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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화 Jun 25. 2024

오디의 달콤함과 다시 오자는 기대

한참 뜨거운 시간에 나왔다. 3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땀이 송골 맺힌다. 집에서 나올 때 날씨를 가늠 못하고 얇은 겉옷까지 들고 나왔다. 가려던 카페까지는 40분을 더 가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딱히 약속도 없었던 터라 포기도 쉽다. 갈 때와 다른 길로 걷는다. 도로의 열기가 슬슬 한 여름을 준비한다. 


소양중학교 담장에 장미꽃이 한창이다. 꽃에 눈이 간다. 나이 들면 꽃이 좋아진다는데 그런가 보다. 장미나무 옆 뽕나무에 오디가 장미꽃처럼 빨갛게 달렸다. 검게 익은 녀석도 있다. 벌써 오디가 익다니. 불현듯 지난해 오디를 땄던 그곳이 생각났다. 아~ 오디 따러 가야겠다.


아내에게 오디 소식을 전했다. 눈이 커지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내일 아침! 오케이? 오케이!    


눈뜨자마자 집을 나섰다. 오전 6시 30분. 우리의 목적지는 호수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 가장자리에 있는 뽕나무. 걸음이 빨라진다. 강가를 따라 30분 정도를 걸어 도착했다. 5~6m 정도 크기의 뽕나무가 반긴다. 탐스럽게 매달린 영롱한 보석이 심박수를 높인다. 입에 침이 고인다. 바닥에는 익어 떨어진 오디가 무리 지어 나뒹굴고 있다. 


아침 햇살이 녹색 뽕잎 사이를 뚫고 오디를 비춘다. 예쁘다. 명품을 돋보이게 하는 조명도 여기에 비할 수 없다. 잘 익어 통통한 오디는 매력적인 검은색이다. 오디 한 개를 입에 넣었다. 달콤함이 입안에서 터지니 절로 미소가 번진다. 싱그러움이 나를 채운다. 어려서 먹던 그 맛이다. 옛날 맛!. 마트에서 파는 오디를 이 맛에 비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핸드폰 카메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아래, 위, 옆, 햇살을 피해도 보고, 아무리 낑낑 대봐도 눈으로 보이는 장면을 담을 수 없다. '아니 오디는 언제 딸 거야?' 아내가 동참하란다. 벌써 준비해 온 봉투의 바닥을 채웠다. 그래 오디 따려고 왔지. 아쉬움을 오디 한 움큼과 함께 뱃속으로 욱여넣고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나무에 달린 녀석들은 아직 익은 게 많지 않다. 사람 손길 닿지 않았던 시간에 떨어진 녀석들만 주워도 충분하다. 허리 숙여 나름 열심히 주웠다지만 아내의 민첩하고 우아한 손놀림을 이길 수는 없다. 적당히 됐다 싶을 만큼 채웠다. 손가락과 입술의 진한 얼룩은 오디에게 받은 훈장이요, 잘 보낸 아침의 상징이다. 


고요히 흐르는 북한강. 경쾌한 리듬의 맑은 새소리. 아무 대가 없이 주는 뽕나무의 귀한 선물로 아침이 기쁘고 감사하다.


아내는 내일 다시 오잔다. 작년에도 다시 오진 못했다. 내년에나 오겠지.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날 때는 다시 온다는 기대라도 있어야 발걸음을 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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