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돼보니 아내가 보인다!

by 박철화

햇살이 거실 입구까지 밀고 들어왔지만 바깥 기온은 영하다. 환기를 시킬 겸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거실의 매트도 걷고, 주방창문까지 여니 찬 공기가 금세 온 집안을 시원하게 바꾼다. 진공청소기를 끌고 거실부터 이방 저 방을 휩쓸었다. 청소기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내친김에 음식쓰레기까지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플라스틱, 비닐, 병, 건전지, 종이박스를 각자의 자리에 넣었다. 가끔 분리수거하고 담배 피우는 분들과 마주칠 때도 있다. 딱히 말을 건네기 어색해 눈인사만 하고 이내 집으로 향한다.


청소를 하고 나니 집안 공기가 다르다. 깨끗한 거실은 커피 한 잔 마시고 싶게 한다. 핸드폰 라디오 앱으로 음악방송을 틀어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커피 향이 좋다. 잔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청소하며 차가워진 손을 데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오늘따라 더욱 잘 들린다. 연애 감정을 담은 노랫말이 추억을 돋게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저녁과 휴일을 밖에서 보냈다. 직장 동료, 때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 여겼고 사회도 그 분위기를 부추겼다. 갑자기 잡히는 회식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만 신경 썼다. 그런 스케줄로 저녁을 보낼 때도 아내는 당연히 밥을 먹었겠지 했다. 그렇게만 인식하고 지내왔다.


아내가 퇴직한 지 1년 반 만에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출근하니 이제 내가 혼자가 되었다. 은퇴 후 1년여 함께 걷고 차 마시면서, 차박용 차가 나오면 이리저리 여행 다닐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나름 은퇴해도 괜찮네 했다.


아내는 은퇴 후 일 없이,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당신은 여행하며 글 쓰면 되는데 나는 뭐 하지?' 본질적 고민을 한다. 사실 나도 같은 고민을 하는 중이다. 이것저것 아내의 달란트 살리는 제안을 던져 보지만 본인이 손에 잡히지 않는단다. 그러던 중 아내가 좋아하는 배움의 즐거움도 있고 보수도 따르는 일의 제안이 왔고 요즘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아내가 일을 하면서 나는 홀로 서기에 도전하고 있다. 늘 함께 마시던 커피도, 산책하던 일도, 여행 준비도 혼자다. 같은 시기에 은퇴한 친구들 중 아내가 직장 생활하는 친구는 이전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무료하다고 했다. 그 말이 이제 이해된다.


지난주, 아내가 출근하면서 오늘 점심은 함께 먹자고 해서 기다렸는데 1시 반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배가 슬슬 고파올 때쯤 문자를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겨 직원들과 점심 먹었고 좀 늦을 거란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했다. 며칠 뒤엔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질 않아 전화하니 받지도 않는다. 순간 욱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이 마무리 안돼 늦게 퇴근했고 내가 전화할 땐 차를 주차 중이라 받을 수 없었단다. 듣고 나면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욱한 감정을 입으로 뱉지 않고 용케 잘 참았다.


오늘 내 안의 요동치는 감정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견딘 아내를 보게 됐다. 젊은 혈기로 천둥에 개 뛰듯 밤을 낮 삼아 다니던 남편이 수시로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올 때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이를 먹어서야 알게 되니, 그것도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깨닫게 되니 참 아직도 멀었다. 순간 욱했던 마음을 들키진 않았는지, 아내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내는 퇴근해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집사람 뭐하슈?'한다. '아유 바깥사람 수고하셨네! 뭐 하긴 뭐해 집안일 하고 있지!'.


집사람이 돼보니 젊은 시절의 아내가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수증 편지! 받아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