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준 Aug 16. 2018

호모 프로벤투스: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서

호모 프로벤투스의 탄생


나는 스스로를 '호모 프로벤투스homo provéntus'라고 칭한다. 라틴어 사전을 뒤져서 직접 조합한 말인데, 해석하면 '생산하는 인간' 정도로 볼 수 있다.


호모 프로벤투스라는 말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까'라는 고민에서 탄생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일을 그만둔 뒤에는 쉬고 싶은 만큼 쉬고 놀고 싶은 만큼 노는데 전혀 재미가 없다.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이니 우울해졌다. 콘텐츠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차고 넘치지만, 차고 넘칠수록 마음속 곳간은 점점 비어갔다.



 무기력할까: 수동적이고, 성취감이 따르지 않는 일들


"당신은 스스로 하는 일과 시켜서 하는 일 중 어느 쪽을 선호하고, 어느 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예전에 보았던 한 설문조사다. 결과가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일을 선호하면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은 '누가 시킨 일'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능동적 행동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수동적 행동에 길들여져 능동적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수동적 성향이다'라고.



오락, 여가: 수동적인 재미에 뒤따라오는 공허함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는 온갖 종류의 오락거리가 넘쳐난다. 직장에서 해야만 하는 일, 누가 시켜서 하는 일, 성취감 없는 일을 하루 종일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찾는 것이 인터넷과 텔레비전. 수동적으로 일한 뒤에 수동적으로 쉰다. 뇌 속으로 뭔가가 자꾸 입력되지만 출력되는 건 없다. '내 취향을 맞혀봐'라는 듯, 정보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수동적으로 취향을 찾으려다 보니 만족감이 좀처럼 찾아오질 않는다. 그래서 텔레비전과 인터넷 콘텐츠는 보면 볼수록 공허해지는 것이다. 공허함을 메우려 끝없이 채널을 돌리고, 끝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클릭한다.



보상: 돈이 동기는 부여하지만 돈이 주는 기쁨은 수명이 짧다


그럼에도 하기 싫은 일을 수동적으로 잘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칭찬을 받는다든가, 돈을 받는다든가.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보상이자 동기부여 수단이다. 많은 사람들이 능동적 본성을 돈과 맞바꾸고, 결핍된 성취감을 돈으로 메워보려 한다.


그 기쁨이 과연 얼마나 갈까? 우리들 누구나 다 느끼지 않는가. 돈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늘 부족하다는 것을. 단순히 소비만 하는 일은 공허감을 키울 뿐이다. 이것을 사면 저것이 필요해지고, 저것을 사면 다른 것이 부족해 보인다. 돈으로 욕망을 채우려 애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분출하려 애써야 한다.



생산의 순간: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


직접 요리를 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맛이 있든 없든, 내가 정성을 쏟아 만든 요리를 보면 뿌듯하고 그 만족감도 오래간다.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도 붙는다. 악기를 배워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치자. 노래를 만드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한다. 완성한 노래가 듣기 좋든 아니든,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일단 뿌듯하고 곡에 대한 애착도 오래간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낌과 동시에 살아가는 의미도 생긴다. 돈이 된다면 일석이조다. 하지만 돈을 받아 느끼는 기쁨이 더 클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클까? 순간적인 기쁨의 크기는 돈이 더 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누가 더 강한 패시브 스킬을 가졌나? 모든 욕망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돈인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성취감인가?



패시브 스킬: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는 능력


누구나 삶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때가 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면서도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며 의미를 몸소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가 '생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능동성을 잃어버리고 공허감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감이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주는 기쁨은 오래간다. 그 크기가 크든 작든 상관없다. 작아도 자신감은 절로 상승한다. 자신감이 쌓이면 자존감도 단단해진다. 삶의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삶의 의미가 바로 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생산'은 단순히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루어내는 많은 일들을 포함한다. 사업을 기획하거나 모임을 만드는 일도 넓은 의미에서는 생산이다.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행복감을 오래 느끼고 싶다면 '생산'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시전해보자. 호모 프로벤투스가 되어보자.



지미준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santana1535

지미준의 단편소설 https://brunch.co.kr/magazine/juneshort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는 자신과 싸우고, 직장인은 타인과 싸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