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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y 14. 2019

남편 저자 만들기 프로젝트

책을 써야겠다. 나 말고 내 남편.

흑심을 품은 아내


나는 메뚜기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질 못했고, 한 직종에 오래 종사하지 못했다. 실력이 무르익는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싫증이 나서 때려치웠다. 유일한 연결고리인 글쓰기만이 얄팍한 재주로 남았다. 여전히 실력이랄 것까지는 없는 신인작가에 불과하지만, 번역도 경력으로 친다면 글쓰기 경력은 도합 7년 정도 될까.


남편은 다르다. 그는 20대 중반에 입사한 자동차 설계 회사에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고, 올해 불혹을 맞이했다. 경력이 10년을 훌쩍 넘는다. 혹독한 신입사원 시절을 보냈고, 많은 동기들의 이직과 퇴사를 지켜보았고,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아진 지금, 그는 회사의 과장이다.


나로선 상상이 잘 안 된다. 어떻게 한 곳에서 10년 넘게 일을 할 수가 있나 말이다. 물론 남편도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지만, 동기들이 모두 떠나간 가운데서도 그는 끝내 회사에 남았다.


글쓰는 자의 소명이랄까.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겠다는 꿈을 안고 사는 나는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남편을 떠올렸다. 나는 메뚜기라서 딱히 전문적인 이야깃거리가 없지만 남편은 자동차 설계 분야에선 전문가다.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 어떨까. 그 동안 쌓인 회사 에피소드도 많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차종들의 설계 이야기, 중소기업 이야기 등등 십여 년간의 썰을 풀자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정도다.


출처:http://www.engineeringspot.de/wp-content/uploads/2014/10/141014_ArmbrusterReleasewechselInterview



<아티스트>의 득녕이처럼


새 프로젝트 때문에 밤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여보, 책을 쓰는 게 어때?”


“응?”


“그 정도 경력이면 책 하나 내도 돼, 전문가 양반.”


“음…….”


“이렇게 오랫동안 한 분야에 일하며 전문가가 되었으면 이제 책 한 권쯤 써도 돼. 당신은 그래도 돼. 어느 날 회사를 그만뒀는데 회사의 타이틀이 사라진 나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슬퍼? 책을 쓴다는 건 나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거고 사회적 지위를 다르게 하겠다는 거야. 많이 팔리든 적게 팔리든 책이 나의 명함이 되어줄 거야.”


남편은 책에 딱히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므로, 나는 그가 오래 망설이거나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명쾌했다.


“음, 솔깃한데? 그럴까? 그럼 여보가 나의 득녕이가 되어줘.”


“물론이지!”


‘득녕이’는 다음웹툰 <아티스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 한 명이다. 풀네임은 신득녕이고, 그를 포함해 세 명의 예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명은 미술가, 한 명은 음악가, 신득녕은 문학가. 다들 성공과는 거리가 먼 설정으로 웹툰이 시작된다. 찌질한 행동을 하고, 지하방 예술가들이 나눌 법한 염세적인 대화를 나누고, 볕들 날만을 기다리는 인생들이다. 어느 날 음악가가 신득녕의 도움으로 에세이 책을 출간하게 되고, 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저자인 음악가는 순식간에 스타가 된다. 이야기의 갈등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친한 음악가와 미술가도 있어서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며 이 웹툰을 응원하고 있다.




부부여, 힘을 합칠지어다


남편이 나에게 자신의 득녕이가 되어달라고 했다. 내가 소설가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남편의 책 출간을 도와 남편만 스타가 되었다고 하면, 나는 과연 배가 아플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변함없이 남편을 사랑하는 한 오히려 내가 더 기뻐서 방방 뛸 것이다. 부부가 힘을 합쳤을 때 둘 중 하나라도 잘되면 그것만으로도 시너지효과는 충분할 테니 말이다. 부부의 재능은 이렇게 써먹는 건가 보다. 잠깐, 일단 책부터 쓰고.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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