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화 Jul 05. 2024

달팽이님!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싱그런 아침 공기에 발걸음이 가볍다. 강가 산책 길을 따라 걷는다. 양떼구름과 파란 하늘이 예쁘다.

무심히 앞만 보고 걷다 바닥의 뭔가에 시선이 닿는다. 달팽이다. 이 길은 몇 년 전 콘크리트로 포장한 산책로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올라탔으니 긴 두 눈이 좌우로 바쁘다. 익숙한 풀숲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달팽이는 경로를 이탈했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느린 걸음을 아니 최대한 빨리 앞으로만 가고 있다. 이 길은 사람, 자전거, 강아지, 지렁이, 달팽이도 함께 사용하는 혼용 도로다. 속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이제 3분의 1 지점을 지나고 있으니 내 발걸음이 멈춘다. 녀석도 내 진동을 느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하다. 이대로는 위험한데.


달팽이는 자연 생태계의 순환 자다. 배설물까지 다른 동식물의 성장을 돕는 비료로 쓰인다는 귀한 녀석이다. 가만히 달팽이 껍데기 쪽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달팽이 껍데기를 잡았다. 최대한 힘을 뺐다. 녀석의 떨림을 기대했는데 아무 느낌도 없이 담담하다. 길에서 몇 걸음 떨어진 풀숲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한동안 꿈쩍 않고 경계하더니 길게 뻗은 눈을 조금씩 껌뻑이며 주위를 살핀다. 안전을 확인했는지 기지개 켜듯 몸을 길게 뻗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길 바라며, 나도 걸음을 재촉한다.


'혹시 그 달팽이 길 건너 님 만나러 가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반대쪽에 데려다준 건 아닌가?' 한참을 지나 아내 장꾸가 한 말이다. 달팽이 생각을 묻지 않은 건 맞다. 콘크리트 열기와 그 길을 이용하는 어마 무시한 크기의 발걸음에서 구했다는 건 내 명분일 뿐. 달팽이에겐 기를 쓰고 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놈이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려놓는 황당한 일 일 수도 있었겠다.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하지?



작가의 이전글 밀당의 고수! 울릉도와 독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