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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ug 16. 2019

다시 날씬해질 건데 큰 옷을 왜 사!?

패션 테러리스트의 옷 쇼핑

언제부턴가 옷을 잘 안 사게 되었다.


물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관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길거리와 TV에 보이는 멋쟁이들만큼 감각이 뛰어나진 않다. 친구들은 내가 옷을 차려입으면 ‘난해한 패션리더’라며 놀린다. 내 스타일은 두 종류로 쉽게 구분된다. 이상하거나, 심플하거나.


남편은 결혼 전 첫 데이트에서 나를 보고 저승사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검정 바지와 검정 트렌치코트가 얼마나 심플한데 저승사자라니. 절친의 결혼식에서는 빨간 체크무늬 모직 코트를 입고 자주색 페도라를 썼다. 친구의 시동생이 내 패션을 칭찬했다. 그분은 옷을 잘 입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왠지 으쓱해졌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나는 친구의 결혼을 망치러 온 원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절친이라는 인간이 결혼식에 시뻘건 옷에 모자까지 두르고 왔으니 신부는 얼마나 나를 죽이고 싶었을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체중이 는다. 몸에 맞는 옷의 수는 준다. 실루엣이 좋고 체형에 딱 맞춘 외출복들은 살찐 아줌마에게는 점점 소용없는 물건이 되어간다. 각성하자, 얼른 살을 빼고 저놈들을 다시 입자, 일단은 뱃살과 팔뚝살과 허벅지살을 감춰줄 옷만 골라 입자, 하고 보니 츄리닝(트레이닝 말고 츄리닝!)과 고무줄 바지, 헐렁한 라운드 티, 통이 바다와도 같이 넓은 원피스 뿐이다. 괜찮다. 어차피 살 빼면 예쁜 옷들을 다시 입을 거니까. 불어난 몸은 내 원래몸이 아니다! 그러니까 늘어난 사이즈의 옷을 사는 건 돈 낭비다! 잠시 입을 옷을 왜 사!? 다시 날씬해질 건데 큰 옷을 왜 사!?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원피스도 사고, 바지도 사고, 블라우스도 사고, 민소매 셔츠도 사고, 수영복도 샀다.


큰 사이즈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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