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먼저 전화하는 울 딸

by 박철화

울 딸들의 통화는 훅 들어온다. 출근길에 커피와 빵을 사가지고 공원을 지나면서 아침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예상 못 한 시간에 전화해 '아빠! 지금 뭐 하고 있어?' 묻는다. 마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보고 있는 듯. 때론 감시당하는 느낌도 있다. 저녁 시간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있다. 애써 하루의 고단함을 감추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하루의 생활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어떤 반응이 울 딸들에게 힘이 될까를 고민하면서 말하진 않는다. 그저 늘 비슷한 반응을 한다. '뭐 하긴 엄마랑 운동 다녀왔지.' '밥 먹고 있다. 너는 밥 먹었어?' '집에 까진 어떻게 가니?' '오늘 하루도 수고했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쉬어라' '사랑한다 울 딸!'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의 대화지만 울 딸들은 힘이 되나 보다.


그런 울 딸들이 나를 빼놓고 엄마랑만 소통할 때가 있다. 딸과 아내의 대화는 항상 풍성하다. 오늘 먹은 음식, 요리 레시피, 분위기 좋은 카페, 맘에 드는 옷, 가끔은 내가 한 말이나 행동까지. 그들의 웃음소리가 따뜻한 공기처럼 집안을 채운다. 그 소리는 내 귀를 간지럽히고, 동시에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시선은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지만 온몸의 세포는 아내와 통화하는 딸의 목소리에 가있다.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니라 녀석이 잘 지내고 있는지 기분을 살핀다. 내 안부를 안 묻고 통화가 종료될 땐 아내에게 '뭔 일 있어?' 물으면서도 왠지 아쉽다.


어제는 둘째 슬이가 전화를 했다. 낮 12시가 좀 지났다. 다짜고짜 '아빠! 엄마 뭐 해?' 내게 전화해 엄마를 묻는다. '엄마는 회사에 있지' '아~ 그래' '왜?' '아니 그냥~ 알았어'하며 끊으려고 한다. 장난기가 발동을 한다. '너 엄마가 전화 안 받으니까 아빠한테 한 거지 너?' 'ㅎㅎㅎㅎ~ 겸사겸사'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마지못해 '아빠~ 내가 사진 하나 보낼 테니까 보고 전화해 줘?' 한다. 보내온 사진은 의류매장에서 찍은 검은색 남성 재킷이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의류매장에 들른 것이다. 그런데 전화는 엄마에게 했다. 엄마 안목을 더 믿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 내게 깜짝 선물을 하려고 했음도 안다. 슬이한테 전화를 하니 통화 중이다. 잠시 뒤에 카톡이 왔다. '엄마가 아빠 안 입으실 거라고 반환하라고 했음'. 뭐야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은 거야. 그럼 왜 물어봤어하고 싶었다. 사실 행복한 투정이란 걸 안다. 아빠에게 선물해 주고픈 울 딸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그 맘을 알기에 사지 말라는 표현을 어찌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나를 잘 아는 아내가 고민을 해결했다.


울 딸은 이제 갓 수습을 벗어난 새내기 직장인이다. 저녁이면 풀 죽은 목소리로 퇴근하는 중이란다. 판교에서 수원까지는 버스를 타고 간다. 중간에 환승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1:40분이나 걸리는 거리다. 겨울을 앞두고 걱정했다. 환승하는 정류장에서 30분 이상을 추위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습 기간을 끝내면서 용인의 전철역 근처로 이사를 했다. 월세는 좀 더 올랐지만 출퇴근 시간이 40분대로 줄었다. 더 춥기 전에 좀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해서 다행이다.


저녁에 아내가 설거지하는 중에 슬이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 내 폰은 아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던 아내는 전화받아서 스피커폰으로 눌러달란다. 통화 내용이 내 귀에도 들린다. 별 이야기가 없다. 나도 불쑥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 스피커폰 통화 괜찮네. 관객석에서 무대에 오른 느낌이다. 가끔은 나도 무대에 오르게 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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