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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pr 14. 2019

일은 못 때려치워도 취미는 때려치울 수 있어

취미도 스트레스가 된다

얼마전까지 이를 악물고 붙잡고 있던 음악의 끈을 놓아버렸다. 완전히 놓았다기보다는,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심정으로 취미밴드활동을 무기한 쉬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나의 정신 어딘가에 영원히 눌러앉아 있을 줄 알았던 '음악'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짓눌러 너무나 힘들게 했다. 애증도 이런 애증이 있을까 싶다.



점점 사라지는 자리


작가의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습작도 몇 개 없는 천둥벌거숭이가 덜컥 등단을 했다. 등단을 했으니 어쩌겠나. 그때부터 피 터지게 습작활동을 하는 수밖에.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 온통 글, 글, 글, 작품 생각뿐이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작을 할까, 어떻게 하면 명작을 쓸까, 어떻게 하면 글밥을 먹고 살까. 글쓰기와 집안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작가생활을 하며 상대적으로 여유시간은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음악에 내어주지 않았다. 차라리 책을 읽고, 작품재료를 탐색하고, 일기를 쓰고, 산책을 했다. 학업도 포기하게 만든 열정의 연료였던 '음악'이라는 녀석 이제 먼지 쌓인 피아노 건반의 모습을, 녹슨 기타줄의 모습을, 업데이트 밀린 시퀀서의 모습을 한 채로 차갑게 식어 있다.


취미도 스트레스가 된다


취미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깨달은 건 드러머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차라리 쭉 쉬어버려요.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일 년 쯤 쉬면 또 누가 알아요?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다시 밴드를 하게 될지? 취미인데 뭐 어때요. 취미를 뭐하러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계속하나요."


나는 취미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결혼을 했다. 그가 소개한 밴드에서 나도 함께 음악활동을 하고, 주말을 늘 함께 보냈다. 취미 바이오리듬도 서로 닮았는지, 남편도 요즘은 많이 지쳤다. 일은 점점 많아져서 야근에 주말근무에,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다. 악기 연습이 노동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합주날짜가 코앞에 닥쳐야만 벼락치기하듯 악기를 잡았다. 나나 남편이나, 온전히 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했고, 드러머의 권유로 우리 밴드는 잠정 휴식에 들어갔다.


즐기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지만


취미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여유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즐길 줄 몰라서 취미를 갖지 않는다. 취미 즐기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니 말이다. 공부.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늘 들어온 말. 이제는 어른이 되었는데 본업 이외의 것도 공부를 해야 한단다. 취미도 공부해야 한단다.


물론 공부하면 깊게 맛볼 수 있으니 경험의 차원이 높아진다. 그런데 경험의 차원을 높이려 공부하다가 벽에 부딪히고, 더 이상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일상을 좀먹을 만큼 커진다면, 그 취미공부를 계속해야 할까? 괴롭지 않을 정도로만 즐기면 안 될까?


음악만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 집착이고 강박이었다. 다른 취미들에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유독 음악에는 집착했다. 더 깊은 차원으로 가고 싶을 때,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데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드디어 이 애증의 취미를 내려놓았고, 일상에는 변화가 생겼다.


본업 활동에 쉽게 몰입한다.

편하고 즐겁게 음악을 듣는다.

두통이 줄어들었다.

시간관리가 잘 된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겠는가. 한 때 내 삶의 전부였던 것을 내려놓았는데 아쉽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어린 시절과 지금의 꿈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모든 게 흘러가고 변한다.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삶 속 음악이 있던 자리도 변했나보다. 밀려오는 강물에 억지로 버티고 서있느니, 몸을 맡기고 함께 흘러가는 게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취미인데 뭐 어때. 즐겁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는 게 취미생활 아닌가. 요리사 최현석은 기타실력도, 노래실력도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진심으로 즐기는 것이 보인다. 조금 못 해도 상관없지 않나. 즐기기만 한다면. 그래서 나도 부들부들 떨며 붙잡고 있던 끈을 놓고, 즐길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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