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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May 15. 2018

이탈리아 8시간

로마 스탑오버 여행기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식탁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8시간, 유럽여행이 초행이고 와이파이며 한낱 유로도 없는 우리에게 비행기는 로마에서 단 8시간을 경유시간으로 주었습니다. 저는 사실 오기 전부터 경유로 로마를 들르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꿈꾸고 있었지만, 정작 그때 가서 생각하자 해두고 그때가 와버렸습니다. 

 일단 피우미치노 공항에 내려서 로마 시내로 나간다면 떼르미니 역에서 출발을 할 테고, 로마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콜로세움은 꼭 들르기로 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구글 지도도 뒤져보며, 트레비 분수, 판테온, 천사의 성 그리고 바티칸 시국 정도를 골랐습니다. 피사의 사탑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피사가 애초에 로마가 아니더군요. 그래서 우선은 발 닿는 대로 또 비행기만 연착되지 않는다면 가기로 하고 모스크바 마지막 날을 붉은 광장 신년 불꽃 축제를 보며 보냈습니다. 정말 뜻하지 않게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 1월 1일이 되어서 소중한 오랜 친구들과 뜻깊은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인 하루였습니다.

-사실 붉은 광장 불꽃 축제에서 본 건 수많은 인파와 불꽃 빼꼼, 그래도 좋았다.  - 마지막 시몰렌스카야 역의 모습
세레메티예보 공항, 여기서 정말 카메라 두고온 친구를 버리고 가야하나 고민을 했었지만 무사히 딱 맞게(?) 돌아왔다.

 중간에 카메라를 게스트 하우스에 두고 온 걸 깨달아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갔다가 보딩 20분 전에야 공항에 되돌아오거나, 여권을 두고 내린 걸 깨달아 다시 비행기에 올라갔다 오는 사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무사히 연착도 없이 날씨도 좋고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남아있던 루블을 몽땅 유로로 바꾸고 떼르미니에 가는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처음 러시아에서 지하철을 탈 때에는 키릴 문자를 읽을 수가 없어서 노선도를 찾는데 애를 먹었는데, 반나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로마 구경을 마쳐야 한다는 촉박함과 그나마 다행인 로마자 덕분에 순식간에 콜로세오 역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급해야 능력이 발휘된다니깐? 

급하면 찾게 되는 길, 다행이도 제대로 된 지하철이었다.
역 개찰구에서 바로 보이는 모습인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바로 앞에 있다.
사진 한장에 다 담기지도 않는다.

 사실 지하철을 딱 내리고 마주한 콜로세움의 모습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웅장한 사이즈에 걸맞게 멀리서부터 점점 커지는 모습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는데,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입구에 채 모든 모습이 담기지 않을 정도로 떡하니 서있으니 사뭇 기대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그 규모에 압도되기도 하면서 어? 얘가 이렇게 쉽게 보여도 되는 아인가?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의 경기장답게 광활한 평원이나 황무지 한가운데에 서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유적지에 이렇게 접근성이 좋은 로마 시민들이 부러워집니다. 주변의 포로 로마노와 더불어 고대 로마가 얼마나 웅장한 도시였을지 감히 상상해 보게 합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숭례문이 주변의 고층건물과 이질적으로 있는 모습에 감탄을 한다는 얘길 언뜻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곳의 콜로세움과 주변 유적은 너무나 잘 어우러져서 마치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에 감탄을 자아냅니다.

 아 그리고 한국어를 굉장히 오랜만에 그것도 왁자지껄하게 들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는 아주머니도 계셨습니다. 사실 그만큼 관광객이 무지하게 많았고,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 무리 때문에 콜로세움의 웅장함을 감상하기에 조금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었기에 내부는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냈고 바쁘게 트레비 분수를 향해 걸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는 정처가 없었으니 주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은 거지요.

- 문득 건넌 길이 베네치아 광장이라거나   - 골목 구석구석 유럽 냄새가 난다거나

 어차피 인터넷도 구글 지도도 더 이상 쓸 수가 없는 경유지 여행에선 무사히 공항만 돌아가면 끝이니 발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걷다가 조금 유럽스럽다 하는 골목이 있으면 폰을 땅에 세워두고 사진도 찍다가 하면서요.(이렇게 했는데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은 게 신기할 다름입니다..) 방향만 주시하며 트레비 분수를 향해 걸었는데, 그 길에서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고 조국의 제단 역시 지나쳤습니다. 사실 이 것도 지금 글을 쓰면서 아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건데, 정말 발 닿는 곳이 모두 문화재인 도시입니다. 아마 다음번에 다시 로마를 찾는다면 오래 머무르며 그때 지나친 곳 가보지 못한 곳들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일단 노상 카페에서 피자든 스파게티든 여유롭게 한 접시 못 하고 온 게 아쉽거든요. 

눈치 싸움엔 그래도 성공한?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습니다. 셀카봉에 치여 제대로 구경도 못 할 거란 걱정과 달리 구글 로드뷰에서 보다도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 날 눈이 굉장히 부셔서 길에서 5유로짜리 싸구려 선글라스를 샀는데, 그걸 쓰고 사진을 찍은 덕에 제대로 된 사진이 몇 장 없는 게 아쉽네요. 단순한 분수의 모습이 아니라 큰 벽화 같았습니다. 그 위에서 해가 바로 내리쬐니 감히 올려다보질 못하겠어서 (하필 도착한 시간이 정오에 가까웠기 때문에) 성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건 만국 공통인가 봅니다. 사진을 보고 회상하니 그때 저도 동전을 친구와 던진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소원을 빌고 온 걸까요.. 여행을 계속하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다면 이루어졌나 봅니다. 

진짜 크고 넓고 종류도 다양했던 젤라떼리아

 이탈리아에서 밥은 못 먹었는데, 꼭 먹고 와야 했던 게 있습니다. 젤라또입니다. 트레비 분수 앞에도 작은 (그렇지만 붐비는) 젤라떼리아가 있었고 골목마다 큰 젤라떼리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가게의 세 면이 젤라또 냉장고이고, 상상하는 모든 맛이 다 있었습니다. 저는 단걸 많이 좋아하진 않아서 레몬이랑 사과 종류를 담았고, 친구는 극강의 단맛을 골라왔습니다. 아무래도 단거랑 신거 같이 먹는 균형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걸어 걸어 도착한 판테온 신전
미사 때문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신전'을 만화가 아닌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차에 매여있던 친구, 그나저나 이 친구 굉장히 온순했다.

 트레비 분수에서 판테온은 그렇게 멀지 않아서 마지막 목적지를 판테온으로 정했습니다. 정말 시간만 허락한다면 테베레 강을 넘어 바티칸과 천사의 성을 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판테온은 본래는 모든 신을 받드는 신전이었지만 지금은 로마 가톨릭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가 미사 시간이라 내부와 돔을 보진 못했지만 입구에서 고대 로마의 신전 기둥들을 본 것으로 이미 충분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도 견주어 보고 싶네요. 기회는 만드는 거니깐 가봐야지요.

 콜로세움에 도착한 지 여섯 시간 남짓 지났을까요? 저희는 다시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 있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래서 돌아오니 사람들이 다들 로마여행을 하고 온 줄 알던..) 8시간의 이탈리아도 마무리되었습니다. 게다가 면세점에서 한눈팔고 있다가 파이널 콜 듣고 허둥지둥 귀국하는 비행기에 올랐네요.

파이널 콜 듣고 혼나다시피 비행기에 탔지만, 그래도 무사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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