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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Apr 24. 2019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사회가 빠른 것이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기

사람은 원래 느리다


집에서 1킬로미터 거리에 호수가 있다. 걸어서 15분이면 누구나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남들보다 더 빨리 그곳에 도착한다. 그럼 걸어가는 사람은 느린 바보인가? 남들이 차로 빠르게 도착했으니 나도 차를 타기 위해 혹은 차처럼 빨라지기 위해 전력질주해야 하는가?


걸음은 속도가 느리다. 원래 우리의 속도가 그렇다. 차는 조금 더 일찍 목적지에 닿게 해주는 수단일 뿐, 그곳에 닿기 위해 차를 타는 게 정답은 아니다. 차를 타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 사회의 속도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왜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가? 어딜 그리 급히 가려고? 목적지에 도착할 그 순간을 위해 수많은 현재의 순간들을 포기하는가?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사회가 빠르게 변할 뿐이지, 구성원 개개인은 빠르지 않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사회의 속도를 자신의 속도로 착각한다. 그래서 느린 자신이 도태되었다 생각하고 포기하거나, 한계 이상으로 달리려고 피와 살을 깎는 훈련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빠르게 하려 할수록 포기도 빨라진다. 뱁새가 황새보다 느리다고 해서 뱁새가 열등한가? 애초에 두 새는 갈 길이 다르다. 목적지가 다르고, 삶의 양식이 다르다. 뱁새가 좌절할 거라고 넘겨짚을 필요가 없다.



작가를 압박하는 사회의 속도


컴퓨터 화면과 자판은 압박감을 준다. 빠른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화면을 글자로 채우지 못하면 좌절감이 든다. 깜빡이는 커서는 마치 어서 글자를 입력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글은 써지지 않고, 화면은 재촉하고 있다. 머리를 터뜨릴 것 같은 압박을 던져버리기 위해 펜을 들어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 글을 쓰면서 나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의 속도를 남의 속도와 비교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음을 느꼈다. 천천히 예쁜 글씨로 글을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니 이만큼 온 거지,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려고 계획하지 않았다. 속도, 성과주의, 결과지상주의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목표는 늘 먼 곳에 있고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져버린다.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자. 지금 이 순간 펜 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가로획을 그을지 세로획을 그을지, 무슨 단어, 무슨 음절을 쓸지, 그 순간만 생각하자.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물을 엎지르는 건 그 순간을 보지 않고 다음 동작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앞서면 급해져서 빨리 처리하려다 결국 엎지른다. 빨리 결과를 봐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빨라지려 할수록 빨라지는 포기


모든 것이 빠르고, 모든 결과와 성과를 빠르게 내놓아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가운데, 이토록 느린 나는 과연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쩌면 모두가 빠른 속도에 허덕이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을 때, 나는 내 페이스대로 꾸준히 해냄으로써 포기라는 좌절을 겪지 않고 오랜 걸음의 끝에 단단한 성공에 도달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포기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빠른 결과를 기대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지쳐서 나가떨어진 경우가 많다. 늘 욕심이 앞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TV. 빠르게 만족감을 주는, 속도를 자랑하는 도구들을 이제는 멀리하려 한다. 나의 원래속도를 찾아서 다이어트도 천천히, 운동도 천천히, 글쓰기도 천천히, 독서도 천천히, 식사도 천천히. 나이도 천천히 먹고, 대화도 천천히 하고, 돈도 천천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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