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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an 21. 2019

우주 쓰레기가 되고 싶다는 남편

아버지의 유언


오랜 투병의 끝. 온 힘을 다해 생의 끈을 붙잡고 있던 아버지가 끝내 그 끈을 놓아버렸다. 문학과 음악과 여행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이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채 긴 시간을 병마와 싸우다 미련만을 안고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생전에 죽음 이후를 준비하셨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줘. 바다의 신이 되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닐 거야." 건강할 때는 누구보다도 활동적이었고 세계 각지를 누비던 분이었다. 난치성 질환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고부터는 여행 기회가 있어도 잡을 수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답답함을 못 견디던 분이라, 입관할 때 묶었던 끈도 다시 풀어드렸다. 육신이 한 줌 재가 되어 뼈만 남긴 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우리 손에 남은 아버지의 유골은 차디찬 겨울바다에 뿌려졌다. 아버지의 유지대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도록.

양양에서 배를 타고 나간 바다에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우주의 쓰레기가 되고 싶다는 남편


남편은 우주를 좋아한다. 우주'과학'까지는 아니지만 우주를 동경하는 것 같다. 쉽게 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다못해, 자기는 죽기 직전에 우주로 편도여행을 하고 싶단다. 죽더라도 우주에서 죽고 우주 쓰레기로 남고 싶단다. 물론 죽음이 예상 가능해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니, 아무리 예상이 가능했다고 해도 죽음의 순간은 정말 예상 밖의 타이밍에 찾아오긴 했다. 누군들 마지막 순간을 예상할 수 있으랴마는.


살아가는 동안 별 사고 없이 자연사한다고 했을 때, 마흔 살인 남편의 수명은 대략 아흔 살쯤 될까? 부모님 세대보다는 어쨌든 오래 살 것이다. 그렇다 치면 앞으로 50년이 남았다. 우주여행 기술도 진보할 것이고, 비용도 줄어들 것이다. 인간이 우주 쓰레기가 되는 것을 지구촌이 허락한다면 훗날엔 우주장례도 흔한 일이 되지 않을까.

남편은 늘 우주로 떠나고 싶어한다.


아직 청춘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내 나이 올해 서른여덟. 사회적 나이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직장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은퇴시기까지 27년 정도가 남아있다. 그런데 9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수명은 52년이 남았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아직도 청춘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살 날이 아직 반백년이나 남았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늦지 않았다.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여든이 넘었어도 절대 늦은 게 아니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리고 내 개똥철학 하나를 말하자면, 꽃이 피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생애주기별 과제 따위에 얽매여 애써 남들과 보폭을 맞추려는 생각은 안 하련다. 그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만으로 큰 스트레스 하나를 덜게 될 듯하다.


아버지는 60세에 돌아가셨다. 건강했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사셨을 텐데, 얼마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나에게 죽음이란 늘 막연한 것이고 나와 별로 상관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까.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사람과, 자신이 아직 젊다고 느끼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도전적이고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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