, 화개 장터의 재첩국, 부여 낙화암과 고란사를 돌아 4박 5일의 서해안 여정을 마쳤다.
결론도, 정답도 없이 나눴던 이야기.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의 삶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의 역할에 집중하느라 연결되지 않았던 우리 추억의 퍼즐이 맞춰진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선 벌써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야! 다음엔 동해안으로 가보자!' 머리에 흰 눈 내린 아저씨 마음에 설렘이 인다.
'잘 다녀왔어요?' '선물은 없어?' '하여간 남자들끼리 가면 이렇다니까!' 하며 아내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