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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May 26. 2019

스마트폰에 감금된 나의 집중력

스마트폰을 치우고 스마트해지자

집중력 도둑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많이 쓸 수 있고, 직업 작가로서의 성공에 더 빨리 가까워진다. 나는 멀었다. 엉덩이가 무겁지 않다. 수시로 좀이 쑤신다. 집중력이 30분을 못 간다. 그래서 한때는, 아니 지금도 여전히, 내가 ‘작가가 될 상인가?’ 하는 물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집중력과 끈기를 책상 밖으로 내던져버린 주범이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다. 근본으로 좀 더 들어가면 인터넷 중독자다. 인터넷을 시작한 지가 20년이다. 직장에서는 업무와 인터넷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게 별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업무도 보고, 검색도 하고, 뉴스도 봤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렇게 하루하루 중독의 늪에 발을 빠뜨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남들보다 늦게 스마트폰을 접한 나는 이제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어 웹서핑과 금융, 일정관리, 메모, 음악 감상, 유튜브, SNS, 전자책 읽기 등 인터넷만 접속되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상시 접속상태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지금 쓰는 스마트폰의 나이가 햇수로 네 살이 되었다. 메모리도 부족하고, 가끔 멈추기도 하고, 배터리도 빨리 닳는다. 남편은 자꾸만 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한다. 신형 스마트폰은 성능도 훨씬 좋고 메모리도 빵빵하고 속도도 빠를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지금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사는데 더 좋은 스마트폰을 손에 넣으면 그 안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나 있을까. 아편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그보다 더 심각한 모르핀과 헤로인을 처방하던 시절이랑 다를 게 뭐냔 말이다.

 

그렇다고 피처폰을 쓰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제는, 이미 나의 생활양식이 각종 스마트 서비스들에 맞춰져 있어 스마트폰을 완전히 안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거래 중인 증권사 중에는 모바일앱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스마트폰을 포기하면 이 중요한 서비스도 포기해야 한다. 메모 앱을 포기하면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고, 지도 앱을 포기하면 낯선 곳에서 미아가 되었을 때 행인을 붙잡고 길을 물어야 한다. 심지어 방향치다.

 

스마트폰 없이 여행을 했다던 어떤 기자는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은 채 기차역으로 가 무작정 입석표를 끊었고, 여행지에서 블로그의 도움 없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계획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스마트폰 없는 삶은 굉장히 불편해 보인다.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었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되고 여행의 효율은 더 나았을 것이다.


 

 

폰은 smart, 뇌는 stupid

 

아날로그 여행은 나도 좋아하지만, 그 많은 불편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안 되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고는 싶다. 글쓰는 일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 자꾸만 갉아먹고 있다. 웹서핑을 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는가? 포털사이트 화면 한 페이지에 실리는 헤드라인만 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수십 건이다. 하나하나 클릭하면서 껌처럼 씹다 뱉기를 수십 번이다. 뇌가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려고 본격적으로 자리를 딱 잡으면 별안간 새로운 정보가 입력된다. 이게 반복되니 뇌는 하나의 정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정말로 집중해야 할 일(글쓰기)이 닥쳤을 때, 이미 기진맥진한 뇌는 그 일에 쏟을 힘이 남아있지 않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시간을 내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보자. 우리가 인터넷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단편적으로만 소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은 논리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라고 했다. 수학을 공부하면 목적지까지 효율적으로 도달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금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입시 수학은 과정을 이해시키기보다 빠르게 답을 찾는 기술을 가르친다. “이게 공식이니 외워!” 식이다.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지 않는 ‘암기과목’이 되었다. 깊은 사고를 할 필요가 없으니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논리력이 쌓이겠는가. 웹서핑으로 소비하는 정보들이 대개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인터넷 정보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리해놓은 공식과 해답만 핥아먹고 있을 뿐이다. 상식은 풍부해졌지만 지식은 빈곤해졌다.

 


작가에게 필요한 건 깊은 사유와 집중이다. 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정보 공세로부터 뇌를 구해내어 접속을 끊고 한 가지 일에 푹 담그고 싶다. 주변을 통제하지 않으면 집중을 못 할 정도로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점점 고물이 되어가는 내 옆의 스마트폰을 어찌해야 할지, 어쩌면 나는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해진 생활양식을 바꾸고 불편함과 맞짱 뜨기가 두려울 뿐이다.



글쓴이: 지미준

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잡다하게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미처 예상못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집필의 원동력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주요 작품: 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2020년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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