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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Oct 05. 2018

디지털 욕구불만

돌아온 레코드판


LP가 돌아왔다. 소수의 마니아들만 남긴 채 죽어버린 줄 알았던 레코드판이 이 시대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이 시대에 부활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LP를 접해보지 않았던 젊은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은, 노년에 시골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날로그와 시골은 불편하다. 일일이 내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제대로 만끽할 수도 없고, 자칫 망가질 수도 있다. 매우 번거롭지만 그 대신 날것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둘은 처지도 비슷하다. 편리성과 생산성, 확장성의 매력을 가진 디지털과 도시의 공세에 설 땅을 많이 잃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원초적 감성의 끈을 쥐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콘돔을 벗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원초적 본능이 사라지지 않듯이.


오감불만족


오감이 골고루 작동할 때 사건이 기억에 잘 남는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 눈으로 읽는 동시에 입으로 소리내고 손으로 쓰면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MP3 파일로 들었던 수많은 곡의 감상은 잊었지만, 어린 시절 들었던 빳빳한 레코드판의 감촉과 시큼한 냄새, 그 안에 담긴 음악과 감상은 모두 기억이 난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시청각만 극대화되고 오감이 골고루 자극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심지어 미각의 영역까지도 영상과 사진이라는 시각매체가 대리만족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니 우리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욕구불만인 채로 살아가는 이유는 오감이 채워지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상품과 도시생활이 인간의 감성 깊숙한 곳까지는 찌르지 못하는 것이다. '소수에게 깊은 만족감을 못 줄 바에 차라리 다수에게 평균수준의 대리만족이나 주자'는 것. 그 결과 다수의 생활수준은 비슷해졌을지 몰라도 개개인은 온전한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늘 욕구불만인 채로 살거나,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본능적으로 꿈꾸거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되는 것 같다.



지미준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santana1535

지미준의 단편소설 https://brunch.co.kr/magazine/june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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