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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an 31. 2019

월세시절, 좋은 집주인 나쁜 집주인 1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처음으로 내집마련을 했다. 우리네 형편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내돈보다는 은행돈이 더 많이 들어갔다.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대출이자를 보면 이게 월세가 아니고 뭔가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대출금을 다 갚고 나면 이 집은 완전히 우리 부부의 소유가 될 테니 마음은 편안하다. 그만한 자산 만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강제저축도 이런 저축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 후 신혼 때까지 월세 인생을 살았다. 남편의 청년시절 형편도 나와 비슷했다. 그런 배경 탓에 전세도, 월세도 아닌 내집을 갖게 된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집주인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집안 꾸미기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세를 올려달라는 말에 가슴 철렁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월세시절에 만났던 집주인들이 떠올랐다. 좋은 주인을 먼저 만나서 그런지, 이사를 가서 나중에 만난 집주인은 천하의 도둑놈들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십 대 초반과 후반에 만났던 두 집의 주인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번 1편은 이십 대 초반 때의 이야기다.




집주인은 맥가이버 아저씨


갓 스무 살을 넘기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지하 월세방을 구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서울 물정은 더더욱 모르던 시절이었다. 동생과 힘을 합쳐 보증금 300만 원을 겨우 마련하고 나니 첫 달 월세를 낼 돈이 없었다. 집주인은 50대나 60대 정도의 부부였는데, 다행히 후불을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직장을 다니고, 돈을 모으고, 공부를 했다.


주인아저씨는 손기술이 좋아서 자잘한 기계 고장 따위는 직접 수리할 수 있었다.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들여다본 뒤 해결했고, 부품을 사 와서 직접 교체하기도 했다. 우리 남매는 그곳에 8년 정도 살았다. 8년이나 살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주방 후드도 교체되고 욕실 변기와 타일도 바뀌고 벽지도 바뀌었다. 집주인 부부가 해준 것들이다. 세입자가 불편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집주인도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참 다행이었다. 주인 부부는 우리 남매가 늘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힘이 되는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간혹 월세가 밀리는 때가 있었지만 우리는 빨리 해결하려 노력했고, 주인 부부도 이해해주셨다.


살아있는 동안 이런 집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세입자가 기특했던 집주인, 세입자에게 밥을 사먹이다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사를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 주인아저씨는 우리 남매를 어느 식당으로 초대했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갈빗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머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며, 아저씨는 우리에게 고기를 사 먹이셨다. 아저씨는 늘 우리에게 밥 한 번 사 먹여야지 하고 생각하셨단다. 남매가 어려운 형편에 서로 도우며 공부하고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다고. 오랫동안 착하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세입자들 중에도 진상이 많았던 모양이다. 돈도 안 내고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사람, 집을 더럽게 쓰는 사람, 집에 사람들을 자주 데려와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등등. 그랬으니 우리가 착하게 보였을 밖에.


불행했던 가정사, 불편했던 반지하방의 삶이었지만 집주인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을 간직한 이십대 초중반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떠나 새로 이사한 월세집에서, 우리는 도둑이나 다름없는 집주인을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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