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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화 Jul 01. 2024

밀당의 고수! 울릉도와 독도!

아내는 며칠 전부터 ‘이번에는 다를 거야. 즐거운 여행이 될 거야’를 되뇌고 있다.


오랜 친구들과 부부동반 여행 장소로 울릉도를 가자고 의견이 모아진 1월부터 아내는 긴장했다. 결혼 전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연수로 떠난 곳이 울릉도였다. 나이 지긋한 상사들과 함께한 새내기의 긴장은 울릉도로 향하는 배를 타면서부터 심해졌다. 파도가 심한 바다를 3시간 이상 배 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죽다 살아난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된 울릉도 여행을 피하고 싶어 했다. 빠질 수 없어 동행하지만 두려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내는 여행 중 내가 입을 옷 몇 벌을 가방에 담는다. 옷 입는 감각이 없는 나를 위한 배려다.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서다 여러 번 아내와 딸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입고 나갈 생각을 했냐며 제지를 당할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코디해 주는 옷에 딱히 반박을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결혼 전 후 사진을 비교해 본 후론 내 주장을 접었다.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를 인정하고 이젠 권하는 대로 입는다.


아침 식사는 강릉항여객터미널 주변 식당에서 먹었다. 주차장은 벌써 가득 찼다. 터미널과 가까운 항구 쪽에 마침 한 자리가 있어 얼른 주차를 하고 자리를 이동하려는데, 주차된 차 사이에 의자를 놓고 낚시하던 분이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차를 바닷가 주차라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하는 게 좋을 거예요’라며 주말이라 낚시꾼이 많을 거고 무거운 낚시 추에 차 유리가 종종 깨지는 일이 있다고 알려 준다.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감할 뻔했다. 이내 차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감사하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흐린 날이다.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파도는 0.2m. 8시에 강릉항을 출발했다. 멀미를 하지 않으려고 약을 마시고 붙이기까지 했다. 좌석은 1층 중간 자리, 짐 넣는 공간 바로 앞이다. 짐칸에는 크기도 다양한 형형색색의 캐리어, 야영객들의 커다란 배낭과 텐트까지 방랑자들의 여행 습관이 묻어있다. 설렘과 기대가 담겨있다.


'지금 현재 동해상에 너울성파도로 인해 선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이동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에 잠잠했던 속이 꾸물댄다. 3시간 15분 만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고깃배들이 항구를 채우고 있다. 자동차 위에 태연히 앉아 있는 갈매기가 낯설다. 항구 주변 산기슭에 자리한 낮은 가옥들이 정겹다. 여행사 푯말 든 가이드 몸짓을 따라 주차장을 가득 채운 소형버스에 모두가 홀린 듯 타고 있다.


도동항.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으로 울릉도산 나물이 가득 담긴 비빔밥을 먹었다. 울릉도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9번째 큰 섬이다. 섬 주변에 삼선암, 딴 바위, 코끼리바위, 북저바위  크고 작은 암도를 포함한 44개의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태고의 신비로움이 보존되고 있는 울릉도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울릉도 내 유일한 평지에 속하는 나리분지에 들렀다. 화산 폭발 때 중앙의 분화구가 함몰되어 형성된 칼데라 분지다. 분지 중앙 넓은 풀밭에 야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슬비와 안개가 어우러져 알프스 산 자락 어딘가 하는 착각이 든다. 멋지다. 스치듯 지나온 것이 못내 아쉽다.


독도 가기로 한 아침은 부산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한 독도 방문. 07:20분 도동항을 출발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젊은 시절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던 피날레 곡이다. 젊음의 패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태극기 머리띠를 하니 출발부터 가슴이 벅차온다. 독도는 동도, 서도를 비롯한 89개의 부속섬으로 이뤄졌다.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고 60도가 넘는 벼랑으로 그 아찔한 기세가 절개를 자아낸다. 서도는 동도 보다 조금 큰 섬이다. 주민 숙소가 있는 하나의 커다란 봉우리로 경사가 가파르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또 독도의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며 사셨던 최초의 독도 주민 최종덕 씨의 삶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아쉽다. 파도가 심해 독도에 배를 댈 수가 없다. 아내는 독도가 눈에 보일 때부터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 노래를 들으며 벅찬 가슴으로 첫 발을 딛고 싶어 했다.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그땐 그 꿈을 이룰 수 있길 가슴 한편에 소망으로 남겨둔다. 독도를 배로 돌아봤다. 영상으로 대하던 독도의 느낌과 다르다. 멀미 염려도 잊었다. 마음 깊은 곳부터 뜨거움이 올라온다. 자연스레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흔들리는 와중에도 손으론 난간을 부여잡고 손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다. 인생 사진을 향한 몸부림이 누구랄 것도 없이 배 위에 가득하다. 독도를 밟지는 못했지만 전체를 있어 좋았다.

접안 못한 아쉬움을 사진으로 달래 본다. 독도!


저녁을 일찍 먹고 도동항 해안 산책에 나섰다. 일행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려 위치를 잡고, 지나는 중년 남자분에게 부탁을 했다. 흔쾌히 찍어주신다. '그냥 찍어요?' 하길래 우리는 '네 찍어주세요'했다. '웃지도 않는디?'라며 천연덕스럽게 툭 내뱉는다. 그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구수한 충청도 억양의 한 마디가 모두를 유쾌하게 만든다.


울릉도를 떠나는 배는 오후 1시 출발예정이다. 멀미약을 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에 앉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동해상에 너울성 파도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고, 4시간 정도 기다려보고 어려우면 출항을 못한단다. 헐~ 하루를 더 있어야 한다고. 숙소는 있으려나, 내일 식당을 열어야 하는 친구도 있는데 갑자기 복잡해진다. 보기에는 화창한 같은데...


경상북도에서 재난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부터 천둥, 번개, 우박을 동반한 시간당 10~20mm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으니 안전사고에 유의하란다. 바다 날씨는 수가 없다. 모두가 답답한 마음과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좁은 선내를 오가며 시간을 견디고 있다. 2시간 30분 이상 지난 뒤에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모두가 박수로 화답한다. 출항을 위해 로프를 정리하는 승무원이 멋져 보인다.


저동항을 벗어날 때 부딪치는 높은 파도에 배가 크게 흔들린다. 아니 일렁이는 파도에 섬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육지가 요동친다. 요동치는 육지를 처음 봤다. 이대로 강릉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항구를 벗어나 10여분 지나니 파도를 비껴가는지 큰 요동은 없다. 이내 안정을 찾고 무사히 강릉에 도착했다.


차 유리도 멀쩡하다. 출발할 때 만났던 낚시하던 아저씨, 위트 있는 유머로 큰 웃음을 주신 충청도 아저씨, 울릉도를 처음 가본다는 친구를 위해 기꺼이 세 번째 방문을 감수한 넉넉한 친구, 이들로 인해 여행의 맛이 깊어졌다. 뱃멀미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아내가 울릉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된 것은 선물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린 다음 여행지를 정했다. 떠나기 전 준비시간의 감칠맛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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