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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ug 14. 2018

프리랜서는 자신과 싸우고, 직장인은 타인과 싸운다

프리랜서Freelancer:
봉건 영주와의 자유계약을 통해 전투나 호위활동을 했던 창기병 또는 기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직 프리랜서 번역가


나는 잠시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 5년, 번역가 생활을 5년 했다. 그 후에는 영어강사를 거쳐 현재는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다.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가지다. 외국어공부를 좋아했던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사람 눈치 안 보고 혼자 일할 수 있고, 은퇴 걱정이 없으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모르고!!)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직장인의 스트레스


남편이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 나도 가끔 낀다. 분위기는 대체로 좋은 편이지만, 이야기는 대부분 '누구 때문에 힘들다', '누구누구는 리더기질이 없어서 아랫사람을 너무 힘들게 한다', '누구누구는 능력도 없는데 눈치도 없다' 등등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관한 것들이다.


나는 프리랜서 생활 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프리랜서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출퇴근의 압박도 없고, 쉬고싶을 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해했기 때문이다.



마감과 자기관리로부터 오는 프리랜서의 스트레스


번역가가 되면 모든 게 자유롭고 즐거울 거라고 생각한 건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실제로 업계에 몸을 담아보니, 이건 인간관계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우선 '자유롭다'라는 말은 조건부다.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자유로움이란, 마감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공간에서 일할 자유를 말한다. 그런데 이 마감이라는 녀석은 마치 이런 것이다. '명품백 사고싶으면 마음껏 사. 카드한도는 50만원이야.'


프리랜서는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것은 맞다. 그러나 그뿐이다. 영업력의 기반은 신뢰다. 신뢰를 쌓으려면 마감을 지켜야 한다.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간관리, 건강관리, 끊임없는 공부가 필수다. 쉽게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면 프리랜서로서의 커리어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다.



실패한 프리랜서, 실패한 직장인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시간관리, 건강관리, 마감 지키기, 이 모든 것에 실패했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다. 차라리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직장생활이 싫어서 프리랜서가 되었는데 다시 직장인이 되고싶다는 아이러니. 그렇게 번역가 생활을 때려치웠다.


그 뒤 직장엘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집밖으로 나간다는 것부터가 좋았고,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힘들어졌다. 프리랜서 시절에는 나를 철저히 다잡아야 했지만, 직장인이 되니 나를 버려야 했다. 나는 또 다시 실패했다.




 곳을 보라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돈을 벌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소설 쓰기에 매달리고 있는 나는 그동안의 경험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나 했을까. 의미없는 우연은 없다고 디팩 초프라는 말했다.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프리랜서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고,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어 글쓰기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소설가 근처에도 못 갔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어떻게든 현재와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현재는 어떻게든 미래와 연결된다. 내가 정말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을 쓰고 있는 이 현재는 미래의 언젠가 우연히 (의미있게) 작용할 것이다.


지금 현재 직장인으로서, 혹은 프리랜서로서 겪는 고통은 언젠가 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당장 눈앞에서 벌이는 작은 날갯짓이 미래에 어떤 태풍으로 돌아올지 생각하며, 부디 먼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지미준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santana1535

지미준의 단편소설 https://brunch.co.kr/magazine/june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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