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강릉행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일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아내와 떠나는 캠핑이다.
아침은 구수한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짐을 꺼내 차에 실었다. 아파트 9층을 서너 번 오르내렸다. 텐트, 타프, 테이블, 전기선, 침낭, 코펠과 아내가 언제든 나설 수 있게 싸놨던 간이 피크닉 세트까지 싣고 나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한 해를 묵혀 바짝 마른 장작과 화로 대는 불 멍을 기대하는 마음에 가볍다. 승용차 트렁크가 모자라 뒷좌석까지 신세를 진다.
집을 떠나 2~3분쯤. 아내가 외친다. '아차 참외 안 가져왔다'. 이 정도 거리쯤이야 되돌아가야지. 부리나케 돌려 참외를 싣고 달리는데 '아차 삼겹살'한다. 돌아가긴 멀다. 이젠 그냥 가야 한다. 그리고 위안한다. '먹을 게 많아서 굳이 삼겹살 없어도 돼'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참 좋다. 시원하고 여행지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휴게소는 그중 백미다. 점심으로 순두부백반을 시켰는데 칼칼한 게 기대 이상이다. 커피와 호두과자도 잘 어울린다.
입장 시간이 좀 지난 3시 30분경에 오대산 소금강산야영장에 도착했다. 자리를 확인하는데 위치가 바뀌었다. 블로그에서 본 자리와 다른 자리를 안내받았다. 공단에서 금년에 수리하면서 사이트 번호를 정비했단다. 그런데 대박이다. 바닥이 흙이 아닌 덱이다. 그것도 이전 2개의 영지를 하나로 합쳤으니 공간도 넓다.
텐트 위로 직사각형 타프를 치는데 매듭이 생각 안 난다. 아내에게 능숙함을 뽐내려다 삐질 대는 땀만 보였다. 작년에 영상으로 배웠던 매듭 법을 7개월 동안 방치했으니 당연하다. 급히 유튜브로 매듭 동영상을 커닝하고 다시 조여 맨다. 그리 애써 완성을 했는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강풍이 불 거란 예보가 있었지만 설마 여긴 아니겠지 했는데 맞나 보다. 바람에 타프가 크게 펄럭인다. 타프를 고정시킨 팩이 뽑혀 나갈 것 같아 철거했다. 그나마 텐트는 원형이라 주위 나무를 이용해 고정시키니 바람을 견딜 만하다. 바람은 세차게 고요하게를 반복한다. 나뭇잎도 리듬에 따라 함께 춤춘다.
연녹색 잎이 하늘을 덮고 새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소금강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이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도 하고, 백색소음으로 숙면을 취하게도 한다. '구구 구구'하는 산비둘기 소리가 숲 속 깊은 곳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고 나는 바람에 견디도록 큰 돌을 주워다 텐트를 다시 고정시킨다.
싸 온 아귀찜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바람이 잦아들었다. 화로 대를 꺼내 그동안 오늘을 위해 바싹 말려둔 장작으로 불 멍을 시작했다. 불이 타오를 때 느끼는 묘한 설렘이 있다. 나무 타는 냄새가 좋다. 연기가 눈을 맵게 해도 즐겁다. 출렁이는 불길은 쌓인 시름을 잊게 한다. 고구마도 포일에 싸 불속에 넣었다. 언제 꺼내야 하는지는 감으로 안다. 때론 숯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엄마 아빠 사이좋게 지내시는 게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에요. 그래서 우린 우리 앞길만 챙기면 되잖아요.' 하는 울 딸들. 사진을 찍어 딸들에게 보내니 멋있다는 말은 짧고, 춥지 않게 단단히 하고 주무시라고 성화다. 어느새 커서 우릴 걱정한다. 아이들의 잔소리가 오히려 대견하고 옷을 걸치지 않아도 따뜻하다.
주위에 중년의 부부가 대부분이다. 모두 조용하다. 여름철 바닷가의 소란스러운 풍경을 여기선 볼 수 없다. 이웃 텐트에서는 은은한 불빛 아래 부부가 조용히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서로 예의를 지킨다.
아침 햇살이 잠을 깨워 나와 보니 바람도 잦아들었다. 전날 걷었던 타프를 다시 쳤다. 숲 속 야영장이 주는 여유, 싱그러움, 무엇을 먹어도 다 최고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큰딸 림이가 캠핑 가서 마시라고 선물한 커피를 마신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이 기가 막히다. 울 딸 사랑의 향이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게 만든 참외도 아삭한 게 달고 맛있다.
바람에 긴 머리카락 날리듯 나뭇가지가 살랑인다. 아내는 목공 작업하는 유튜브를 시청하고, 난 그저 한들거리는 바람에 가만히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이 시간.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도 잠시. 낯선 이 시간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