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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아 Jun 10. 2023

[쓰다-17] 위로는 언어로만 하는 게 아니다

살면서 타인과 만나면서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사람은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물질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위로'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이야기를 많이 하는 데 그 내용을 듣고 있으면 '맞다, 맞아'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내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사실 지인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 위로가 어떤 형태인지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상황을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것은 '신경 쓰지 마' , ' 기다려 봐라' , '그 사람한테 가서 왜 그런지 물어봐라' 등 을 들었고 더 상처가 깊어졌는 데 그건 아무도 내가 겪은 상처를 제대로 보지 않았던 거다. 이별을 할 때 흔히 사람들은 다음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하는 데 사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슬퍼하는 게 아니라 헤어짐 그 자체가 아파서 슬퍼하는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위로라고 하면서 조언을 말한다. 

충고와 조언 같은 위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당사자, 즉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론 속상하고 슬프니 내 감정에 먼저 이런저런 말로 위로를 하기 위해 뱉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그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생채기를 만든다. 이는 가족이나 친한 관계에서 섣불리 나올 수 있는 상황으로 심리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을 때는 조언과 같은 위로가 당연하게 들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저 사람은 분명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자기 감성과 심리 등 그동안 외면했던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잃었던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리학이 원래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알려져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라도 알아가는 게 다행이다. 

내가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심리학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나는 왜 그럴까?' 이 이유 때문이었다. 남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왜 나는 혼자서 고민하는지, 나처럼 타인도 걱정이 많은지, 자존감이 떨어지는지 등 나에 대해 너무 궁금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깊이 공부하는 게 아니라 관련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심리 관련 책들이 대중적이지 않아 자기 계발 서적을 주로 찾았었고 한계점에 다다르니 더 이상 자기 계발 책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동안 외면하는 개인의 심리가 서서히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금은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가 있다.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사람, 임상심리상담사 등 전문 직장인이 아니어도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쓰게 되면서 공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세상엔 '나만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포함된 1인이다. 그런데, 에세이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고 그 자체만으로 이해와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에는 그냥 그냥 책이어도 다른 이에겐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 여기서 왜 치료 중 집단 공유가 필요한지를 이제서 알게 되었는데 그건 직접적 위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공통된 아픔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은 자존감을 갖게 되고 힘을 얻게 된다.  이제는 위로는 말로 하는 시대가 지났다. 물론, 진정으로 하는 말도 있지만 상대방을 진정 위로하는 게 언어가 아닌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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