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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ug 25. 2018

도서관 내 '금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금지' 범위가 모호한 도서관


우리 동네 중앙도서관은 열람실(자료실 말고 공부실)이 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제3열람실은 노트북 전용이고, 나머지 제1, 2열람실은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도록 되어 있는 공간이다. 제1, 2열람실 천장에는 '노트북 사용금지', '음식물 반입금지'라는 팻말이 달려있다. 그런데 자주 들락거려보니 팻말에서 말하는 '사용'과 '음식물'의 기준이 참 모호하다. 노트북컴퓨터로 동영상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있고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나의 경우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딱히 피해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트북으로 계속 타이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어폰 끼고 영상만 감상하는 것 뿐이며, 음료수나 물을 마실 때도 크게 시끄럽거나 냄새가 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도서관에 다녀왔다. 좌석표를 발급받아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던 중, 바로 옆자리에 60대로 보이는 남자어르신이 들어왔다. 어르신은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부팅이 되었음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났다. 나는 '노트북 사용금지라는데, 괜찮을까? 타이핑만 안 하면 되지 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르신은 마우스를 몇 번 딸깍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휴게실은 지하에 있다고요!


그런데 그 다음 상황이 가관이었다. 어르신은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열람실에 들락거리면서 옷을 입고 벗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열고 닫는 소리 정도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비닐 소리에 이어 갑자기 후루룩 하는 소리가 난다.어르신이 뜨거운 차를 마시고 계신다. 사기로 만들어진 전용 찻잔에 담아서. 후루룩. 또 후루룩. 음료수는 괜찮다고 생각했건만. 그때부터 내 마음이 괜찮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를 씹어먹는 소리가 난다. 뭔지 궁금한데 쳐다보기 민망해 무시하려 애쓰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아, 이 어르신, 과일을 씹어드신다. 두 종류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하나는 뭔지 모르겠고 또 하나는 사과였다. 사과! 휴게실도 아니고 열람실에서 사과라니!!


후루룩, 사각사각, 바스락 소리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잠깐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한참을 그러고 계시니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는 거였다. 옆 열람실로 옮길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르신은 나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주셨다. 어르신의 휴대폰이 때마침 요란하게 울려주었기 때문이다. 종합민폐세트다. 나는 바로 짐을 싸서 옆 열람실로 이사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이걸 드시겠다?


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과연 '음식물 반입 금지'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노트북 사용 금지'의 범위는 또 어디까지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워낙 민폐를 주고 받고 하면서 서로 어느 정도는 관대하게 넘기는 경향이 있으니, 이런 궁금증이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불편하면 안 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나처럼 '민폐 끼칠 거면 오지 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직원들도 규칙에 예외를 두기가 참 어려운 입장일 것이다. 사람을 가려서 봐줄 수도 없고, 물 정도를 허용해주면 머지않아 온갖 음료가 다 반입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도서관이 그렇다) 그렇게 하나씩 느슨해지면 나중엔 과자도 먹고 도시락도 먹겠지. 결국 다른 사용자들이 피해를 본다. 나도 한동안 물병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민폐라는 걸 깨닫고부터는 밖에 나가서 정수기 물을 마신다. 나에게 별 것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폐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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